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sunny039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5-05 11:43 조회3,762회 댓글1건본문
등산에는 ‘등산의 세계’라는 것이 있다.
등산에서만 느끼고 등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말한다.
등산의 세계는 등산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소하나 그렇다고 산에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그런 세계도 아니다.
등산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독자적 세계로, 유별난 의미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등산은 물론 자연과 인간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등산에는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두 가지 측면이 언제나 공존한다.
그러나 등산의 세계라고 할 때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등산가의 정신적 세계를 뜻한다.
등산에는 마땅히 등산이 벌어지는 무대라고 하는 것이 있으며, 이것을 프랑스의 등산가 폴 베시에르는 특히 “깎아지른 암벽과 톱날 같은 능선, 눈과 얼음, 고도와 허공과 넓은 공간”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자연적 조건은 등산의 외부적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등산에는 내면적 세계가 있으며, 등산가들이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측면이 그것이다.
등산의 세계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등산하는 사람의 의식과 감정에 따라 그의 행위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산에 가면 그 시간이 즐겁고 맑은 공기 속에서 기분이 상쾌함을 느낀다.
산행이 다소 힘들어도 그런 줄 알고 택한 것이니 그렇다고 불쾌하거나 불만스럽지 않다.
그리고 하루의 산행에서 피로를 느껴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달리 생각하지 않는다.
이른바 주말 등산애호가들의 등산의 세계는 대체로 이렇게 보아서 좋을 듯하다.
등산은 그 범위와 규모에 따라 양상이 크게 다르다.
일일 산행과 며칠 걸리는 원거리 산행부터 시작하여 고산군을 향한 이른바 원정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산행에서 등산가들은 저마다 그때그때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자기로서의 등산의 세계를 발견한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며 행동한다.
그러한 의식과 행위가 등산가의 활동 무대를 규정하는 경우를 우리는 세계 등반사에서 흔히 본다.
에드워드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 아이거 북벽의 쿠르츠의 죽음을 비롯해서 헤르만 불의 낭가파르바트 단독행과 크리스 보닝턴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 등은 그들 등산가들의 의식이 구체적 행위로 결정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게오르그 빈클러의 경우는 이들과 또 다른 것 같다.
단독행이라는 당시 빈클러의 독자적 세계를 그가 스스로 택해서 끝까지 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빈클러는 약관 19세에 알프스 바이스호른 설벽에서 그의 생을 마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단지 무서움을 모르는 젊은 패기로 그런 산행을 감행했다고만 볼 수가 없다.
필경 그에게는 그야말로 자기만이 아는 등산의 세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빈클러의 단독행의 세계는 단순한 고산이나 거벽의 세계와 준별되는 요소와 조건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등산은 등산가에 따라 그 세계가 규정되며 그 구체적 정황을 우리는 등산가가 남기는 산행기에서 엿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등산가가 부딪치고 겪는 구체적 양상이 산행기를 통해서 비로소 감정 이입된다.
이러한 등반의 기록은 등산가 누구나 반드시 남긴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계 등반사를 좌우해온 이른바 ‘그레이트 어센트’는 그 기록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산행기가 단순한 산행 과정의 기록이면 그것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
등산의 어려움과 위험이 누누이 적혀있다면 거기 우리는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등산의 세계는 조금이라도 등산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산행기가 한낱 고산의 명승 탐방기 같아서도 문제다.
고산일수록 그 자연이 웅대 장엄한 느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등산가가 그러한 대자연과 마주칠 때 그 감동이 예사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등반기의 생명은 이런 데 있지 않다.
등반기가 등반기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그 속에 바로 등산의 세계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
즉 등산가가 대자연 속에서 부딪친 정신적 상황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등산에는 고도 지향성이 있다.
고도는 고소를 말하며 거기에는 고소로서의 속성이 있다.
우리가 고산을 등반할 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속성이다.
예컨대 고소 캠프의 권태며 우울 그리고 고독감이 그것인데, 등반기에서 이러한 속성에 대한 기술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체험하면서 그러한 정신적 장해를 호소하는 글을 별로 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에베레스트의 경우, 아이스폴을 지나 로체 페이스로 이르는 구간의 대설원인 ‘웨스턴 쿰’ 지대를 1952년 처음으로 지나간 스위스 원정대가 ‘침묵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계곡의 중간 지점인 6500m 고소는 관례적으로 에베레스트 등반 때 전진 기지가 되는 곳인데, 이곳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한없는 권태 속에 빠져든다.
주위가 에베레스트 웨스트 숄더, 남서벽, 로체 페이스 그리고 눕체 등에 둘러싸여 그야말로 태고의 적막감이 몸에 배는 곳인데 이때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권태다.
1924년 “에베레스트가 거기 있으니까 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에베레스트 8500m 고소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는 그가 죽기 1년 전, 에베레스트에 대한 감회의 일단을 “아직 흐리는 일 없는 그 빛남과 사그러지지 않는 영광 그리고 정복되지 않는 드높은 지위가 그저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는데, 그러한 말로리도 히말라야 고소의 권태와 우울에는 어찌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76년에 역시 에베레스트를 체험한 어느 등산가가 ‘이제 드디어 정상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리로 올라갔다’고 당시의 등반 소감을 그의 산행기에 남겼다.
말로리와 이 후등자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들의 등산의 세계는 어떻게 다른가 생각해볼 일이다.
히말라야의 적막감은 대자연에서도 특이하다.
이것을 수직 세계의 적막감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수평 세계에서의 적막감도 있다.
20세기 초엽 남극점에서 돌아오지 않은 스코트가 호소한 적막감이 그것이다.
그때 스코트는 인간으로서 최초로 극지를 체험했는데, 그가 처했던 적막의 세계와 오늘의 남극대륙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시의 극지는 그야말로 창세기 이래의 극지 그대로였으나 지금은 말뿐이다.
남극대륙이 그동안 문명에 젖을 대로 젖었기 때문이다.
자연에 속성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속성이 있다.
고독과 권태와 우울 등이 그것인데, 대자연에는 이밖에 불확실성과 무한함과 적막감이 있다.
이것이 등산의 세계에서 등산가들을 괴롭히며, 등반 활동에 따르는 곤란과 위험 이상으로 등산가들에게 엄습해온다.
그런데 고소를 체험한 사람들이 그 특이한 정경을 산행기에 상세히 기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것은 그들의 의식이 그들이 처한 등산세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위대한 등반을 한 위대한 등반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끝내 고전으로 남는 그들의 산행기의 가치는 이런 데도 있다.
등산의 목표는 보통 정상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목표는 제한적인데 비해 과정은 언제나 영속적이다.
등산이 인생에 비유되고 인생과 끈질긴 관계를 맺는 것은 일시적 목표 달성보다 폭넓은 체험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등산의 세계를 등산가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그의 등산은 일종의 무의미한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는다.
등산에서만 느끼고 등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말한다.
등산의 세계는 등산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소하나 그렇다고 산에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그런 세계도 아니다.
등산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독자적 세계로, 유별난 의미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등산은 물론 자연과 인간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등산에는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두 가지 측면이 언제나 공존한다.
그러나 등산의 세계라고 할 때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등산가의 정신적 세계를 뜻한다.
등산에는 마땅히 등산이 벌어지는 무대라고 하는 것이 있으며, 이것을 프랑스의 등산가 폴 베시에르는 특히 “깎아지른 암벽과 톱날 같은 능선, 눈과 얼음, 고도와 허공과 넓은 공간”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자연적 조건은 등산의 외부적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등산에는 내면적 세계가 있으며, 등산가들이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측면이 그것이다.
등산의 세계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등산하는 사람의 의식과 감정에 따라 그의 행위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산에 가면 그 시간이 즐겁고 맑은 공기 속에서 기분이 상쾌함을 느낀다.
산행이 다소 힘들어도 그런 줄 알고 택한 것이니 그렇다고 불쾌하거나 불만스럽지 않다.
그리고 하루의 산행에서 피로를 느껴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달리 생각하지 않는다.
이른바 주말 등산애호가들의 등산의 세계는 대체로 이렇게 보아서 좋을 듯하다.
등산은 그 범위와 규모에 따라 양상이 크게 다르다.
일일 산행과 며칠 걸리는 원거리 산행부터 시작하여 고산군을 향한 이른바 원정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산행에서 등산가들은 저마다 그때그때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자기로서의 등산의 세계를 발견한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며 행동한다.
그러한 의식과 행위가 등산가의 활동 무대를 규정하는 경우를 우리는 세계 등반사에서 흔히 본다.
에드워드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 아이거 북벽의 쿠르츠의 죽음을 비롯해서 헤르만 불의 낭가파르바트 단독행과 크리스 보닝턴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 등은 그들 등산가들의 의식이 구체적 행위로 결정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게오르그 빈클러의 경우는 이들과 또 다른 것 같다.
단독행이라는 당시 빈클러의 독자적 세계를 그가 스스로 택해서 끝까지 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빈클러는 약관 19세에 알프스 바이스호른 설벽에서 그의 생을 마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단지 무서움을 모르는 젊은 패기로 그런 산행을 감행했다고만 볼 수가 없다.
필경 그에게는 그야말로 자기만이 아는 등산의 세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빈클러의 단독행의 세계는 단순한 고산이나 거벽의 세계와 준별되는 요소와 조건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등산은 등산가에 따라 그 세계가 규정되며 그 구체적 정황을 우리는 등산가가 남기는 산행기에서 엿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등산가가 부딪치고 겪는 구체적 양상이 산행기를 통해서 비로소 감정 이입된다.
이러한 등반의 기록은 등산가 누구나 반드시 남긴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계 등반사를 좌우해온 이른바 ‘그레이트 어센트’는 그 기록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산행기가 단순한 산행 과정의 기록이면 그것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
등산의 어려움과 위험이 누누이 적혀있다면 거기 우리는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등산의 세계는 조금이라도 등산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산행기가 한낱 고산의 명승 탐방기 같아서도 문제다.
고산일수록 그 자연이 웅대 장엄한 느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등산가가 그러한 대자연과 마주칠 때 그 감동이 예사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등반기의 생명은 이런 데 있지 않다.
등반기가 등반기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그 속에 바로 등산의 세계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
즉 등산가가 대자연 속에서 부딪친 정신적 상황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등산에는 고도 지향성이 있다.
고도는 고소를 말하며 거기에는 고소로서의 속성이 있다.
우리가 고산을 등반할 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속성이다.
예컨대 고소 캠프의 권태며 우울 그리고 고독감이 그것인데, 등반기에서 이러한 속성에 대한 기술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체험하면서 그러한 정신적 장해를 호소하는 글을 별로 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에베레스트의 경우, 아이스폴을 지나 로체 페이스로 이르는 구간의 대설원인 ‘웨스턴 쿰’ 지대를 1952년 처음으로 지나간 스위스 원정대가 ‘침묵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계곡의 중간 지점인 6500m 고소는 관례적으로 에베레스트 등반 때 전진 기지가 되는 곳인데, 이곳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한없는 권태 속에 빠져든다.
주위가 에베레스트 웨스트 숄더, 남서벽, 로체 페이스 그리고 눕체 등에 둘러싸여 그야말로 태고의 적막감이 몸에 배는 곳인데 이때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권태다.
1924년 “에베레스트가 거기 있으니까 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에베레스트 8500m 고소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는 그가 죽기 1년 전, 에베레스트에 대한 감회의 일단을 “아직 흐리는 일 없는 그 빛남과 사그러지지 않는 영광 그리고 정복되지 않는 드높은 지위가 그저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는데, 그러한 말로리도 히말라야 고소의 권태와 우울에는 어찌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76년에 역시 에베레스트를 체험한 어느 등산가가 ‘이제 드디어 정상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리로 올라갔다’고 당시의 등반 소감을 그의 산행기에 남겼다.
말로리와 이 후등자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들의 등산의 세계는 어떻게 다른가 생각해볼 일이다.
히말라야의 적막감은 대자연에서도 특이하다.
이것을 수직 세계의 적막감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수평 세계에서의 적막감도 있다.
20세기 초엽 남극점에서 돌아오지 않은 스코트가 호소한 적막감이 그것이다.
그때 스코트는 인간으로서 최초로 극지를 체험했는데, 그가 처했던 적막의 세계와 오늘의 남극대륙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시의 극지는 그야말로 창세기 이래의 극지 그대로였으나 지금은 말뿐이다.
남극대륙이 그동안 문명에 젖을 대로 젖었기 때문이다.
자연에 속성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속성이 있다.
고독과 권태와 우울 등이 그것인데, 대자연에는 이밖에 불확실성과 무한함과 적막감이 있다.
이것이 등산의 세계에서 등산가들을 괴롭히며, 등반 활동에 따르는 곤란과 위험 이상으로 등산가들에게 엄습해온다.
그런데 고소를 체험한 사람들이 그 특이한 정경을 산행기에 상세히 기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것은 그들의 의식이 그들이 처한 등산세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위대한 등반을 한 위대한 등반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끝내 고전으로 남는 그들의 산행기의 가치는 이런 데도 있다.
등산의 목표는 보통 정상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목표는 제한적인데 비해 과정은 언제나 영속적이다.
등산이 인생에 비유되고 인생과 끈질긴 관계를 맺는 것은 일시적 목표 달성보다 폭넓은 체험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등산의 세계를 등산가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그의 등산은 일종의 무의미한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는다.
댓글목록
휴나라님의 댓글
휴나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정말 자연을 상대로 도전을 하다는 것 보다는 같이 공생하며, 자연을 존중하고 그곳에서 배우고 돌아가야 할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