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종은 시>일기, 조자연의 빈집
페이지 정보
작성자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7-08 10:47 조회265회 댓글0건첨부파일
- 조자연 빈집.pdf (45.3K) 0회 다운로드 DATE : 2024-07-08 10:47:29
본문
조자연 <빈집>
빈집
조자연(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배부른 허기에
지문의 물결로 얼룩진
은색 냉장고 문을 열어요
텅 빈 냉장고는 고요한 설원,
하늘까지 그득히 쌓인 하얀 눈
그리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얼음 들판
마음마저 얼어붙는 이곳에서 나는
겨울 없는 나라에서 온 당신을 찾아요
당신의 발자국은 영영 보이질 않고,
주인 잃은 선홍빛 칠리소스만
얼음벽 뒤에서 모질게 나를 쳐다보네요
우리 인연은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당신은 유통기한이 다가온 듯
얼얼한 찬바람 속으로 숨어버렸어요
♠시 읽기)
간혹 필자에게 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이 질문을 더욱 넓게 들여다보자면, ‘무수한 예술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냐’로 되묻을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시’라는 장르 또한 이미지의 예술이니, ‘이해’보다는‘느낌’을 강조하고 싶다. 인용시 「빈집」은 어떤 느낌일까? 시인이 풀어놓은 단초들을 맞춰보자. ‘텅 빈 냉장고’와 ‘배부른 허기’, ‘마음마저 얼어붙는 이곳’과 ‘겨울 없는 나라에서 온 당신’을 대조시키며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상반된 이니지가 대립하는 극명함 속에서 시인은 ‘당신의 유통기한’라는 변곡점을 찍는다. 굳이 ‘당신’이 누구일까에 머물기보다, ‘당신’의 자리에 ‘나’와 ‘우리’를 대입하면 어떨까?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한 편의 시에서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고, 생각할 거리가 넘쳐난다면, 단연코 ‘좋은 시’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다. 그 해답을 「빈집」을 읽으며 내내 곱씹어 본다. 당신의 유통기한은? 나의 유통기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