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페이지 정보
작성자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1-28 15:27 조회542회 댓글0건본문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김주명
8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필자에게 가장 큰 고통은 야간자습 시간이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처럼 시험이 있는 날은 야간 자습이 없으니, 오히려 시험이 기다려질 정도였다고 할까? 그래도 자습시간이면 단짝인 친구와 소소한 비행(?)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늘은 친구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신간이라며 몰래 읽고 있다. 어디, 나도 좀 보자며 책을 펼쳤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몇 군데 삽화를 먼저 보며 휘리릭 넘겨 가는데, 당시 추리소설에 빠져있던 필자의 호기심을 끌만한 내용은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보는 둥 마는 둥, 초저녁잠이 이내 올려왔다.
“미스터, 미스터!”
가루다항공의 승무원이 나를 깨운다. 좌석을 확인하고 앉았다 싶었는데, 그새 잠이든 모양이다.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는 어느새 순항고도에 진입했고 승무원이 기내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맥주를 주문하니, 붉은 별 마크가 선명한 캔맥주와 안주로 작은 땅콩봉지까지 제공되었다. 우선은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고 땅콩을 하나 입에 넣어 씹는데, 묘한 맛이 올라왔다. 민트향 같기도, 제피 맛 같기도 한데 딱히 무어라 할 수 없는 맛, 하나를 더 씹어도 꼭 같았다. 뭘까?
땅콩 봉지를 자세히 보니, 진녹색의 잎이 아주 잘게, 땅콩 이곳저곳에 붙어있었다. 저 잎에서 나는 맛일까? 낯선 비행기 안의 풍경과 낯선 맛을 되씹으며 앞으로의 일들을 체크리스트 펴듯이 눈을 감고 머리속에서 미리 그려본다. 비행기는 잠이든 필자를 라임의 원산지로 데려가고 있다.
열대의 나라, 동남아시아에서는 정말로 라임오렌지를 많이 보게 된다. 과일 주스에서 제일 흔하게 쓰이는데 주로, 마지막 맛의 장식용으로 1/4토막 정도 토핑처럼 얹혀있다. 그리고 식당에서 주문하는 음식의 거의 대부분에도 라임이 올라온다, 마지막 신맛으로 주문한 메뉴의 맛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혹, 태국의 똠양꿍 처럼 국물이 있는 음식에도 맨 아래 나지막이 가라앉은 새끼손가락 첫마디 크기의 연한 녹색 잎이 눈에 띈다. 저 잎이 뭐냐고 물어보면 여지없이 라임 오렌지나무의 잎이라고 한다. 아! 그렇다면, 비행기에서 마주친 낯선 맛의 정체도 저 라임 오렌지 나뭇잎? 그럴 수도 있겠다.
라임 오렌지에는 무슨 특별함이 있어서 저리도 사랑받는 것일까? 톡 쏘는 신맛의 과즙과 입안을 감고 있는 잎의 민트향 때문일까? 그렇다고 이곳 사람들은 그다지 신맛을 즐기지도 않아 보이는데, 문득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임금님 음식을 총괄하는 제조상궁이 다음 후임자에게 신주처럼 인계하는 작은 단지, 그 안에는 바로 신맛, 식초가 몇 백 년째 전수되고 있었다. 24시간 K-드라마가 방송되는 이 나라에서는 그 장면을 어떻게 이해할까?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 라임 오렌지는 맛의 꾸밈음 같다. 영화에서는 등장하는 주연과 조연의 관계처럼 주제와 부제는 서로를 만들어주기 위해 상응하게 된다. 맛의 세계도, 나아가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from 롬복시인
사진촬영하신 롬복의 「나루투어」 박태순 대표님은
‘롬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유튜브 ‘롬복의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