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창작, 어린이에게는 놀이
저자는 오랜 기간 서예를 지도해왔다. 초등학생에서부터 미술전공 학생들, 교사, 일반 직장인,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서예를 통해 만났다. 그중 사회인들은 직업도 참 다양했다. 그 현장에서 저자에게 늘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여하히 조화할 것인가였다. 학습자에 따라 서예학습 목적과 활용도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대게 부모의 권유로 서예를 학습하는 학생은 그 목적이 거의 정해져 있다. 산만함을 줄이기나, 정서 안정, 한자 배우기 등이다. 그런데 저자가 공부와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어린이에게 서예 학습이란 창의성 기르기와 그 체험이다. 부모가 원하는 부분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 부분도 당연히 충족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는 것은 어린이 시기에 알맞는 효율성이다.
어린이는 화선지를 펴놓고 마음껏 놀아야 한다. 먹을 뿌리고 붓을 던지며 자기의 생각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느낌을 마음껏 이야기하며 즐겨야 한다. 절대 수용의 화선지는 어린이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서예의 표현 기능이나 철학성, 예술성 등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 익히기에 한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서예의 예술적 특성임은 이미 앞에서 밝힌 바다.
모 초등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서예를 지도해달라는 의뢰가 왔을 때다. 짬을 내기가 쉽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담당을 하기로 했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창의력을 한껏 키워줄 기회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첫 시간, 한 학생의 이름을 물었다. 그 학생의 이름을 여러 장의 화선지에 다양하게 구성했다. 순하게, 씩씩하게, 또는 재미있게 표현했다. 이름을 읽기 혼란스러울 정도로 추상적인 표현도 했다. 학생들의 느낌을 물었다. 우선 재미있어 했다. 학생들도 저자의 의도를 상당 부분 캐치해냈다.
됐다 싶었다. 의기양양 이것이 서예라고 했다. 바로 이런 실험과 체험이야말로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서예학습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학습을 시작하려고 하자 반응이 별로였다. 다시 반포체와 궁체를 써 보였다. 궁체 흘림을 쓰자 학생들 특유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신기한 기예를 보는 얼굴들이었다. 모두 궁체를 배우겠다고 했다. 아마도 엄마와 선생님도 그것을 원하실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저자의 뜻을 펴고 싶었다. 창의력 키우기와 체험이 중요하다고 몇 번이고 반복 설득했다. 대답이 간단했다.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려울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경험자는 알 것이다. 결코 궁체가 익히기 서체가 아니다. 그러니 모르고 하는 말임에 틀림이 없었다. 고정관념일 것이었다.
두 명 정도를 제외한 20여명이 궁체 배우기에 찬성이었다. 결정을 일주일 미루기로 했다.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수업시간 그 두 명 학생마저 궁체를 택했다. 프로그램 담당 선생님도 궁체를 학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당장 보기에 좋은 것, 쉬워 보인 것, 성과가 눈에 보이는 쪽이 선호되고 있었다.
어린이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뛰어 놀고 사고할 시간이 적은 탓일 것 같았다.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야 하는 현대 어린이들의 특성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실험이란 어려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원인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눈에 익은 것, 선명한 것이 쉬운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일주일 90분 수업, 한 학기 20여 회를 다 채울 수도 없는 학과일정이었다. 물론 학생이 궁체를 학습하는 것이 무슨 잘 못이겠는가. 교과서를 펼치면 궁체가 먼저 눈에 들지 않은가.
저자는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지 마라.” “삐뚤어졌다.” “붓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면 안 된다. 써야 한다.” 등 부정사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궁체를 지도하다보면 그 특성상 그럴 수 없다. 조금만 잘 못 써도 누구의 눈에나 번연히 흠이 드러나는 것이 궁체이기 때문이다. “와 멋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 설명 좀 해봐”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조차 절충 속으로 감춰야 했다. 그 다음학기 그 수업은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서예과목 왜 있는가
여러분에게 왜 서예 과목이 필요한 줄 아는가? 저자는 개강 첫 시간이면 수강생들에게 꼭 이 질문을 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다. 한국화를 전공하는 미대 학생들이 서예 과목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왜 꼭 필요한 과목인가를 분명히 인지하게 하려는 질문이었다.
지금도 큰 변화가 없겠지만 당시(1992~2002) 미술대학에는 대게 전공 선택으로 서예 과목이 있었다. 한 학기 수업이며, 연계 과목으로서 전각(篆刻) 과목이 한 학기 더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 학기 수업인 데다가 시간 배정 또한 주 4시간 또는 3시간이었으므로, 서예를 제대로 소화하기란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서예의 개요와 역사, 각 서체의 미적 특징과 필법 등을 대강 훑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또한 개강과 종강, 축제와 공휴일 등 정상적인 수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으니, 저자가 계획한 15주 강의계획서가 성실하게 이행되기란 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미술대학의 서예 과목 설치란 전공을 위한 배려차원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전공 관련 과목으로서 서예의 실체를 알게 하고 필요할 경우 나중에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하기 위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저자는 강의 실행에 있어 몇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기법이나 창작적으로 성과를 거두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특히 회화전공 학생들은 과목별 과제의 양이 많았으므로, 서예와 같은 선택과목에 빠져들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여 저자는 수강생들에게 서예 과목 존재 이유를 그들 스스로 찾게 했다. 서예창작이 회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와 서예의 예술적 위치에 대해 최선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 서예가 동양예술의 뿌리요 줄기인가와, 서예창작 정신을 한국화 창작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잘 인지하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첫 시간과 달리 수업이 진행될수록 수강생들의 관심이 고조됐다. 발랄하고 실험 정신이 강한 회화전공 학생들이기 때문인지 서예창작을 충분히 매력적인 과목으로 받아들였다.
때 마다 주재를 제시하고 리포트를 자주 제출하게 했다. 학생들을 괴롭히는 선생이 된 것이다. 실기 과목임에도 수업 시간 반 이상을 이론 강의에 할애했다. 서예가 한국화와 하나의 뿌리임을 많은 시각 자료 등을 통해서 직접 살피게 함으로써 이해를 도왔다. 지금도 재현하기 어려운 청동기 명문이나 문양 자료를 통해서 역사가 얼마나 소중한 유산을 남겼는지 이해하게 했다. 글씨체에서 역사의 특성을 읽는 방법과 시대의 이즘, 인물들의 사상을 발췌할 수 있음을 자료로 보여주었다. 이것은 곧 예비 창작인, 예비 작가, 예비 미학자요 철학자들을 향해 역사 존중하기와 역사 배우기에 대한 강조였다.
서체, 시대와 사람을 읽는 포인트
진(秦)의 중심 서예였던 전서에는 운치가 넘친다. 시황의 나라 진의 문화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한(漢)의 중심 글씨였던 예서에서는 우아함이 잘 드러난다. 바로 거기서 중국왕조 중 태평성대가 가장 길게 지속했던 한나라의 시대성을 고스란히 채취해낼 수 있다. 당(唐) 태종 이세민이 추구했던 법치국가 틀 아래에서는 역시 엄정 단아한 해서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당법(唐法)의 산물인 정형시, 현대국가의 법령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당법의 위력이 그 시대의 서예 해서에 그대로 담겨 있음이다. 서예란 이런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를 보라. 웅건함의 표상이다. 대륙을 아우른 기상이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큰 호흡의 여유로움이 있다. 화려함을 안으로 감춘 인내가 엿보인다. 우직하고 소박함의 극치다. 사소한 기교란 찾아볼 수 없지만, 막상 임서를 해보면, 통 큰 기교가 안으로 감춰져 있음에 놀란다.
울진 봉평비로 불리는 신라석비(新羅石碑)를 보라. 신라인의 자유분방함이 잘 드러난다. 시작하는 부분과 마치는 부분 어디에도 갇힌 곳이 없다. 서체 초월이 거기 있다. 해서인 듯하지만 전서의 필의와 예서의 선율이 있다. 이를 데 없이 천진한 느낌과 강인한 느낌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송(宋)나라 종실의 후인으로 원(元)나라의 벼슬을 지내며, 원나라 시대를 휘감았던 조맹부의 송설체는 역시 조선을 휘돌았다. 석봉 한호의 사자관 직책은 서예에서 그 면모가 잘 드러났고, 퇴계 이이 선생의 성품과 학문은 그의 시문과 함께 서예에 잘 드러나 있다. 다산 정약용의 노력과 심착함은 그의 필치에 유감없이 드러나 있으며, 조선 시대 궁체는 그 시대 궁녀와 사대부가 여인들의 심상과 일상이 잡힐 듯이 담겨있다.
선비들이 이미 익숙한 한문 해서 필의로 썼던 한글서예 조화체나, 그들의 서간문은 또 어떤가. 그들의 풍격과 성취한 학문의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곧 서예에는 시대와 인물을 읽을 포인트가 들어있다. 어떤 예술보다 서예는 역사와 역사를 이끈 인물들로부터 가장 가까이 있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학생들이 언젠가 서예를 다시 접하게 되는 때,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멋진 창작을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글자에 드러나는 효와 사랑과 우정
실기에서 학생들에게 간결한 주제를 제시하고 자기의 느낌을 드러내게 한 것은 참 괜찮은 시도였다. 느낌과 표현을 강조한 것은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계기였다. 예컨대 ‘부모’ 두 글자를 주재로 표현하기 과제를 냈을 때다. 서체는 각자가 선택하게 했다. 참 다양한 결과물들이 도출되었다. 학비 마련 때문에 땀 흘리시는 부모님의 사랑과 길러주신 은혜를 강조하면서 가졌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구름 운(雲)자에서도, 마음으로만 느끼는 기운 기(氣)자를 통해서도, 그들을 설레게 하는 ‘사랑’과 ‘우정’이란 두 글자가 주제로 주어졌을 때도 참 다양한 형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회화를 전공하는 학생들다웠다. 학생들의 흡수력이 놀라웠다. 작정하고 일정 기간 전지훈련이라도 시키고 싶었다. 그들에게 서예창작의 참맛을 충분히 알게 하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썩 좋은 성과를 얻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행을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지향하는 바가 각자 다른 서예학습인들 어찌 그 시간과 의미가 소중하지 않으랴. 저자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서예지도 현장에서 조화를 위한 절충을 거듭하고 있다. 학생, 주부, 직장인, 교사 등 각기 다른 포지션, 또는 성품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서예학습 목적과 저자가 지향하는 창작과 조화를 꾀하고 있다. 저자에게는 교육 또한 멋지고 보람된 창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좀 더 강력하게 창작지향으로 이끌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도 사실이다. 각자가 원하는 바와 최선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강력한 창작지향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신념 때문이다. 그 아쉬움과 신념이 모두 집약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글은 서예가 인재 손인식이 2016년 초 출간 예정인 책,
<일필휘지 자기 창작> 제5장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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