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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은 선에서, 멋은 여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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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30 07:02 조회2,101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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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동을 살려라
바람이 분다. 테라스 양 끝에 매달린 모빌이 합주를 시작한다. 하나는 중저음의 도톰한 깊은 소리, 또 하나는 고음, 청아한 맑은소리를 낸다. 보이지 않는 바람은 이렇게 소리로 바람의 율동을 알린다. 바람, 율동을 쉬지 않는다. 바람이 미동도 하지 않는 고요함 또한 또 다른 의미의 율동이다. 바람은 맑은 날에도 오고 흐린 날에도 더듬어 온다. 비를 몰고 올 때 바람의 율동은 힘이 거세다. 숲의 나무들은 바람의 지휘를 따른다. 키에 따라, 잎의 생김새에 따라 각기 다른 몸짓으로 합주에 열중한다.
 
율동은 시간예술인 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 리듬이다. 문학의 필수인 운율이다. 율동은 시각예술 서예를 지배한다. 획의 대소나 강약, 빠름과 느림, 번짐과 갈필까지 율동이 지배한다. 반복에서도 드러나고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어느 순간 나는 누구인가?’를 자문하는 것은 삶의 율동이요, 창작 욕구가 이는 것은 마음 안에 사는 율동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 어느 곳에도 율()이 없는 곳이 없다. 얼굴에도 있고 몸매에도 있다. 손가락 발가락, 손바닥의 손금까지 운율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 어디라서 율동 없는 곳이 있는가. 하루의 움직임은 온몸으로 토하는 리듬의 연속이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리듬이 함께 잔다. 나뭇가지 하나 뻗어 나가는 곳에도 율동이 깃들어 있고, 잠잠한 나뭇잎 방향마저 운율을 타고 졸고 있다. 산과 들의 솟구침과 펼침은 그 얼마나 장엄한 율동인가.
 
잔잔한 호수, 물 낯을 밀고 당기며 크고 작은 파문으로 흥얼거리고, 물에 잠긴 만 가지 고기들은 만 가지 춤으로 물과 고기 사이에 율동을 들인다.
창작자여 우주의 율동을 오늘 그대의 붓으로 그려내라. 그대의 율동 하나를 우주에 장식하여 우주를 생동하게 하라.
 

, 매혹의 붓 춤
붓이 자아내는 느낌 다양한 선으로 인해 붓글씨는 세상의 모든 글씨와 차별화된다. 서예가 예술일 수 있는 첫째 조건이 선에 있으므로, 서예창작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유정성(有情性), 즉 감정이 풍부한 선을 잘 구사해야 한다.
 
붓이 드러내는 선의 질감을 느껴보기 위한 실험은 간단하다. 붓에 먹을 찍은 다음 같은 힘, 같은 속도로 화선지 위에 선을 긋는다. 이때 붓이 머금은 먹물이 다 소비될 때까지 다시 먹을 찍지 않고 사용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실제 창작을 할 때도 이 원칙을 꼭 지키는 것이 좋다. 선질의 변화는 붓이 함유한 먹물이 차츰 소비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흔히 쓰는 지름 18mm 정도의 붓에 적당히 먹을 찍을 경우, 1cm 굵기 30cm 길이의 선 일곱 개 정도를 무난히 그을 수 있다. 이때 선의 질감은 일곱 개가 다 같지 않다. 점진적으로 질감이 변한다. 먹을 찍어 처음 긋는 선은 번진다. 중간의 선들은 윤택하면서도 탄력이 있다. 마지막 선은 먹이 소진함에 따라 붓이 갈라져서 거친 느낌의 갈필이 심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선의 변화는 작가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변화다. 이 자연스러운 변화 위에 다시 강약과 대소, 느림과 빠름, 곡선미와 직선미, 거친 맛과 단아함 등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선의 질감을 더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개성 있는 창작품이 생산되는 것이다.
 
초학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몇 글자건 먹이 다 소비될 때까지 써야 한다는 점이다. 예외도 있다. 번짐이나 강조, 개성 강한 작품을 창작할 때다. 어느 부분에서는 한 글자를 쓰는 중에 다시 찍고, 또 글자마다 먹을 찍을 수도 있다. 풍부한 번짐과 거친 갈필의 맛을 의도에 따라 활용하는 것이다. 창작에 정해진 규칙이란 없다.
 

정(情)은 선에서, 멋은 여백에서
시각성 뛰어난 서예작품 창작, 이것은 모든 서예가가 심혈을 기울여 추구하는 목적이다. 시각적 호소력이 크면 작품 내용 전달력도 더 좋을 것은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내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선과 구성만으로 완성한 추상형 작품도 많다. 내용보다 시각효과를 우선하는 작품들이다. 이 또한 서예창작의 영역이고 그 또한 서예창작의 특성이다.
 
시각예술 서예, 시선을 이끄는 서예작품의 공간은 두 가지다. 문자를 이루는 직접공간과 순수여백으로서의 간접공간이다. 여기서 공간이란 글자의 획과 획 사이를 말한다. 그리고 여백이라 함은 자간과 행간, 즉 글자와 글자 사이, 줄과 줄 사이에 형성된 여백을 말한다. 이 공간과 여백들은 획과, 문자의 배경이자 곧 작품이다. 문자는 선으로 읽히고 멋은 공간과 여백을 통해 드러난다. 공간과 여백운용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시각예술로서 서예의 멋은 공간운용과 여백경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포세신(包世臣,1775-1855)예주쌍집(藝舟双楫)에서 등석여(鄧石如,1743-1805)의 말을 빌려, 공간과 여백미의 중요성을 이렇게 밝힌다. “글자의 획이 드문드문한 곳에서는 말이라도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하고 획이 밀집된 곳에는 바람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좁혀 쓰며, 항상 흰 여백을 살피면서 검은 선을 배치하면 훌륭한 공간미가 생긴다.”
서예창작, 공간과 여백을 주목하라. 멋진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서예작품 감상, 공간과 여백을 주목하라. 감상자의 마음에 멋이 노닐 것이다.
 

, 느낌 그 무한함
, 선의 질이 서예창작의 관건이란 점은 이미 앞에서 밝힌 바다. 또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대게 초학자들은 한 획을 쓰고 붓을 다듬거나 한 글자를 쓰고 먹물을 다시 찍는다. 지적을 당해도 어느 사이 그렇게 한다. 바로 이것이 다양한 감정을 지닌 선을 구사할 수 없는 원인이다. 유념하지 않으면 처음 시작과 쉬운 것에서 큰 것을 놓치게 된다. 물론 붓에 먹물이 적어질수록 붓이 갈라지는 등 붓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것을 노력으로 훈련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집중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고, 또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익혀야 할 것만 명심하자. 멋진 창작을 위해서는 터득해야 할 것은 반드시 정복하고 넘어가야 한다.
 

선 이야기가 지루할 독자도 계시겠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이 서예의 존재 이유 첫째이기 때문이다. 역시 앞에서 소개했던 서예창작의 원리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수평선은 사람들에게 고요함이나 휴식을 느끼게 한다. 수직선은 활동 가능성을, 대각선은 활발한 활동성을 암시한다. 서예의 도구 모필이 자아내는 선의 감정은 더 다양하다. 서예를 깊이와 넓이, 느낌이 다양한 예술이라 하는 이유가 바로 선에 있다. 일체성(一體性), 상징성(象徵性), 문자성(文字性), 음악성(音樂性), 미술성(美術性) 등은 서예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는 형용사다. 율동미(律動美), 단순미(單純美), 백치미(白痴美), 유동미(流動美), 교졸미(巧拙美), 기운미(氣韻美), 내함미(內含美), 무법미(無法美), 소박미(素朴美), 졸후미(拙厚美) 등은 서예의 고유미를 형용하는 단어다. 질연(質姸), 웅후(雄厚), 청경(淸勁), 표일(飄逸), 고박(古樸), 화준(和峻) 등은 선과 구성의 특질을 표현하는 형용사 들이다. 이 외에도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 서예의 특성을 밝히는 형용사가 많다.”
 
이것을 좀 더 쉽게 느낌이 와 닿는 우리식의 말을 찾아보자. 매운 고추 맛, 담백하고 시원한 물김치 맛, 곰삭은 된장 맛, 알싸함, 달달함, 미적지근함, 뜨거운 느낌의 시원함 등, 이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맛을 형용하는 단어는 정말 부지기수다. 겨울 들판의 황량한 느낌, 가을 들판의 풍성한 느낌, 봄이 피어나는 산하의 느낌, 큰 강과 골짜기 물의 각기 다른 흐름에 대한 느낌 등 느낌에 대한 단어 또한 찾아내려 들면 많고 많다. 우리가 모두 이해하고 또 알고 있는 느낌들이다.
 
그렇다. 느낌을 알고 그 느낌을 이해하며, 그 느낌을 표현하려는 목적을 가지면 아무리 난도가 높은 선이라 할지라도 구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누구라도 조금만 노력한다면 세상에서 단 한 점만 존재하는 멋진 창작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인재 손인식이 2016년 초 출간 예정인 책,
<일필휘지 자기 창작>의 제4장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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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sozon님의 댓글

sozon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율동은 리듬과 연관이 있겠죠? 선생님의 현장 휘호에서 아주 천천히 그러다가 아주 빠르게 춤을 추 듯 리듬을 타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관객들이 쥐죽은 듯 집중해서 지켜보았지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선그리기는 영원한 숙제겠죠? 언제 쯤 살아 움직이는 선을 그릴 수 있을까요?

손명석님의 댓글

손명석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mobilewrite 대단하네 이런 좋은글이 으뜩하면 줄줄흘러나온당가 우리는생각지도못한글이네 친구 글 잘 음미하고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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