창작, 즐거운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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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14 06:43 조회1,557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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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즐거운 놀이
창작, 놀이처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은 손에 잡히는 것이 다 화구요 재료였다. 파리 활동 시절 외국 생활의 곤궁함으로 물감 살 돈이 떨어지자 쓰레기통에 버려진 헌 잡지를 찢어 꼴라주 작품을 했고, 불을 때던 장작을 잘게 쪼개 캔버스에 붙였다. 모두 다 놀라운 작품이 되었고, 또 다른 발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를 때는 이른바 ‘옥중미술’을 탄생시켰다. 옥중 초기 화구와 재료가 없자 간장을 찍어 화장지에 데생했고, 감옥에서 제공하는 밥알을 모아 신문지와 반죽하여 입체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다른 수인들이 남긴 밥은 물론 옥중 배식 담당에게 얻은 밥 찌꺼기까지 활용했다.
그가 화구와 재료를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재판이 끝나 형이 확정된 다음이었다. 그로부터 고암은 매일 한 점 이상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가 출옥했을 때는 무려 300점의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고암이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장소와 재료, 어떤 것에도 구애됨이 없었다. 어떠한 환경도 그의 창작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어떤 어려운 순간도 그것을 창작의 소재로 활용했다. 출옥 후 한국과 스위스 뉴델리, 일본 등에서 옥중에서 창작한 작품 전시를 열었으니, 그의 창작 생애에서 수형생활은 아무런 걸림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처음 프랑스에 진출했을 때의 일화다. 거처를 구하러 다닐 때였던가 보다. 통역을 도와주던 지인이 잠시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보니, 고암이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종이를 꺼내 뭔가 열심히 작업하더라는 것이다. 그 잠깐의 틈까지도 창작에 몰두한 고암에게 창작이란 생의 이유요 삶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창작을 그렇게 즐길 수 있는지 곱씹을 수록 음이 신비롭다. 그 때문일까? 고암의 작품 속에는 창작을 놀이처럼 즐긴 일면들이 잘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감상자를 편하게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하고 미소 짓게 한다.
고암의 고백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즐겨하던 일이 미술이었다. 누구도 이 일에 참견할 수는 없었으며, 자신도 여기에 장애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깨끗이 단념하였고, 초지일관 60 고개를 넘어선 지금에도 어떤 권태와 싫증을 느껴보지 못한 채 그저 충실히 종사하고 있다.”
그 고암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맥이 있다. 서당 훈장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서예 정신’이다. 그 일면은 1976년 신세계 미술관 개인전 도록에 수록된 작가 서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20대를 우리나라 전통의 동양화와 서예적 기법을 기초로 한 모방시기라 하면 30대는 자연물체의 사실주의적 탐구시대, 40대는 반추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 사실에 대한 사의적(寫意的)표현, 그리고 50대는 구라파로 와서 추상화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오늘까지를 다시 나누어 10년을 사의적 추상이라면 후기 10년간을 서예적 추상이라고 이름지어 보겠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서예 정신을 잃지 않은 고암의 창작은 장르에 대한 제한 같은 것이 없었다. 시작은 서예와 문인화였으나, 이내 산수화와 풍경화, 정물과 인물, 문자 추상 등 필묵 예술세계를 거침없이 아울렀다. 조각을 비롯한, 색색의 실로 엮은 실내 장식용 태피스트리, 판화, 도자기까지 유화를 제외하고는 모든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여 창작을 즐겼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현역 서예가 중에도 그런 작가들이 몇 있다. 기회만 되면 놀이처럼 작품을 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다양하다. 소재 사용이 자유로우니 표현 또한 자유롭다. 다만 그들도 ‘서예 정신’만은 철저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작품에서 평균 이상의 품격으로 드러난다.
서예 정신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특질을 형상으로 드러내는 서예창작의 바탕이다. 언어의 깊고 높고 아름다운 뜻을 획과 문자, 구성으로 다시 밝히는 서예의 기본이요 정신이다. 시처럼 감성을 흔들고, 회화처럼 시각을 이끄는데 중심을 잡는 보이지 않는 서예창작의 절대 재료다. 서예작품이 담백하고 간결하며 설득력을 갖추려면, 작가가 서예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곧 서예창작은 정신으로 즐기며,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놀이다. 삶에 여유를 부여하고 육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놀이다. 서예창작을 놀이로 삼자. 마침내 삶도 놀이처럼 즐거울 것이다.
댓글목록
데사드림님의 댓글
데사드림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염려 감사합니다!
손형근님의 댓글
손형근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건강 유의래서 천천히 쓰세요...
이도님의 댓글
이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예술은 일맥상통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붓을 들고 그야말로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데사드림님의 댓글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즐거운 놀이, 행복한 놀이이시기를~
소존님의 댓글
소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고암 회풍이 한국화와 서양화를 넘나들어서 정체가 무엇인지 의아해 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보니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일화로 설명을 해주시니 재미있고 오래 기억에 남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고암의 작품을 다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데사드림님의 댓글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고암의 파란만장한 삶이 곧 작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