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월과 이슬람수호전선 FPI
올해도 어김없이 라마단이 도래해 인도네시아 전역이 6월 18일부터 뿌아사(Puasa)라 부르는 한 달 간의 금식기간에 돌입했습니다. 이슬람력 9월을 뚯하는 라마단(Ramadhan : رَمَضان)의 시작은 그 달의 초승달이 보이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양력 2015년 6월 18일은 이슬람력 1436년 9월 1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초승달이 보이느냐 안보이느냐, 관련 별자리들이 나타났느냐에 따라 금식기간 뿌아사의 시작은 물론 뿌아사를 마친 후 바로 시작되는 축제 절기인 르바란(Lebaran), 또는 이둘피트리(인도네시아식 표기로는 Hari Raya Idul Fitri, 아랍어식으로는 Eid-Ul-Fitr) 역시 이슬람권 국가들이나 관련 이슬람단체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있어 하루 이틀씩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올해는 다행스럽게도(?) 정부부처인 종교부와 양대 이슬람 교단인 나들라뚤울라마(NU)와 무하마디야(Muhammadiyah) 3자의 합의하에 인도네시아 전국적으로 6월 18일부터 라마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슬람 절기의 이런 이면들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세계사에서 잠시 배웠던 것처럼 과연 이슬람학자들의 종교적 열심이 고대의 천문학, 수학, 자연과학 분야에서 적잖은 발전을 이루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처음 인도네시아에 왔던 1995년의 뿌아사는 2월에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해 1월 처음 주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나는 다음 달 시작된 뿌아사라는 생소한 이슬람문화를 매우 어색하고 생경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고 곧 이어 시작된 길고 긴 르바란 휴무기간 동안 당시 아직 본격적 개발이 시작되기 전인 롬복(Lombok)섬에 다녀왔었죠. 그 뿌아사가 매년 2주 정도씩 빨라지더니 2015년에는 6월 중순에 찾아온 것입니다. 양력과 음력은 물론 이슬람력까지 챙겨야 하는 것은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들의 숙명입니다.
뿌아사는 평생 최소 한 번의 메카순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 등등 신이 무슬림들에게 요구한 기본적 의무들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성스러운 금식월을 맞아 몸과 마음을 정화하며 준비에 들어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면서 물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것도 금하는 것은 물론 섹스도 절제하고 격노하거나 상심하는 등의 감정의 배출마저도 자제하는 전방위적인 ‘욕망의 절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고아들과 과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기부와 자선도 넘쳐나게 됩니다.
뿌아사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전략)…약 1400년 전 창시자인 무하마드가 아라비안반도 서부의 동굴에서 알라로부터 코란의 계시를 받은 것을 기려 헤지라 2년인 서기 623년부터 9번째 달의 시작을 알리는 초승달이 나타난 다음날부터 단식을 시작하는 이슬람교도의 전통적인 행사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불명)
물론 무슬림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무하마드(또 다른 표기로는 모하멧, 또는 마호멧)의 금식모범을 따른 것이라 하기도 하고 잘 모른다고 얼버무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습관적으로, 또는 다들 하니까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모든 이슬람교도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것처럼 그들이 모두 코란을 귀신같이 꿰고 있는 것 역시 아닙니다.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금식을 통해 궁핍한 사람들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고 그렇게 금식하여 절약된 돈과 음식을 주변사람들 특히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과 나눈다는 부분에 큰 의의를 두는 듯 합니다. 이슬람의 근원지인 아랍권이나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배적인 인도네시아 아쩨(Aceh)지역 등에서는 그런 취지와 전통들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교민들이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현실이죠.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정의로운 종교적 취지들이 그림같이 지켜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욕망을 품고 있는 한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인도네시아 대중의 이슬람은 그 본류와는 달리 많이 세속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입니다. 어떤 이들은 인도네시아가 전쟁과 정복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세 아랍권과의 교역을 통해 이슬람화 된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슬람의 온갖 의무와 규범을 강조하고 무슬림 아닌 대통령이나 주지사는 용납할 수 없다고 기염을 토하면서도 사실상 방대한 국토와 다양한 민족을 보유한 만큼 필연적으로 다양한 종교들도 포함하고 있는 ‘연합국’으로서 인도네시아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현지 무슬림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부르카(Burqa – 눈을 포함한 온몸을 어두운 색상의 불투명한 천으로 뒤덮는 복식)나 니갑(Nigab – 부르카에서 잠망경처럼 눈부분만 직사각형으로 열어놓은 복식)보다는 머리와 목, 또는 어깨부분까지 덮는 히잡(Hijab)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이고 그나마 젊은 여성들은 몸매를 드러내는 타이트한 블라우스와 스키니진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올려 묶은 긴 말총머리를 뒤를 늘어뜨린 후 그 위에 화려한 색상의 히잡을 착용하면서 원래 취지와는 달리 전체적인 섹시한 볼륨감과 가려서 작게 만든 얼굴을 드러내 스스로의 매력을 최대한 어필하려는 ‘패션’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뿌아사의 관례 역시 그렇습니다. 뿌아사 기간동안 모든 몰과 백화점들은 대대적인 세일을 시작하고 특히 자정을 넘겨서까지 성황을 이루는 미드나잇세일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성스러운 금식월이 대기업들의 상술에 흥청거리는 것이죠. 물론 고가의 제품들을 50%~70% 폭으로 대규모 세일 하는 것과는 별도로 생필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수요가 대폭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죠. 한편으론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망을 절제하는 금식월에 생필품, 특히 식료품의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면벽정진하는 승려들처럼 뿌아사기간 동안 성실하게 금식에 임하는 무슬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므로 멋대로 폄하하고 싶진 않습니다. 더욱이 나 스스로 식사를 하루 종일 걸러보며 단 하루의 금식조차 쉽지 않음을 체험해 본 바 있는데 막노동판에서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해 입술이 갈라지도록 탈수증에 시달리면서조차 해가 지기 전까지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 무슬림들의 노력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자카르타에서 보여지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앞서 언급한 금식 본연의 의의, 즉 금식을 통한 더 높은 종교적, 인문적 가치의 구현이란 측면보다는 금식 자체, 식욕을 ‘참는다’는 측면과, 황혼이 찾아와 마그립(Maghrib)의 아잔(Adzan)이 울려 퍼질 때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부까뿌아사(Buka Puasa)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 종일의 금식은 식욕을 폭발시키고, 새벽 3-4시경 금식전 마지막 식사인 사후르(Sahur)에서는 금식 전 충분히 배를 채워 놓겠다는 의지로 다시 한 번 식욕을 불사릅니다. 이렇게 최소 하루 두 번의 폭식은 일상의 세끼 식사의 절대량을 훌쩍 넘어버리기 일쑤이니 금식월 기간의 쌀 소비량은 평소의 몇 배로 늘어나고 금식 후 부까뿌아사를 위해 꼴락 같은 단 음식을 찾으니 금식기간 무슬림들의 체중은 증가일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뿌아사 기간에 금식보다 취식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처럼 사실 종교적 축제에서 그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비단 인도네시아 이슬람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 최대의 축제인 성탄절이 예수탄생보다는 별이 빛나는 선물썰매를 끌고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산타클로스가 더욱 부각되어 버린 것이나 부활절이 부활한 예수의 영광보다는 예쁘게 색칠한 삶은 계란들과 귀를 쫑긋 세운 이스터버니의 활약무대로 변질되어 버린 것에 다름아닌 것이죠.
부까뿌아사를 30분에서 1시간 정도 앞둔 식당들을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무슬림들은 식탁 가득 음식들을 시켜놓고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아무도 음식을 건드리지 않는 진풍경을 매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시내 호텔들과 각종 연회장, 따만미니의 야외행사장들은 기업과 관공서, 정치인들이 베푸는 부까뿌아사 행사로 최고의 호황을 맞습니다. 향우회, 재경기업인연합회, 동문회 등의 성격은 물론 종교행사나 정치색 깊은 행사의 일환으로 나눔과 배려, 자선을 표방하는 이 모임들은 때로는 과연 금식시간의 행사인가 싶을 정도로 호화로움을 보이기도 합니다.
술라웨시 끈다리 주지사가 자카르타 따만미니 연회장에서 베푼 향우회 부까뿌아사 행사
성스러운 금식월의 또 하나의 특징은 물불 안가리는 부패의 향연입니다. 이것도 아이러니라 할까요? 아니면 당연한 일이라 할까요? 매년 벌어지는 일이니 말입니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다반사이지만 대개의 경우 서명권자들은 자리를 비우고 많은 일들이 지연되고 진행이 힘들어지면서 돈을 좀 주면 잘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됩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집요한 단속도 뿌아사 기간 또는 그 한 달 전쯤부터 시작됩니다. 이민국과 노동부, 경찰, 상공부, 세무서 등을 총망라한 8~12명 정도의 패거리들을 외국인사업장에 들이닥치는 것이죠. 대개의 경우 명목은 ‘르바란 기간 치안강화 차원의 외국인 보호를 위해’ 를 내세우곤 하지만 실제로는 미리 알아서 두툼한 수고비 봉투를 건네 주지 않는 업체들을 먼지가 나올 때까지 전방위적으로 탈탈 털어 기어코 돈을 뜯어내겠다는 의도이기 쉽습니다. 매년 몇 차례씩 연례행사처럼 회사에서 그들 단속팀을 맞이해야 했고 때로는 그런 단속공무원을 사칭해 돈을 뜯어내려던 사기꾼들을 가려내야만 했던 교민들은 몇 년 전부터 이젠 아예 아파트에까지 찾아와 서류제출을 요구하며 돈을 갈취할 의도가 분명한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과 사업과 가족들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곤 합니다. 많은 무슬림들에게 스스로의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는 종교적 정진행위인 뿌아사가 어떤 이들에겐 스스로의 이익을 합법, 또는 비합법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인내의 한계를 실험하는 돼먹지 못한 실험실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적 경건함과 인간의 탐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는 이 시기에 대놓고 이슬람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있습니다. FPI 라는 조직입니다.
하빕 리직시합(Habib Rizieq Shihab - 본명 Muhammad Rizieq bin Hussein Shihab)에 의해 1998년에 설립된 이 조직은 일견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고 그 수뇌부에는 내로라 하는 끼아이(Kyai)들과 울라마(Ulama) 등 종교지도자 비스무리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지만 실제로는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저소득, 저학력, 빈민층, 그래서 사실은 이슬람에 대한 기초지식마저 부족한 명색만 무슬림인 양아치들 수십만명을 규합한 전국단위의 폭력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나와도 좀 관련이 있습니다. 자카르타 시내에서 자가운전 하는 나로서는 뿌아사 기간 밤마다 수십, 수백대의 오토바이로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FPI 청년대원들이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90년대 후반 많은 외국인들로 붐비던 끄망(Kemang)의 살사카페(Salsa Café)를 이 친구들이 때려 부순 사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머나먼 남방의 정취와 낭만이 아직도 남아 있던 시절, 콜롬비아밴드가 열정적인 남미음악을 연주하던 살사카페는 뿌아사가 시작되고 며칠 후 들이닥친 수백명의 FPI 행동대원들로 인해 매장이 반파되면서 직원과 손님들 일부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카페의 양주들을 대량으로 파괴하거나 탈취해 갔고 심지어 손님들의 지갑을 빼앗아 가기도 있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 인테리어보수를 하고 급기야 장소도 이전했지만 살사카페는 예전이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결국 폐업하기에 이르렀고 난 그 후 살사카페 정도의 장소를 끄망은 물론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내 단골집이었는데 말입니다.
FPI란 그들의 깃발에서도 보이듯 Front Pembela Islam, 즉 이슬람수호전선이라는 의미로 이름에서부터 일견 호전성이 엿보입니다. 그들은 자카르타 토박이 양아치들로 구성된 FBR(Forum Betawi Rempug)와 함께 이슬람과 지연을 등에 업은 자카르타의 양대폭력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또는 보수 이슬람세력의 행동대로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데 각종 시위는 물론 격렬한 패싸움도 불사합니다. FPI의 조직엔 라스카르 FPI 라는 소조직이 있습니다. 911 사태 이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포함해 이슬람이 연루된 전쟁마다 전투원을 보내려고 군사훈련을 실시했거나 비정규 루트를 통해 실제로 대원들을 파병한 적 있던 라스카르 지하드(Laskar Jihad – 인도네시아에서 2000년에 설립된 준군사 비스무리 단체)를 흉내낸 이 라스카르 FPI는 자기들만의 군복까지 맞춰 입고 다녔지만 그야말로 생양아치 조직에 다름 아닙니다.
왼쪽 아래 사진은 레이디가가 현지컨서트 반대 데모.
그들이 일으킨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8년 6월 1일 자카르타 중심인 모나스광장에서 벌어진 AKKBB(종교와 확신의 자유를 위한 민족연대 – 이하 종교자유연대) 습격사건입니다. 명색이 이슬람근본주의인 FPI가 종교의 자유를 용납할 리 없는 일이었죠. 그들은 일단의 라스카르 FPI를 포함한 양아치무리들을 사주해 이들 종교자유연대의 시위대를 공격했고 많은 사람들이 중상을 입는 유혈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승승장구하던 FPI의 기세를 설립 10년만에 처음으로 꺾어놓는 계기가 됩니다. 기존의 치안시스템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카르타의 이슬람 자경단을 자임하며 온갖 무정부주의적 파괴행위를 일삼았음에도 그들이 휘날리며 다니던 이슬람깃발 때문에 무슬림의 반발을 우려해 그동안 별다른 단속을 하지 않았던 정부가 드디어 경찰력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FPI 회장 리직은 1년 6개월 형을 받고 수감됩니다.
Habib Rizieq Shihab
그러나 리직은 물론 FPI는 전혀 회개할 줄 모릅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소시민들의 안전과 생업을 그토록 위협하고 괴롭히면서도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신을 위한 성전을 수행하는 순교자 또는 정부의 탄압을 받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했던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리직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도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생긴다면, 불량배 역시 같은 감정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이 갖지 못한 하나의 요소가 있다: 우리는 신의 은총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하다. 부상이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신의 은총을 받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하다. 지하드전사는 망설이지 않는다. 감옥에 가는 것, 살해당하는 것, 그 무엇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FPI가 인도네시아 정부를 무시하고 스스로 폭력을 통해 이슬람의 샤리아법을 구현하겠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이번에도 리직의 말을 들어 봅니다.
자까르따 거리에서 버스 기사를 갈취하는 불량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이들은 교차로에서 통행료 명목으로 버스 기사에게 돈을 요구한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고 수차례에 걸쳐 경찰에 신고되었지만 어떤 조치도 행해지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제거하기 위해 직접 손을 써야 한다. (이상 출처 - 동남아시아연구 19권 2호(2009) : 57~91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