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매카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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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5-11 09:43 조회1,8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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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 '공간'을 어루만지는 스포츠, 축구 | 우아하고 감상적인 공놀이 2010-06-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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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우루과이에 패하긴 했지만,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업그레이드된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수비 조직력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한국은 전반적으로 스피디하고 세밀하며 공간을 활용하는 '한 차원 높은' 축구를 선보였습니다.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떠나 월드컵 본선에서도 '아름다운 한국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게 제겐 즐거움이었습니다.(아르헨티나전은 예외입니다만ㅜ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는 그 이유가 축구의 핵심인 '공간'을 한국축구가 '억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이야말로 축구의 승부 뿐만 아니라 재미를 보장하는 핵심 키워드라는 것. 오늘은 그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평균보다 좀 더 인텔리전트한 팬을 위한 <우아하고 감상적인 공놀이>
그 다섯 번째 이야기 :: '공간'을 어루만지는 스포츠, 축구.
세계 축구의 화두는 바야흐로 '공간'이다.
많은 분들이 16강 진출로 감격을 맛보셨겠지만, 가장 큰 감격은 아무래도 그리스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스전은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한 게임이었고, 경기내용의 완벽함은 승부를 떠나 그 자체로 우리를 감격스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상징하는 하나의 의식이 박지성 선수의 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골은 그냥 한 골이 아니라 한국축구의 질적도약을 선언하는 의식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투지와 조직력, 체력, 홈 어드밴티지로 만들어진 2002년 4강 신화는 분명 판타스틱한 일이었지만 '질적도약'이라기 보다는 그간의 '열심히 하는 축구'의 연장선에 있었죠. 당시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의 골 정도가 앞으로 무언가 변할 것 같다는 기대를 품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 한국도 이런 골을 넣을 수 있구나!' 했던거죠.
그리고 그리스전에서의 이번 골은 정말 '질적 도약'이 이뤄졌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뻥 축구(한 때의 황선홍)와 크로스에 이은 헤딩슛(최용수)에 이어 새로운 스타일을 얻은 느낌입니다. 해설자로 나선 차범근 전 감독도 '이제 선진축구의 냄새가 난다'라고 했더군요.
한국 축구의 고질병이었던 '문전 처리 미숙'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얘기가 좀 돌아나왔는데 대표팀 경기에서 곧잘 골을 넣는 박지성 선수는 소속팀에선 골결정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때문에 출전 기회가 다소 적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세계 탑클래스 명문구단에서 자기 자리를 잡았고, 출장하는 경기에서는 높은 평점을 받곤 합니다. 그 이유는 히딩크 감독도, 퍼거슨 감독도 공히 인정하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영리한 공간창출 능력'입니다. '공간 창출'이라는 것이 명문클럽에서 아시아 선수를 영입할 정도로 매력적인 요건이고, 중요한 요건이란 뜻이겠죠. (사실 TV로는 박지성의 진가를 온전히 확인하기가 힘듭니다. 카메라는 공이 있는 곳을 비추는데, 공간을 창출하려면 공이 없는 곳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죠. 가끔 TV시청 후 해외언론들의 높은 평점에 의아할 때도 많습니다^^)
이제는 국내 축구팬들도 박지성의 등장 이후 축구를 보는 안목이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축구를 처음 보게 되면 누가 골을 넣느냐에 집중을 하게 되고, 조금 지나면 슛이 가능하도록 누가 얼마나 정교한 패스를 넣어주었냐를 주목합니다. 조금 더 지나면 슛도 하지 않고, 패스도 하지 않았지만, 빈공간으로 달려가면서 상대 수비수들을 유인하여 '공격공간'을 넓혀준 선수를 주목하게 되고,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않는 수비 조직력을 보게 됩니다. 박지성 선수의 등장 이후 '공간'이라는 말이 익숙해지면서 국내 축구팬들도 이제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더라도 메시가 골을 넣고 있진 못하지만, 모두가 메시에 혀를 내두릅니다. 상대 수비수 3-4명을 끌고 다니는 메시로 인해 아르헨티나의 다른 공격수들이 활동할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죠. 메시는 모든 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데, 그가 바로 '공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루과이전에서 첫 골을 먹는 상황도 상대 공격수 포플란에 수비가 쏠려 있는 사이에 생긴 공간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축구의 화두는 바야흐로 '공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요즘의 트렌드라기 보다는, 애초 축구가 설계되면서 갖추게 된 조건에서 기인합니다.
여러 명의 수비를 달고 다니는 메시. 그의 동료들은 메시로 인해 자유로워 집니다.
'공간싸움'으로 설계된 축구
그렇다면 축구는 어떻게 '설계'된 스포츠일까요? 차근차근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축구는 정해진 규격의 그라운드에서, 정해진 숫자의 선수들과 하나의 공으로 이뤄지는 경기입니다. 그리고 공을 상대방의 골문 안으로 보내는 경기죠. 이걸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공의 '최종 목적지'가 정해져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공의 도착 지점이 분명하므로, 축구의 관건은 공을 무사히 최종 목적지로 안내하는 일입니다. 공이 나아가는 방향에 오로지 빈 공간만 있다면 가장 좋은 조건이겠죠. 골대를 향해 공을 뻥차서 들어가면 좋을테니까요. 하지만 많은 수비수들이 공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을 목적지까지 데리고 갈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결국 축구는 공의 목적지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목적지까지 정해져있는 것이죠. 선수들은 공과 함께 움직이면서, 골대로 안내해야 합니다. 공과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 이것은 축구의 중요한 조건입니다.(야구는 공과 사람이 나아가는 방향이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축구는 전략적으로 심플한 경기입니다. 어떤 전략을 쓰던지 최종적으로는 사람도, 공도 상대방 골문을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어떤 팀이든 이 조건을 무시할 순 없죠. 그래서 두 팀은 서로의 골대를 향해 진격하고, 서로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라운드의 규격이 정해져 있으므로, 상대를 온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라운드 안에서 몸과 몸이 부딪힙니다. 당연히 몸싸움이 발생하고,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패스가 이뤄지죠. 공격수는 수비수를 피해 패스를 받으려고 (수비수가 없는) 빈 공간으로 뛰어갑니다. 이것을 '공간의 창출'이라 하지요. 수비수는 또 따라가 공을 받지 못하도록 몸을 부딪힙니다. 이것은 '공간의 봉쇄'라고 하지요. 축구는 결국 공간을 만들고, 막기 위한 싸움입니다.
이런 면에서 축구의 근간은 '슛'이라기 보다는 패스와 몸싸움입니다. 슛이 '인생의 클라이막스'와 같은 것이라면, 패스와 몸싸움은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정해진 규격의 그라운드에서 공간을 얼마나 잘 창출하고, 공간을 얼마나 잘 봉쇄하느냐가 바로 축구의 기본인 것이죠. 그래서 축구가 선진화 될수록 패스는 정교해지고, 몸싸움 및 압박은 더 중요해집니다. (몸싸움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축구는 그 본질부터 원초적인 스포츠입니다. 영국이 종주국이지만, '신사의 나라'답게 오랫동안 축구를 홀대했었지요.)
한국축구의 중앙공격과 '공간의 활용'
제가 한국축구가 '질적도약'을 했다는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원래 한국축구의 득점 공식 혹은 공격 루트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측면에서 올리는 크로스를 중앙 공격수가 헤딩으로 넣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둔 아시아 최종예선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대표팀은 왼쪽에 서정원, 오른쪽 이상윤이라는 발빠른 측면공격수들이 크로스(센터링)을 올리면, 중앙에서 최용수가 헤딩슛을 하는 패턴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두 번째는 중거리슛이었습니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최용수. 측면에서 서정원, 이상윤이 올린 크로스는 최용수의 머리를 겨냥했고, 그의 머리는 상대 골문을 정조준했습니다.
이 두 가지 방식 자체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방식은 아닌데, 이 두 가지 위주로만 공격이 이루어지면 너무 단순화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첫 번째 방식을 위해서는 측면에 발빠른 공격수들이 열심히 뛰어서 크로스를 올리고 가운데에선 중앙공격수가 상대 수비와의 몸싸움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아시아에서는 통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이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에 중앙에서 정확한 슈팅으로 연결하기가 힘들었던 것이죠. 아시아에선 화끈했던 한국축구가 본선만 가면 답답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중거리슛은 애초에 확률이 높은 득점 방식은 아닙니다.
2002년 4강에 오를 때도 사실 이 방식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을용의 크로스에 이은 황선홍, 안정환, 박지성의 골은 모두 측면 크로스를 받아 넣은 것이었고, 유상철, 송종국의 골은 중거리슛이었죠. 설기현의 골, 이을용의 프리킥 골 정도가 예외였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랐던 것은 히딩크의 강화된 체력훈련을 통해 공격수들이 상대골문을 쉴 새 없이 휘저으면서 많은 '공간'이 생겨났다는 것이죠. 그래서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공격수들이 처리할 '공간'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 비해 중앙공격 시도는 많이 늘어났지만, 결정적 찬스는 주로 측면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 이천수의 프리킥골, 안정환의 중거리슛, 박지성의 리바운드골이 나왔습니다. 상대수비를 맞거나, 조금은 어설펐거나 했지만 경기의 내용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대표팀이 이제 측면 뿐만 아니라 중앙을 중요한 공격루트로 활용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중앙'을 활용한다는 것은 곧 '공간활용능력'이 증가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측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대 수비가 밀집된 중앙을 공략하려면 패스가 훨씬 세밀해져야 하고, 상대 수비 사이 사이의 공간을 잘 활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압박'이 세계축구의 트렌드인 상황에서 '좁은 빈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면 중앙에서 공격이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죠.
마침내 이번 월드컵에서는 상대의 빈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는 모습을 많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측면->중앙'이 아니라 '후방->전방'으로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들이 빛을 발했습니다. 특히 박지성이 빈 공간으로 찔러준 패스가 몇 번의 결정적 찬스를 만들어냈는데, 아쉽게도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간을 활용한 세밀한 패스가 살아나고, 좁은 공간에서도 공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공격은 어느 방향으로든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공격패턴이 다양해지면서 상대 수비들은 고전을 했죠. 해외 언론과 상대팀에 의해 우리의 공격진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활발해진 중앙 공격은 측면에서의 공간도 넓혔고, 결국 '아름다운 경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후퇴하는 수비수들 사이로 들어가는 전진패스는 가장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냅니다. 중앙공격이 강력해지면서, 측면의 공간도 열립니다.
일반적으로는 월드컵 본선의 중압감을 감안할 때, 약팀이라 여겨지는 팀들은 '문을 닫아 거는' 전략을 사용할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일본과 북한도 그런 전략에서 게임을 시작했죠. 결과적으로 안정된 수비를 선보인 일본은 성과를 올렸고, 북한은 실점 이후 공격에 나서다 수비가 더욱 무너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게임내용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북한은 정대세가 홀로 고립되었고, 일본은 역습이나 세트피스 상황에 의존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잘못은 커녕, 16강을 위해선 오히려 유효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승패보다 경기의 내용이나 즐거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다소 무료한 경기였죠.(일본의 덴마크전은 예외이긴 합니다.)
그에 반해 한국대표팀은 수비가 불안하긴 했지만, 대체로 게임을 장악하려 나섰으며 속도감있는 즐거운 경기를 선보였습니다. 축구경기는 승패 뿐만 아니라 재미도 '공간'과 관련이 있는데, 문을 걸어 잠그는 수비 위주의 전략은 '공격가능한 공간'을 좁힙니다. 저는 공간을 억압한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공간이 좁아지면서 많은 것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축구란 공간을 창출하고, 공간을 봉쇄하는 게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애초에 수비에만 치중해 공간을 모조리 봉쇄해버리면 창출할 여분의 공간이 줄어들어 버립니다. 결국 멋진 장면들이 나오기 힘들죠. 수비 사이를 멋지게 드리블 하거나, 수비 사이사이를 뚫고 나가는 세밀한 패스, 멋있게 휘어지는 크로스, 수비수의 몸에 맞지 않고 골문까지 도달할 수 있는 슈팅의 확률이 모두 줄어듭니다. 몸싸움의 확률만 높아지죠. 약팀이 이런 전략을 채택하는 것을 비난할 문제는 아니지만, 축구가 제공할 수 있는 '공간싸움'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공격하기가 너무 어려워도 문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대표팀은 공간을 억압하지 않은 경기를 했습니다. 덕분에 불안한 수비력으로 실점을 많이 했지만 재미있는 경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골을 먹는만큼 공격에서 만회하는 플레이를 했던 것이죠. 8강 실패를 아쉬워하는 많은 분들도 경기내용에 있어서만큼은 만족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프 사이드 : 역동적인 공간투쟁을 위한 단 하나의 장치
축구는 룰이 단순합니다. 정해진 규격의 그라운드를 공이 벗어나지 말 것, 손을 쓰지 말 것, 몸싸움을 정도 이상으로 하지 말 것, 심판을 속이지 말 것 정도입니다. 애초에 공과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경기이니 자신의 신체능력을 사용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축구는 원초적입니다. 축구장은 정교한 '제도'나 '규칙'이 작동하는 인간사회에서 조금은 특수한 공간입니다. 야구의 복잡한 룰과는 대비가 됩니다.
그런 축구에 유일하게 '고도화 된' 제도가 하나 있다면, 바로 '오프사이드'입니다. 오프사이드는 공을 받는 공격수와 상대팀 골라인 사이에 상대 선수 2명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규칙입니다. 즉, 공격수가 패스를 받을 때 그 공격수의 앞에는 일반적으로 상대팀 골키퍼와 수비수1명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만약 이 오프사이드가 없다면 모든 공격수는 최종 수비수 뒤와 골문 사이에서 우글거릴 것이고, 상대 수비도 함께 부딪힐 것입니다. 축구는 '골문으로 보내는 롱패스와 골문 앞에서의 육탄전'이라는 단순한 게임이 되어버리겠죠. 이를 막기 위해 '오프사이드'라는 다소 복잡한 룰이 고안되었습니다. 원초적인 게임에 '문명'이 스며든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오프사이드' 역시 '공간투쟁'이라는 축구의 성격을 역동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정해진 면적의 운동장에서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을 할당하기 때문입니다. 상대 최종 수비수의 뒷 공간으로 공격수가 미리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공격수와 수비수가 다투는 공간은 더욱 협소해집니다. 공간투쟁은 격렬해지고, 패스와 몸싸움은 더욱 발전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앞서 '수비 위주의 전략'이 공간을 협소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즐거움은 반감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프사이드 룰은 예외도 둡니다. 오프사이드 룰의 적용시점을 '공을 받는 순간'이 아니라 '패스를 하는 순간'으로 규정하여, 패스를 하는 순간 최종 수비수의 뒷공간으로 뛰어 들어가 패스를 받는 것은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박주영이 최종 수비수와 마주보고 있다가도, 기성용이 패스하는 순간에 최종 수비수를 지나쳐 빈 공간으로 뛰어들어가면 오프사이드가 아닌거죠. 이로써 축구는 공간을 더욱 역동적으로 활용하는 스포츠가 됩니다. 수비수 빈 공간으로 넣어주는 환상적인 패스가 나오고, 선수들 간의 호흡을 통해 패스하는 순간 빈 공간으로 질주하는 센스있는 플레이가 나옵니다. 질주하니 속도감이 빨라지겠죠. 오프사이드 룰을 허물면서 만들어내는 골은 대체로 멋지고, 시원합니다.
파란색이 공격. 빨간색이 수비입니다. 오프사이드 룰에 따른다면 빨간색의 뒷공간에 파란색이 미리 들어가 있다면 오프사이드입니다. 그 공간은 '접근불가'입니다. 하지만 패스를 하려 공을 차는 순간에 뒷공간으로 뛰어든다면 오프사이드 룰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오프사이드 룰은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순식간에 공간을 허락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프사이드 룰이 허물어지는 순간, 축구는 가장 역동적입니다.
이렇게 축구는 공간을 둘러싼 게임입니다. 그래서 '공간'을 이해하면 선수나 축구를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공과 멀리 떨어진 선수라 할 지라도, 전투를 행하고 있습니다. 빈 공간에 홀로 서 있는 그는 상대가 활용할 다음 공간의 일부를 봉쇄하기 위해 악전고투 중입니다. 마치 매일매일 평범한 일과를 보내는 우리들이, 사회를 굴려가는 중인 것과 같이 말이죠.
때문에 '공간'을 이해한다면 다소 관대하게 축구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선수들을 질타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이죠. 모든 선수들은 매 순간 사력을 다하고 있고, 간혹 실수를 저지릅니다. 마치 우리들의 인생도 적도 갖은 실수와 오점을 남기듯이 말이죠. 인생에서의 실수의 빈도와 90분간의 플레이에서 실수의 빈도 중 축구선수들이 더 자주 실수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사건들인 셈이죠. 그래서.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이 우리에게 남은 일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