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안남미(安南米), 식은 밥과 찬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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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1-02 18:26 조회668회 댓글0건본문
안남미(安南米), 식은 밥과 찬밥 사이
김주명
K-열풍이 뜨겁다. 지구촌 어디에서라도 그 열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해외 거주 한국인도 7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어디에도 쉽게 한국을 접할 수 있다. 이 열기 속에서 K문학의 도약을 눈여겨 볼만하다. 인도네시아에도 한국의 소설이 번역되어 서점가에 진출하였고, 시도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 때문일까? 시詩보다는 소설에 대중의 관심이 우선 집중되고 있다. 2016년에는 문정희 시인의 시선집을 시작으로 공광규 시인, 최준 시인의 시가 번역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필자도 반가운 마음으로 출간 행사에 참석하며 한국시의 맛을 전하는데 함께 했던 기억이 새롭다.
다시 밥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제 안남미로 지은 밥이 왜 부석한 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선은 안남미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이고, 쌀을 불리지 않고 찜솥으로 찌다 보니 우리의 입맛에는 더욱 부석할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게다가 다 된 밥을 또 억지로 식혀서 먹으니, 그렇다면 쌀을 미리 불려 냄비에 조금씩 밥을 해서 바로 먹으면 되겠는데?
정말 그랬다. 정답은 ‘냄비밥’이었다. 그 뒤 줄곧 필자는 동네 들녘에 자라는 안남미로도 찰진 밥을 짓는 ‘밥 당번’이 되어야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식은 밥이다. 이방의 아내에게 식은 밥을 어찌 설명해야 하나? 여기 말로 식은 밥을 이야기하자니, 자연스레 ‘찬밥’으로 번역되어 버린다. 이때 K문학의 선두주자인 문정희 시인의 ‘찬밥’이란 시가 스친다. 찬밥을 먹는 화자를 통해 어머니를 회상하는 다소 슬픈 시로 기억되는데, 마침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도 되어있으니 아내에게 내밀었다. 가볍게 놀라기도, 또 더 가볍게 웃으면서 한참을 읽더니 고개를 끄떡인다. 비로소 내가 찬밥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냄비밥의 명성(?)이 동네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밥이 모지라거나 아이들 밥이 필요한 이웃이 내가 지은 냄비밥을 맛보면서, 미스터 김의 집에는 늘 먹기에 좋은 따뜻한 밥이 있다는 것이 삶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동네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또 밥 당번이 되어 밥만 챙겨 오라고 하니, 매번 밥 짓는 양이 늘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는 잔치 준비로 분주한데 뒷집 사람이 나를 찾는다. 내일 잔치에 쓸 밥을 오는 저녁에 미리 해야 하는데, 필자를 부른 것이다. 잔치라고? 잔치라면 밥하는 양이 어림잡아도 쌀 100∼200kg은 쉽게 하는데,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또 강권하고, 내심 낯선 이방인과 함께 잔치 준비를 하자는 것일 수도 있고 해서 따라나섰다. 그리고 꼬박 하룻밤, 장작불을 때 가며 밥만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온다. 잔불 정리하고 집에 가려는데 고생했다며, 혼주 측에서 준비한 약간의 쌀과 닭 한 마리(살아 있는)를 내민다. 그렇게 미스터 김의 밥 짓기는 동네에서 공식 인증을 받은 셈이니, 이제 아내에게 자랑해도 무방하리라.
세월이 변하니 밥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밥심으로 살았던 때가 언제냐는 듯 밥은 탄수화물 비만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그래서 한국에서는 오히려 안남미의 수요가 늘어난다고 한다. 칼로리가 적고 소화도 잘되어 다이어트식으로 각광받는다니 이제는 배가 쉽게 꺼지는 게 좋은 쌀인가?
밥의 소비패턴도 많이 바뀌어 밥이 볶음밥이나 김밥, 버거 등 또 다른 가공식품으로 활용되어 당연 찰기가 덜한 안남미를 찾게 된다. 또한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증가도 안남미 수요를 늘린다고 하니, 쌀의 국제적 루트가 만들어지는 듯 보인다. 그리고 통일벼도 수십 년간 꾸준히 품종을 개량하여 안남미의 본고장으로도 진출한다고 한다. 또 다른 K쌀의 돌풍을 미리 예감해 본다.
벌써 점심때가 되었나? 벼 베기로 한 참 바쁜 들녘이 조용하다. 멀리서 함께 밥 먹자는 손짓이 나를 부른다.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 했던가? 살다 보니 찰진 밥이 아니라도, 밥이 식어도 잘 먹는다. 나의 한 끼 배부름에 동네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이방인이 맞이하는 삶으로써 감사할 뿐이다. 어느새 밥이라는 큰 집합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나락 털어내던 박자에 맞춰 무성한 잡념 또한 털어낸다.
from 롬복시인
사진촬영하신 롬복의 「나루투어」 박태순 대표님은 롬복 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유튜브 ‘롬복의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