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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무의 영국여행기 14 : 여백의 나라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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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8-30 16:11 조회2,7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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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쓰는 예술 서예의 핵심은 여백에 달려있다. 빈 공간, 공허한 공간,
어쩌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공간이 핵심인 것이다. 선질의 아름다움과 다양성,
개성을 서예의 첫째 조건으로 삼지만, 선이 존재하는 공간, 즉 여백의 역할 또한 서예의
또 다른 첫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서예는 공간을 읽는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서예의 멋이 존재한다. 나는 서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절대 공간을
우선 설정하는 영국의 ‘보이드(void) 주의’를 예를 들곤 한다. 
2002년 출간한 저서 《서예 창작의 원리》에서도 그에 관해 다룬 적이 있다.
누구도 허물지 못할 여백 설정, 자연과 사람, 사회와 국가 간의 모든 관계에서
불가침의 보이드를 설정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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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은 설정일 때 더 느끼는 것이 많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중에 영국의 보이드주의,
즉 설정된 여백의 묘미를 영국 전역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참 흥미로웠다.
밀밭과, 유채밭 그리고 자연스러운 초지의 배치, 그 여백에서 절대 역할을 하는
방풍림 또는 경계선을 표시하듯 늘어선 나무들과 숲, 거기에 화룡정점이 되던
그림 같은 집과 양떼, 소떼, 말들, 이 목가적 풍경 모두는 그야말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상호 보이드였다. 채소조차도 경작하기 어려운 박토일까?
그 박토를 옥토로 바꾸고 또 가꾸려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들이 택한 보이드는 국토를 활용한 얼마간의 수익보다는 목가적 풍경일까?
아무튼 전국토의 공원화 이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물론 그것은 지리적 영향으로 인해 옥토라기 보다는 박토가 대부분인
유럽의 나라들이 어쩔 수없이 선택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다.
그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번 여행의 트랜짓 공항 카타르 도하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중동대륙을 거쳐 유럽대륙 횡단을 시작한 때부터
내려다 보이는 유럽의 대지는 의심스러울 정도로 목가적 풍경의 연속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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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기점으로 휴양도시 바스, 솔즈베리, 옥스퍼드, 윈드미어,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하이랜드를 거쳐 인버네스까지, 그리고 요크와 캠브리지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입성하는 대장정에서 펼쳐진 광활한 대지는 다 그렇게 경영되고 있었다.
국토 활용률 70%를 자랑하는 영국, 그것은 대부분 보이드주의에 입각한 것이 분명했다.
지주들은 그 토지를 그렇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의 충분한 보조를 받는다고 했다.
그렇다. 여백은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알맞게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보이드는 세계 어떤 나라의 도시에 비해도 공원 비율이 큰 런던이 절정이었다.
런던 중심의 하이드파크 같은 대규모 공원(약 42만평)에서부터 아담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학교 운동장만한 공원들까지, 런던의 인구는 800만명 정도인데 공원은 1,700여개가 있다고 했다.
도심에서 채 10분을 걷지 않아도 공원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 어찌 런던 시민들의 자랑거리가 아니랴.
시민들이 쌈짓돈을 모아 자연보호 구역을 사서 관리하는
<내셔날 트러스트>의 나라 영국이니 무슨 이야기를 더 덧붙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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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자 하는 영국의 보이드주의는 지금부터다.
참으로 지루하리만큼 일관되게 펼쳐지던 가꾸어진 대지, 그 보이드주의의 힘은
고풍(古風)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고풍은 오래된 자연마을이나,
오래된 건물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길바닥에 깔린 하수구 뚜껑,
도심의 철 울타리, 우체통, 공중전화 부스, 전국에 산재한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
그리고 구식인체로 여전히 시내를 누비는 투박한 버스 등 보이는 대상 거의 다였다.
영국인들은 모든 것이 다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위대한 생각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실제 그들은 모든 것에서 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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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나 가치가 있다고 여기면 조금 불편해도 감수하며 동조하고 협조하는
자세가 영국인의 프라이버시라 했던가. 역사를 보존하고 전통을 지키면 손해 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영국엔 이미 문화 보이드로 정착되어 있는 듯 했다.
무엇이든지 쉬 바꾸지 않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라 했다.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않는 것도 그들의 습관이라 했다.
아무리 오래된 집이라 해도 처음 집을 지을 때 부속품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오히려 집값이 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집을 수리 할 때 가급적 옛 부속품과 같은 제품을 찾아서
보수하는 것이 상식이라 했다. 그러므로 중고를 파는 상점이 항상 성업이라 했다.
2차 대전 때 미군들이 가져와 활용하고 버리고 간 수륙 양용 장갑차를 지금도
템스 강에서 관광용으로 운행을 하는 그들이라니.
왜 보이드주의 운동, 위대한 정신운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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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주의로 이해되는 영국과 독일의 전쟁 중 있었던 일화다.
영국의 처칠은 적인 독일의 히틀러에게 미래의 동량들이 학문을 하는
옥스퍼드 대학에 폭격을 하지 말 것을 청했다 한다.
물론 처칠 또한 독일의 미래인 하이델 베르그 대학에 폭격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상대국의 핵심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인 전쟁수행 중에도 그들은 역사에 남을
멋을 발휘한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멋진 여백 설정은 얼마나 여유롭고 지혜로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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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활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컨대 사교모임에선 종교와 정치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다고 했다. 토론을 좋아하는 그들, 헤겔의 변증법, 즉 정 반 합의
충돌을 거쳐 절대 값 도출해내기를 좋아하는 그들, 만약 그렇지 못할 때는
결투로 결판을 낸다는 그들에게 만약 암시적인 보이드주의 설정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공개 결투들이 뒷골목과 공원을 피로 물들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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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보이드주의가 얼마만큼 국가를 발전시키고 자국민을 보호했으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았을지 단순한 여행을 통해 다 알 수는 없다.
그로 인한 폐해의 유무 또한 알 수가 없다.
주마간산과 같은 여행 중에 그 몇 가지를 살필 수 있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바로 영국정신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게 된 점이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어떤 여백을 설정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된다는 점이다.
건강에 필요한 여백은 잘 설정하고 있는가. 감사함에도 미안함에도
그에 상응하는 여백을 설정하고 있는가. 아 이제부터라도
내 삶에 나만의 여백 좀 들여놓기로 다짐한 여행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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