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원 | 한인니문화연구원 제77회 <열린강좌> 안미경 해설사가 들려주는 <경복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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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인니문화연구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2-15 11:52 조회650회 댓글0건본문
한인니문화연구원 제77회 <열린강좌>
안미경 해설사가 들려주는 <경복궁 이야기>
이번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주최한 제 77회 열림 강좌는 안미경 해설사가 들려주는 <경복궁 이야기>였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경복궁을 누구나 한 번은 방문해 보았을 것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경복궁은 내게 웅장한 궁궐의 모습이었다면 이번 강의를 듣고 난 후 나는 역사로나 규모로나 으뜸인 경복궁, 정치의 공간과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던 조선시대 왕실의 살아 숨쉬는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나 역시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역사를 품은 경복궁의 뿌리깊은 이야기로 더욱 경복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안미경 해설사와 함께 경복궁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왠지 경복궁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또한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궁의 모습이 모두 각자의 역할과 쓸모가 있었다니 이번 여름 경복궁 나들이를 갈 때는 경복궁 이야기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여기 저기 자세히 보일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태조 4년(1395년) 조선의 개국과 함께 창건된 경복궁은 ‘검이불루 (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다’라는 조선의 미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궁궐의 이름 ’경복’은 시경에서 가져온 ‘군자 만년에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지닌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서 273년동안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다시 복원되었으나 일제 시대 전체 규모의 10%정도만 남고 훼철되었다. 그 후 1990년 초부터 다시 복원이 시작되고 있다.
그럼, 광화문에서 경복궁을 지켜 주는 해치를 보며 경복궁 여행을 시작해 보자!
홍례문을 들어서서 영제교를 건너면 조정의 출입문인 동시에 임금님의 즉위식, 군사훈련 등의 지휘가 이루어진 정전의 정문인 근정문에 다다른다. 모든 궁궐과 절에는 돌다리가 있었는데 이는 물은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머물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하들이 다리를 건너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근정전은 임금이 신하들로부터 하례를 받고 법령을 반포하기도 하며 외교적 의전이 이루어진 곳이며 제 1품부터 정 9품까지 품계석이 배열되어 있어 신하들이 본인의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경복궁의 바닥은 울퉁불퉁한 돌인 박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눈부심을 방지하고, 조심스럽게 걷게 하여 미끄럼을 방지하였다고 한다. 또한 물이 고이지 않아 홍수에도 대비 할 수 있었다고 하듯 하나 하나 설계된 섬세함의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궁궐의 대부분이 목조양식이기에 화재에 굉장히 취약하여 화재 관련 부적을 만들거나 불귀신이 오더라도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가라는 정화수, 방화수를 드므에 떠 두었다.
또한, 경복궁을 장식하는 5가지 기본색으로 이루어진 단청은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면 평안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나무로 지어진 목조건물을 습기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왕의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는 조선 왕조가 영원히 번영하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만원 지폐에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집현전이 있던 곳,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곳 수정전 (좌)
연산군이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흥청망청이 유래한 경회루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