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단체 | 2023.5. 20 땅그랑 라파스 수감자들과 대화, 인도네시아 불교도 청년들과 대화, 자카르타 교민 법회 “과제가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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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5-23 15:33 조회5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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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네시아에서 교도소 수감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도네시아 청년들과 대화한 후 저녁에는 자카르타 교민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땅그랑 라파스 교도소는 1983년에 설립된 교도소입니다. 법관에 의해 판결받은 법률 위반자를 교화하는 곳이고, 그 역할을 영구적으로 하도록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수감자들에게 죄를 뉘우치게 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수감자들이 다시 일반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는 역할에 기준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교도소 내부에는 수감자가 약 3,000명이 있는데 이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복귀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업 교육, 심리 치료, 종교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땅그랑 교도소 내의 불자들을 위해 열리는 법회시간에 스님과 수감자들이 대화를 나누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교도소가 숙소에서 약 1시간가량 떨어져 있어 7시 40분경 땅그랑 교도소로 출발했습니다. 교도소에 도착하니 봉사하러 온 불교 청년 학생들 4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UBD(Universitas Buddhi Dharma) 대학교에서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인데 한 달에 한 번씩 땅그랑 교도소에서 불교 법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9시 20분쯤 스님과 일행은 교도소 입구에서 신분증 검사, 소지품 검사 등 철저한 개인 검색을 하고 교도소 안으로 입장을 했습니다.
교도소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와는 상반되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내부는 탁 트인 야외 공간이 있었고, 중앙에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공간과 작은 버스킹 무대가 있었습니다. 수감자들 분위기도 경직되거나 무겁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스님은 지나가면서 수감자들의 비좁은 방을 들여다보며 오늘 법회가 열리는 교도소 내의 작은 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법당은 한창 법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법회 준비를 마치고 오전 10시가 되자 일찍 모인 몇몇 수감생들이 먼저 테라바다식으로 삼귀의, 오계를 시작했습니다.
삼귀의 오계가 끝날 때쯤엔 약 30여 명의 수감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음이 조금 답답하고 억울하시죠? (웃음) 생활하기가 불편해서 어려운 것도 있지만 ‘내가 억울하다. 나는 죄가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 수 있어요. 같은 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는 죄가 없다.’ ‘죄가 있더라도 형량이 너무 많은 것 같다’라는 말을 하면서 억울해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 억울한 심정을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수감자들에게 가볍게 대화를 청했습니다. 교도소에 7년이나 있었는데 수감생활 중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뵐 수 없어서 슬펐다는 사람의 이야기, 마약에 중독이 되어버렸는데 여기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사람의 이야기 등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가 어느덧 1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가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있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워질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에요. 어떤 상황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공부하면 마음이 편안할 수 있어요.
여기 독이 든 음식이 있어요. 배고프다고 독이 든 음식을 먹어야 해요, 안 먹어야 해요?”
“안 먹어야 해요.”
“그런데, 먹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
“바보 같은 사람이요.”
“마약을 하면 내 건강에 좋아요, 안 좋아요?”
“안 좋아요.”
“돈 많이 들어요, 안 들어요?”
“많이 들어요.”
“가족들이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그러면 이것은 나한테 손해예요, 이익이에요?”
“손해요.”
“그래요. 여러분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바보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계속 바보 같이 살고 싶어요. 지혜롭게 살고 싶어요?”
“지혜롭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먹고 싶으면 귀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에이, 배고파 죽겠는데 그냥 먹고 죽으면 안 될까?’ 이렇게 유혹이 자꾸 일어나요. 그러니까, ‘에이 먹고 죽자!’ 했던 사람들이 다 여기와 있는 거예요.” (웃음)
독이 든 음식을 앞에 뒀을 때 아무리 먹고 싶어도 안 먹고 안 죽는 길을 택하든지, 먹고 죽는 길을 택하든지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에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앞으로는 바보 같은 짓은 안 해야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고 바보 같은 사람인 거예요.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존감이 없어지고,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억울해져요. 여러분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기죽을 필요가 없어요. 그렇다고 또 억울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요. 여러분들은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 자기가 자기를 해친 거예요.
지금은 내가 독이든 음식을 먹어서 배가 아픈 중에 치료하러 왔으니까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지나간 일은 후회해 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해요.
앞으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이 든 음식은 안 먹어야겠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내 것이 아니면 훔치지 말아야겠다. 아무리 마약을 하면 기분이 좋아도 마약은 하지 말아야겠다. 아무리 상대가 놀려도 때리지는 말아야겠다.’하고 다짐을 해야 해요. 왜냐하면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니까요. 이미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은 과보를 받는 수밖에 없어요. 독이 든 음식을 먹었으면 배가 아프니까 화장실을 몇 번 왔다 갔다 해야지요. (웃음)
그러니까 여기 있으면서는 편안하게 사세요. 그리고 밖에 다시 나갈 기회가 있으면 앞으로는 나를 해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약, 담배, 술 이런 것은 습관성, 중독성이 있습니다. 습관이 되면 계속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그것을 혼자 끊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밖에 나가서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또다시 마약, 술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감옥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까짓것 감옥에 또 가지 뭐!’ 하고 같은 잘 못을 또 하게 돼요. 그리고 다시 후회를 합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중독적 습관이 계속 없어지는 기간이에요. 병원 같은 효과가 있어요. 그러니까 치료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들 이 법회 시작하기 전에 다섯 가지 맹세했죠?
첫째,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보가 하는 행동입니다.
둘째, 아무리 돈이나 물건이 갖고 싶더라도 훔치지 않습니다.
그게 맛있는 음식에 독이 든 것과 같습니다.
셋째, 아무리 어떤 여성이 좋고 마음에 들더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껴안거나 추행하지 않습니다.
넷째, 말을 할 자유가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욕설이나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다섯째, 우리가 뭐든지 먹을 수는 있지만 술이나 마약 같은 중독성 물질은 섭취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습관이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통제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는 남도 손해 끼치고 나도 손해 끼치는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나가서 또 과거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여기 다시 와서 고생하는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할래요?”
“아니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아야 해요. 앞으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님과의 대화시간이 끝나자 수감자들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수감자들이 앞 다투어 스님께 인사를 하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발밑에 절을 하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수감자들도 있었고, 사진 찍기를 요청하는 수감자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습니다. 수감자들과의 자리가 끝나고 스님은 교도소를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마침 아침에 봤던 버스킹 무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감자 밴드의 공연을 보고 잘한다고 격려로 보시금도 준 후에 교도소를 나왔습니다.
오늘 자리를 마련했던 윈토모 씨가 말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저희가 외부인 초청 강연을 하면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서 한다는 것 자체가 수감자들에게 무거울 때가 많은데 오늘 스님의 말씀은 가벼웠고, 수감자들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자리를 마련한 저희도 마음이 좋았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이 안내해 주는 지역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스님은 다음 법회 때 수감자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라고 보시금을 주었습니다. 점심공양 후에는 청년들이 속해있는 대학교 UBD(Universitas Buddhi Dharma)의 한 강의실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강의실에서 동그랗게 자리를 만들고 학생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 저희에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뭔가 구색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스님을 모신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교도소에 모신 것도 점심 대접을 준비한 것도 많이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UBD 대학교에서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가신 교도소 봉사를 제외하고도 기타 다른 곳에서도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나름대로 불교 공부를 해 왔는데, 무엇을 동기로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래에 우리 모임이 어떻게 역할을 해야 할지도 알고 싶고, 지혜롭고 싶습니다. 스님께 지식적으로도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접대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고 젊은이들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모여 있다고 하기에 뭐 하고 있나 알아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웃음)
붓다는 항상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를 통해서 그들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왔습니다.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과 사람들과의 대화록과 같은 것입니다. 담마를 통해서 그들의 의문이 풀리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는다고 우리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종교라는 것은 자기 복을 비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붓다는 조금 다르게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괴로움이 자기 마음의 어리석음에서 빚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도 다시 전통 종교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교회든 절이든 여기저기 가보면 모두 허황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학교 옆에 절이 있었는데 거기 스님을 만나서 붓다의 가르침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께 배우는 불교는 굉장히 과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절에 들어와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절에 들어와서 막상 살아보니까 경전에 있는 이야기와 실제 절에서 하는 신앙은 굉장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만둘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그래서 다시 부처님의 일생을 찾아서 공부했습니다. 붓다가 한 사람으로서 역사 속에서 살아간 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적인 것과 굉장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되겠다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부처님은 계급차별도 부정하고, 성차별도 부정하고, 승가 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분쟁을 말리고 평화적으로 풀도록 가르쳤습니다. 사회를 외면한 게 아니라 사회의 갈등을 풀어줬습니다.
저는 기존의 절에서 나와서 ‘붓다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하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이 생각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 모아서 활동비를 마련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이 되고 직장을 다니면서 회비를 내서 운영을 했고, 점점 일반인들도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인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활동 범위가 넓혀졌습니다. 그렇게 40여 년이 흘러서 지금의 정토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정토는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개인의 마음만 닦자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를 평화롭게 만들자는 참여 불교적 관점에 있습니다. 정토회 멤버가 되는 것은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음은 물론이고, 스님이다, 신도다 하는 차별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멤버입니다. 믿음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종교가 달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토멤버가 되려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행복해진다는 수행의 관점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복을 비는 것은 자유이지만 정토회에서는 복을 빌지 않습니다. 평화와 환경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복지, 이 세 가지에 참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작했고 긴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여러분들이 뭔가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웃음)
현재 정토회는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습니다. 전부 회원들이 내는 회비나 보시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회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운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활동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른길이라면 우리는 다만 갈 뿐입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밝았습니다.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스님께 중간중간 질문도 하면서 정토회가 이루어진 과정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했습니다.
동아리를 대표하는 청년이 스님께 축원을 요청했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 오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젊은 청년 불자들과 함께 교도소도 방문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좋은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이 청년들의 마음이 부처님의 담마를 익히고 늘 법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런 대화를 함께한 인연공덕으로 건강하고 정신이 맑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제불 보살님들께서는 증명하여 주시고 천룡팔부신중님들께서는 옹호하여 주옵소서. 나무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스님의 축원으로 청년들과의 대화 시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스님은 숙소로 이동하여 원고 교정을 마무리한 후 자카르타 교민법회를 위해 롯데몰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영사님과 한인회 회장님 등 지역 교민 지도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약 3백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인도네시아 교민들의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교민들을 향해 인사말을 하며 즉문즉설은 어떤 성격의 대화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인생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이 없습니다. 스스로 좋을 대로 살면 돼요.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들은 다 거짓말입니다. 남의 인생은 간섭할 일이 아니에요. 천하 만물이 다 자기 좋을 대로 사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좋을 대로 못 살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각자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삶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 좋을 대로 선택해서 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괴롭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좋아서 결혼을 해놓고 힘들어 죽겠다고 하고, 스스로 좋아서 취업을 해놓고 나중에는 회사에 대해 욕을 합니다. 가게를 열었다고 자랑스러워하다가도 장사가 안 되면 ‘왜 가게를 열었나?’ 하고 후회를 합니다. 누가 그렇게 선택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잖아요. 각자 좋을 대로 선택해 놓고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모순이라는 거예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스스로 발견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하는 말처럼 자신의 문제에 관해서는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그런 모순을 발견하도록 조언을 하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스님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문제든 근본적으로는 인간관계의 문제입니다. 어른과 아이,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등 어떤 관계에서도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과 갈등이 일어나는 양상은 똑같습니다. 다만, 관계의 종류에 따라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을 통찰지(洞察智)라고 합니다. 하지만 통찰지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조언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매우 세밀하게 보는 능력인 분별지(分別智)도 필요합니다. 부처님은 통찰지와 분별지를 다 가지고 계시면서 많은 사람의 고민을 듣고 대화를 나누며 각자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모순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일곱 명이 손을 들고 자신의 고민에 대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고등학생이었는데요, 과제가 너무 많아서 힘들고 화가 난다며 어떻게 하면 화를 다스릴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과제가 너무 많아서 힘들고 화가 나요
“과제를 안 하면 되죠”
“과제를 안 하면 성적이 떨어져요”
“성적이 떨어지면 되죠. 뭐가 걱정이에요?”
“그러면 대학을 못 가요.”
“대학을 못 가지는 않아요. 합격 점수가 좀 낮은 데로 가면 됩니다. 요즘 한국에서 대학을 못 가는 일은 없습니다”
“가고 싶은 대학을 못 가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삽니까?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모두 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힘들면 안 하면 돼요. 그래서 별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화나고 힘든 이유는 과제 때문이 아닙니다. 고3이기 때문도 아니고, 입시 때문도 아니에요. 자신의 욕심 때문에 화가 나고 힘든 겁니다. 공부는 안 하면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란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힘이 들더라도 그만큼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어려운 곳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돈은 많은 분들이 아껴서 보시한 돈이에요. 정부의 돈도 아니고, 기업의 돈도 아닙니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곳에 돈을 써야 합니다. 정말로 배고픈 사람에게 밥이 가도록 해야 하고, 정말로 가난해서 학교에 못 간 아이들에게 학용품이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2개월 동안 힘들게 답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절실한지 살피고 있습니다. 답사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형편이 괜찮은 지역이 있고, ‘여기는 열악하니까 꼭 지원을 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성적이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심지어 과제가 많다고 화와 짜증까지 내고 있습니다. 저는 비행기값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공항을 두 번씩이나 경유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시간씩 공항에서 대기해야 해요. 그래도 화내고 짜증 내지 않습니다. 제가 선택한 것이니까요. 공항을 두 번씩 경유하여 몇 시간을 기다리면, 절약한 경비로 가난한 나라에 집을 두세 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원하는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걸 힘들다고 하면 안 돼요. 좋은 대학에 가려면 힘들어도 해야죠. 부처님한테 빌면 부처님이 좋은 대학에 넣어줄 것 같아요? 부처님한테 빌면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부처님은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성적이 안 되는 학생을 좋은 대학에 집어넣으려면 성적이 되는 학생을 한 명 빼야 되잖아요. 부처님이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부처님한테 돈을 내고 기도를 좀 했다고 해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빼내버리고 공부 못 하는 학생을 좋은 대학에 넣는 행동을 하는 이런 분을 과연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이 무슨 입시 브로커인가요? (웃음)
부처님을 그런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신앙을 갖고 있는 겁니다. 나쁜 짓을 해놓고 지옥은 안 가겠다고 한다면 나쁜 심보를 가진 사람입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으면 과보를 받아야 되고, 과보를 받기 싫으면 나쁜 짓을 안 해야죠. 내가 선택하고 내가 그 결과를 책임질 줄 알아야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늘 부처님한테 가서 빌어야 되잖아죠. 그것은 노예의 삶이지 어떻게 자유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지금은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을 구분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구분이 필요가 없어집니다. 한국에서 공무원이 되는 데에는 아직 그런 학력이 좀 필요할지 모르지만 나머지 일을 하는 데에는 그런 학력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20년 지나서 질문자가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에는 의사와 변호사도 별 볼 일 없는 직업이 될 거예요. 그러니 공부가 하기 싫거든 안 해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면 힘이 들어도 공부를 해야죠.
설악산을 등산하고 싶다면 다리가 아파도 올라가야 됩니다. 그런데 설악산에 꼭 올라가야 될 이유가 있나요? 없어요. 다리가 아프면 내려가면 됩니다. 그런데 설악산을 올라가겠다고 결정을 했다면 다리 아픈 걸 자꾸 문제 삼으면 안 됩니다. ‘왜 산이 이렇게 가파르지?’, ‘왜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올라야 하지?’ 하면서 화내고 짜증내면, 그 모습을 보고 남들이 뭐라고 할까요? ‘저 사람이 미쳤나’ 이렇게 말합니다. (웃음)
내가 선택한 길이면 기꺼이 하면 되지 화내고 짜증 낼 필요가 없어요. 자꾸 화가 나면 그만 두면 됩니다. 좋은 대학을 안 다녀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오늘 강연장에 온 사람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간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해봐요. 대부분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갔습니다. 그래도 다 잘 살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공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기말 고사에서 1등을 했는지, 2등을 했는지, 5등을 했는지가 그 당시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여러분의 인생에 무슨 큰 변화를 주었습니까? 그때는 성적이 죽고 사는 문제 같았지만, 지나 놓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면 공부를 해야 될까요, 안 해야 될까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화를 내면서 공부를 해야 할까요, 그냥 공부를 해야 할까요?”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화가 나는 이유는 공짜로 얻겠다는 심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짜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없어서 성질이 나는 겁니다. 심보가 별로네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웃음)
“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중학생 외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 아픈 친정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한국으로 가는 것이 꼭 효도인가요? 인도네시아에 남아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효도가 될 수 있나요?
- 아내의 기준에 맞지 않는 두 딸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할까요?
- 사소한 것에 대해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생각을 줄일 수 있나요?
- 괴로움에 빠지는 습관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요?
-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이루고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교민들을 격려해 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못하면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지나 놓고 보면 시간을 낭비한 것이 됩니다. 유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으면 지금이 힘들어 죽을 지경이에요. 지금을 위해서 나중을 희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고,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인생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됩니다. 지금 좋으려면 재미가 있어야 되고, 나중이 좋으려면 유익해야 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처럼 항상 재미있고 유익한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와서 살면서 맨날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욕하면 나만 바보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한국에 가서 살지 무엇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살아요? 여기에 와서 살면 여기에 와서 살 때의 좋은 점을 늘 생각하고 살아야 됩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늘 같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계속 사는 이유는 뭘까요? 긍정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항상 긍정적인 요소를 생각하고 살아야 됩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몇 번을 가르쳐줘도 모른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몇 번을 가르쳐줘도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사장 역할을 계속할 수가 있는 겁니다. 한 번 가르쳐줘서 알면 내 밑에서 일을 할까요, 나가서 독립을 해버릴까요? 금방 독립을 해버릴 겁니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안 되니까 여러분 밑에서 몇 년 간 일을 해주는 거예요. 그걸 보고 욕을 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그러니 세 번 모르면 세 번 가르쳐주고, 네 번 모르면 네 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모르는 걸 비난하면 안 됩니다.”
강연이 끝난 후 스님은 책에 싸인을 하나하나 해주었습니다. 청중들이 강연장을 빠져나간 후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 일부와 숙소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오신 회원 2명과 인도네시아 정토회원, 정토회원은 아니지만 몇몇 불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첫 오프라인 강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약 1시간가량 대화 시간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인도네시아 불교도 청년들이 하는 땅그랑 지역의 가난한 불자들을 돕는 일을 돌아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