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안남미(安南米), 정말 불면 날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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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2-27 23:13 조회677회 댓글0건본문
안남미(安南米), 정말 불면 날아갈까?
김주명
인도네시아 살기 시작하면서 안남미로 된 밥을 제대로 먹는데, 정말로 푸석하고 찰기가 없었다. 길거리에도 포장마차처럼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곳이 많았고 그곳에서의 밥은 더 하다고 할까? 손으로 밥을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찰진 밥맛을 몰라서일까? 이런 소소한 궁금증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에 대해서 조금만 살펴보자. 지구촌에서 경작되고 있는 쌀은 크게 두 종류로 볼 수 있다. 안남미를 대표로 하는 인디카 계열의 쌀과 일반미(아키바레 종)로 불리는 자포니카 계열로 나눌 수 있다. 당연 한국과 일본의 동아시아지역은 자포니카 계열의 쌀이 재배되고, 그 외의 지역은 인디카 계열로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비율로 따지자면 안남미가 주류인 인디카 계열의 쌀이 90% 정도라고 하니, 찰진 밥맛은 동아시아에만 존재하는 맛인지도…….
2011년,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이듬해 롬복의 사삭족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아내의 직장문제로 인해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조금씩 언어와 문화를 익혀갔다. 필자가 살고 있는 세간살이들을 살펴본 아내는 고깔처럼 생긴 작은 찜통을 하나 가져왔다. 그렇지 않아도 시장이나 지인의 집에서 다양한 크기별로 생긴 저 고깔 찜통을 봤고, 그럴 때마다 ‘저게 뭘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터라 더욱 호기심 있게 지켜보았다. 결론적으로 밥솥, 아니, 밥을 짓는 찜솥이었다.
쌀을 쪄서 밥을 한다는 건가? 잠시, 문화인류학 사전을 펼쳐보자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명권에는 “밥이 먼저냐, 떡이 먼저냐”라는 명제를 던진다. 이는 철기시대 이전, 출토되는 토기들의 형태에서 주로 음식 재료를 찌는데 쓰일 법한 큰 토기들이 먼저 발견된다. 고대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벼를 발견하고 어렵게 재배해서 수확까지 마쳤는데, 이를 어떻게 먹어야 하나?
쌀은 그대로 먹기 만만하지 않은 곡물이다. 그래서 고안 해낸 것이 ‘찌는 법’이라는 걸 출토되는 유물이 말해주고 있다. 아시아를 여행한 유럽인이 볶음밥의 맛을 못 잊어 쌀을 팬에다 넣고 온종일 볶았다는 웃지 못 할 이 사연은 쌀 문화권의 무수한 문화인류학적 유전인자를 건너뛰려다 일어난 일이기도 하겠다. 우리의 찰진 밥맛의 주역인 가마솥도 결국에는 철기시대가 시작되면서 등장했으리라!
아내가 고깔 찜통으로 밥을 한다. 찜통은 보기 쉽게 삼등분이 되어 있다. 맨 아래 칸에는 물을 채우고 다음으로 칸막이 역할을 하는 가림판(구멍이 숭숭 뚫려 있음) 위에 잘 씻은 쌀을 두 번째 칸에 채운다. 세 번째 칸은 물론 비어 있다. 나중에 밥이 되면 뚜껑까지 차겠다. 혹시 모르니 그래서 뚜껑을 고깔 모양으로 만들어 밥이 넘치지 않게 하는구나!
가스불에 올린 지 10여분이 지나니, 김도 나고 밥이 되어간다. 불을 조금 낮추고 또 10여분, 이제는 제법 밥 짓는 냄새까지 나는데, 고깔 뚜껑을 열어보았다. 신기하게도 한 솥 가득, 어느새 하얀 쌀밥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가스불을 끄고 시원한 곳을 찾아 그냥 두는 게 아닌가? 언제 먹을까? 뜸을 들이는 것일 수도?
밥맛이 궁금해 한 주걱만 얼른 퍼내니, 아내가 기겁을 한다. 뜨거운 밥을 먹으면 안 된다며, 밥을 뜨겁게 먹으면 이빨이 상한다고 그냥 두어라 한다. 아니, 밥은 뜨거워야 제맛이지, 아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숟갈의 밥을 호호 불며 먹었다. 이럴 수가? 여기저기서 먹어본 밥맛과 아주 달랐다. 적당히 찰지기도 하고, 오래 씹으면 약간 단맛도 풍기는 게 한국에서 먹던 밥맛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식으면 식을수록 찰진 맛은 식은 시간만큼 사라지고 부석하고 밥알이 입에 걸리는, 정말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밥만 남아 있었다.
집 앞에 펼쳐진 논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찰진 안남미의 밥상을 미리 연상한다. 이제 다시 논을 갈고 또 모를 심으면 이모작의 시작이다. 우리 인류는 각자의 입맛에 맞는 벼를 선택하였고, 그렇게 선택된 종자들이 저 들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선택을 하는 쪽이 강자인지, 선택을 당한 쪽이 강자인지, 물론 최후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자일 것이다. 강자가 넘실대는 들판을 앞에 두고 문득, 여기까지 와서 굳이 찰진 밥을 고집해야 하나? 찰진 기억이 그리워서 그런가?
from 롬복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