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뗌뻬(Tempeh), 콩 스테이크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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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1-18 06:50 조회801회 댓글0건본문
뗌뻬(Tempeh), 콩 스테이크를 추천합니다!
김주명
롬복섬은 동서가 100km 정도 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비교적 작은 섬이다. 서쪽으로 발리와 30여 킬로 떨어져 있어서 서쪽 해변이 관광지로 먼저 개발되었으며, 지금은 풍광이 빼어난 남쪽 해변을 개발하고 있는데 주로 꾸따(kuta)지역이다. 해마다 이슬람 새해가 되면 이곳 사람들은 바닷가를 찾는 풍습이 있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즐기는 해변의 바캉스인 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를 우려해 지난 3년간 많이 자제되었던 이 풍습이 올해는 성황을 이룰 듯 하다.
이주한 이듬해인 2011년, 필자도 첫 해변의 바캉스에 따라나섰다. 황금빛 모래와 하늘같은 바다가 인도양 쪽으로 넓게 펼쳐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초로의 부부와 눈을 마주치는데, 덴마크에서 왔다고 한다. 나도 코리언이라고 답을 보내자,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다며 나 보다 들뜬 기분으로 반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부는 한국의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고 했다. 템플스테이라니? 게다가 땅 끝 마을의 미황사까지 직접 찾아갔다고 하니, 그들의 열정에 듣는 이가 절로 경건해진다. K-관광의 진면목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은? 일주일 정도 미황사에 머물렀다는데, 종교적인 이유보다도 개인적인 명상을 즐긴다는 부부는 한국의 사찰 음식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나물 위주인 채식의 매력에 빠졌다고 하며 자신들 또한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부를 위해 인도네시아 음식 중에서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어오는데, 나는 단번에 ‘뗌뻬’라고 답을 주었다.
뗌뻬(Tempeh)는 콩 발효식품이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중부 또는 동부자바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한다. 이는 뗌뻬에 대한 기록이 문헌에는 전혀 없다는 것과 뗌뻬가 귀족이나 왕족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서민의 음식이라는 점에서 기록이 없는 이유를 짐작해 본다. 뗌뻬를 만들기 위해 처음 사용된 콩의 종류는 자바의 자생종인 검은콩이었고 나중에는 한반도와 만주가 원산지로 알려진 황색 대두가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대두로 바뀌었다. 만드는 원리는 메주와 아주 비슷하다.
먼저 콩을 불리고 잘 삶는다. 그리고 이를 잘 으깨어 반죽 후 보관하기 위해 티크 나무와 바다 히비스커스 잎에 싸 두었는데, 삶은 콩에서 흰 곰팡이가 자라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뗌뻬의 시초가 된다. 흰 곰팡이가 자란 콩은 식감도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빨리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팔고 있는 뗌뻬를 보면 하얀 곰팡이를 쉽게 볼 수 있다. 물에 삶거나 기름에 튀기면 이 곰팡이는 눈 녹듯 사라지니, 이방인의 눈에는 신기하게 비칠 뿐이다. 지금은 콩을 삶고 난 뒤, 반죽을 하면서 뗌뻬 스타터(tempeh starter)라 불리는 흰 곰팡이 균을 직접 섞어 반죽하기 때문에 발효도 빠르고 그만큼 위생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정말 삶은 콩 맛이었다. 소금으로 약간 간을 한 듯 보이지만, 뗌뻬 자체로는 특별한 맛을 낸다고 보기엔 뭔가 부족했다. 그저 밋밋한, 삶은 콩 맛 일 뿐이다. 그런데 이 밋밋한 맛은 어떤 양념과도 잘 어울리며 무수한 음식의 종류를 만들어 낸다. 주로 볶아서 입맛에 맞는 양념으로 조리해 먹는데, 이렇게 조리된 뗌뻬는 2∼3일을 밖에다 그냥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기를 대체하는 요리나 고기와 함께 요리를 해서 먹는 것도 일반적인 방식이다. 잔치에 주로 쓰이는 ‘른당’이라는 소고기 찜 요리가 있는데, 이때도 뗌뻬는 고기가 부족한 부분을 든든히 메꾸어 준다.
식민지배 시절, 유럽인들은 이곳에 와서 처음 뗌뻬를 보고서는 살짝 튀겨낸 다음 스테이크 소스를 곁들여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케이크나 스튜를 만들 때도 이 뗌뻬를 응용한다고 하니, 밋밋한 뗌뻬의 맛이 가지는 포용성은 실로 놀라울 뿐이다.
2018년,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의 소개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뗌뻬는 한인들의 모임에도 자주 등장한다. 어묵 대신 볶으니 맛이 그만이더라, 뗌뻬로 전을 붙여도 되더라, 아니 뗌뻬를 그냥 튀겨서 먹으니 제 맛이더라 등 뗌뻬를 응용한 여러 가지 조리법을 나누며 외국 생활에서 느끼는 2% 부족한 무엇을 공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솔깃한 레시피는 뗌뻬를 물에 풀어 된장과 섞어서 끓이면 청국장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청국장 맛이 날까? 뗌뻬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그리고 흔한 식재료인 뗌뻬에 왜 이렇게도 유난을 떨까도 싶다. 이국에서 우연히도 마주친 발효식품에서 메주를, 청국장을 떠 올리며 향수를 달래기도 하겠다. 그리고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마지막 장면처럼 동이가 왼손잡이 임을 직감한 허생원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게 낯선 이국의 땅에서 ‘콩’이라는 삶의 유전인자가 공통분모로 녹아 있음을 발견한 순간, 그때만큼은 낯선 음식이라도 더는 낯설지 않으리라.
from 롬복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