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원 | 한*인니문화연구원 310회 문화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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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인니문화연구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9-05 21:48 조회8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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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문화의 단비를 맞다.
박 송숙(가정주부)
항상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던 저에게 인도네시아는 문화의 가뭄 지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지낼때 평일엔 직장에 묶여, 주말엔 육아에 묶여, 마음만큼 자주 가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공연, 전시회에 항상 관심이 많았거든요. 기회가 되면 직접 가보고, 아쉽게 가보지 못해도, 별처럼 수많은 블로거들의 평으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핑계같지만, 타국에서는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영화 한편 보기에도 망설여졌고, 전시회나 문화 행사가 열리는지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으며, 알고도 아쉽게도 가보지 못한 행사에 대한 간접 경험도 어려웠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지인이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인도네시아 독립72주년 기념, 6개 대통령 궁 소장 그림 전시회 문화탐방 행사를 공유해 주었고, 고민없이 함께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탐방이 있던 8월 26일은 가족 여행이 계획되어 있던 주말이었으나, 다음달로 일정이 미루어지면서, 우연하고 다행스럽게 “모국의 노래, Senandung Ibu Pertiwi”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국립 갤러리 탐방에 참여할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건, 저만의 작은 에피소드고요.
탐방이 있던 8월 26일 토요일 오전 10시, 멋 모르고 따라나선 남편과 안 가겠다고 투덜거리던 아들(국립 박물관에서는 도슨트 턱밑에서 설명을 듣던 녀석이!)을 어렵게 모시고, 완연한 건기의 따가운 햇살을 뚫으며 도착한 국립 갤러리에는 이미 많은 로컬 피플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탐방 시작 시간이 10시 30분으로 조정되었다는 소식에, 잠시나마 땡볕으로 뜨거워진 숨을 돌리며 탐방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모여있던 한인 탐방객들을 밝은 미소로 이끌어 주시던 믿음직한 팀장님과 함께, 공항만큼 삼엄한 수색을 통과한 후, 처음 마주한 작품은 초대형 작품, 콘스탄틴 에고로비치 마코프스키(Konstantin Egorovich Makovsky)의 “러시아 결혼식” 이라는 그림이었습니다. 워낙 대형 작품이라, 보고르 대통령 궁에 걸린 원본을 직접 접할 수 없는 아쉬움을 LED 화면으로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 IT 기술의 섬세함에 놀라며, 대담하고 화려하고 밝은 색채로 러시아 전통 결혼식을 묘사한 작품에서 저는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어, 마지못해 다음 작품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납니다.
▲ Konstantin Egorovick Makovsky - Russian Wedding
그 다음 기억에 남는 작품은 웬뿌르(Wen Peor)의 “보름달(Terang Bulan)”이라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한눈에 봐도 중국풍의 느낌이 났는데, 중국계 작가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을 대담하게 사용하면서, 원근법을 적극 활용한 그림이었습니다. 저도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늘 그득하지만, 이렇게 멋진 작품을 남길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아쉬워하며,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겼지요.
▲ Wen Peor - Terang Bulan (1958) / oil on canvas / 76 x 98 cm
다음에 접한 작품은 수조노(S. Soejono Ds.)의 “논가의 길(Jalan di Tepi Sawah)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대한민국 담양의 죽녹원 입구 ‘메타세콰이어 길’이 생각났고, 다시 한번 제 마음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그리워하던 고국의 경치를 아련하게 떠올리는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해외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사소한 기회도 고국의 일부분과 연결시키는 제 모습이 새삼스러웠습니다.
그 다음 기억나는 작품은 라덴살레(Raden Saleh)의 “물먹는 호랑이(Harimau Minum)”였습니다. 사실, 제목을 듣기 전, 눈으로만 접한 이 거대한 작품(160×116)의 첫인상은 단순히 ‘어둑하고 신비한 분위기의 밀림을 상당히 세밀하게 표현했구나’ 정도였는데, 그림의 제목을 듣고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보다 보니, 거대한 밀림 사이에서 보일락 말락 덩치 작은(실제로는 결코 작지 않았을텐데!) 호랑이가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제 눈에 포착되었습니다. 저 큰 몸집의 호랑이도,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보잘것없이 손바닥만하게 표현한 작가의 새로운 시각이 참으로 감동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덕분에, 더 고개 숙이고,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자기 반성도 하게 되었고요.
▲ Raden Saleh - Harimau Minum (1863) / oil on canvas / 165 x 122 cm
그 다음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자택에서 강도를 당해, 아쉽게 고인이 된 인도네시아 현대 미술의 거장, 동남아 사실주의 대표주자 바수키 압둘라(Basoeki Abdullah)의 “플로레스의 해변(Pantai Flores)”입니다. 솔직히, 저에게는 그림 자체가 대단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는데요. 인도네시아 독립 운동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인 Soekarno(수카르노)가 유배지 플로레스에서 해변의 이미지를 작은 크기의 수채화로 그려서 압둘라에게 유화로 그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배경이 있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플로레스에 가보지 않았던 화가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에 대해 살짝 의아했습니다만, 나중에 알고보니, 둘 사이의 친분이 상당했다고 하니, 이런 부탁을 허물없이 할 수 있었나 봅니다.
▲ Basuki Abdullah - Pantai Flores(1942) / oil on
canvas / 120 x 185 cm
자연경관에 이어 일상생활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라무알도 로카텔리(Ramualdo Locatell)의 “자바 논밭에서 쟁기질(Menggaru Sawah di Jawa)”,은 인도네시아 자바의 농촌 풍경을 그린 풍경화인데, 우리나라의 쟁기질하는 모습과 어찌나 비슷하던지, 덥석 친근감부터 느껴진 그림이었습니다. 멀리서 봐야 더 선명하다던 이 그림은, 해가 금방 떠오른 때 또는 석양 무렵의 아련한 느낌이 담겨 있는 우리네 농촌과 무척 닮은 풍경화였기에 더욱 정감이 갔습니다.
▲ Ramualdo Locatelli - Menggaru Sawah di Jawa / oil on canvas / 100 x 270 cm
다음으로 가슴에 남는 그림은 이지 타르미지 (Itji Tarmizi)의 “생선 경매 (Lelang Ikan)”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꽤 큰 사이즈(140×195)에, 그려진 인물도 많아서, 캐릭터별 표정을 읽는 재미가 있었지요. 중앙에 서 있는 부유해 보이는 한 남자는 능글맞고 비열한 미소(아니면 말고의 느낌!)를 짓고 있었고, 그 아래편의 소녀는 주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가오리의 꼬리를 들어 올리며 ‘이것 좀 보세요’ 하는듯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그림 오른쪽의 어부와 어부의 가족들은 ‘아니, 뭐라고요?’ 하는듯한 황당한 표정과 제스쳐를, 왼쪽 아래의 한 사람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채,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등장 인물의 몸짓과 생생한 표정이 작품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게 만들었던 재미있는 그림이었지요. 작품 설명을 듣고 났더니, 그림 속의 스토리는 이렇더군요. 생선 경매장에서 너무나 야박하게 값을 깎는 상인에게 어부와 어부의 가족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황을 그린 그림이랍니다. 설명을 듣고 나서, 저는 흠칫 뒷걸음을 쳤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살면서, 재래 시장에서 가격 깎는 일이 습관화되어 버렸는데, 앞으로는 자제해야 되겠다는 반성을 하면서 말이지요.
▲ Itji Tarmizi - Lelang Ikan(1963) / oil on canvas / 140 x 195 cm
다음 전시관은 인도네시아 전통의상 끄바야를 입은 여인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들로 인해, 확실히 다른 영역에 비해 화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지요. 역시, 미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맞나 봅니다.
이 전시공간에서 특히,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가장 매력적인 작품은 땀지딘(Thamdjidin)의 “녹색 끄바야를 입은 여자(Wanita Berkebaya Hijau)”였는데, 이유는, 단일 인물을 그린 초상화치고는 사이즈도 꽤 컸고(200×130), 녹색의 끄바야와 녹색의 주얼리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우아하고 기품있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섬세한 모습에 카메라 셔터를 눌러봤지만, 원본의 벅찬 느낌을 담기에 IT 기술은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많은 여자 중 한 명이 아닐까, 호사가들이 추측을 한다고 하네요.
▲ M. Thamdjidin - Wanita Berkebaya Hijau (1955) / oil on canvas / 200 x 130 cm
그 다음 인상적인 작품은 둘라(Dullah)의 “아쩨 소녀 할리마(Halimah Gadis Aceh)”였습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의 표정은 마치 카메라로 찍은듯 사실적이며 섬세했고,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뚱한 표정은 반전 매력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내 딸이 나에게 훈계를 들으며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면, 꿀밤 한대 때려주고 싶은 표정이랄까요? 작품집의 설명에 의하면, 이 작가는 다른 작품들에서 자연과 전통을 융합적으로 표현하곤 했다고 합니다.
▲ Dullah - Halimah Gadis Aceh (1951) / oil on canvas / 94 x 74.5 cm
이 공간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다약족 남녀의 전통의상을 표현한 한쌍의 그림도, 마치 사진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인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약족은 ‘깔리만딴의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종족이며, 먼 옛날 헤드헌팅의 풍습을 갖고 있던 종족이라지요. 무시무시한 전통과 달리, 이 아름답고 화려한 전통 의상 그림은 다약족에 대한 제 선입견을 지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다음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바수키 압둘라(Basoeki Abdullah)의 “냐이 로로 끼둘(Nyai Roro Kidul)”입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하얗게 일어나는 파도 중앙에,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범상치 않았을 눈빛을 우리에게 감춘 이 그림의 아름다운 주인공은 자바 섬의 남쪽 바다, 인도양에 산다는 신화 속의 바다 여신Nyai Roro Kidul(냐이 로로 끼둘)입니다.
신화에 의하면 그림 속의 주인공은 원래 서부 자바의 공주였는데, 어머니를 질투한 다른 부인들의 계략으로 마법에 걸려 어머니와 함께 흉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끝내, 어머니는 죽고, 그림 속 그녀는 이 비극을 끝내기 위해 바다에 투신했으나, 바다의 여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 바다에 갈때, 그녀가 좋아했던 초록색 옷을 입고 가면, 그녀가 바다로 끌고 간다는 무서운 전설도 있다고 하네요. 남쪽 바다의 한 지역인 라뚜 항구(Pelabuhan Ratu)에 사무드라 호텔을 세우려고 했을 때, 수카르노 전 대통령이 이 호텔의 한 방(308호)을 그녀를 위해 비워두게 했다는 후문도 있다지요.
▲ Basuki Abdullah - Nyai Roro Kidul (1955) / oil on canvas / 159 x 120 cm
다음 그림도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모티브인 작품이었습니다. 이 또한 바수키 압둘라(Basoeki Abdullah)의 “가톳까짜와 뻐르기와-뻐르기와띠 (Gatotkaca dengan Pergiwa-Pergiwati)”입니다. 대형 사이즈(255×170)에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이 그림에는 아름다운 두 여인과 남신이 등장합니다. 악귀에게 쫓기던 미모의 자매는 그림 속의 남신에 의해 집으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고, 후에 그림 우측의 푸른 옷을 입은 여인과 남신이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되는 신화를 그린 내용이었습니다. 미인과 사랑은 언제나 옳습니다.
▲ Basuki Abdullah - Gatotkaca dan Pergiwa-Pergiwati(1958) / oil on canvas / 255 x 170 cm
이외에도, 명상(Bertapa), 마리아(Madonna), 데와 신에게 드리는 기도(Sembahjang Dewa), 곡물의 여신, 데위 스리에게 바치는 제물(Sesaji Dewi Sri), 새벽 기도(Subuh) 등의 작품들이 제 기억에 추억처럼 남아 있습니다.
▲ I Gusti Ketut Kobot - Sembahyang Dewa (1962) / watercolor on canvas / 98 x 66.5 cm
▲ Abdul Djalil Pirous - Subuh, Doa VIII (1980) / serigrafi ("edisi 22/70") / 70 x 50 cm
실은, 8월 26일 탐방을 다녀온 후, 몇일동안 작품들의 감동과 잔상이 머릿 속을 맴돌아, 전시회 마지막날인 8월 30일에 국립 갤러리에 개인적으로 한번 더 다녀왔다는 것은 저만의 두번째 에피소드입니다.
독립 72주년 기념 잔치는 끝났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인도네시아 화가 바수키 압둘라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Jl. Keuangan Raya No.19, Cilandak Barat에 있는 바수키 박물관에 다녀와도 좋을것 같습니다.
가뭄 지대와 같았던 제 인도네시아 생활에서 문화의 단비를 맞을 기회를 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 사공경 원장님과 탐방 때 목이 아프도록 훌륭하게 작품 해설을 통역해 주신 조은숙 팀장님께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