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1·삼성증권 후원)이 차세대 왕중왕전에서 우승하며 미래의 스타를 예약했다. 한국 선수로는 14년 10개월 만에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일궈냈다.

정현은 12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총상금 127만5000달러) 결승에서 안드레이 루블레프(37위·러시아)를 3-1(3<5>-4 4-3<2> 4-2 4-2)로 제압하고 자신의 첫  투어 대회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정현의 종전 투어 대회 최고 성적은 지난 5월 BMW 오픈에서 기록한 4강이었다. 한국 선수가 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03년 1월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투어에서 이형택(41)이 정상에 오른 이후 14년 10개월 만이다. 정현은 우승 상금 39만 달러(4억3000만원)를 거머쥐었다. 
올해 처음 만들어진 이 대회는 21세 이하 선수들 가운데 세계랭킹 순으로 8명이 출전했다. 2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벌인 뒤 4강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현은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했다. 이 대회는 ATP 랭킹포인트는 부여되지 않지만 ATP투어의 공식대회로 인정받는다. ATP 인터넷 홈페이지도 ‘정현이 투어 대회 첫 결승에 나섰다’고 명시하며 투어 대회로 공인했다. 
세계 랭킹 54위인 정현은 출전 선수 8명 가운데 순위로는 다섯 번째에 불과했지만 상위 랭커들을 줄줄이 연파하며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출전 선수 가운데 세계 랭킹이 가장 높아 톱 시드를 받은 루블레프와는 조별리그와 결승전에서 두 차례 만나 모두 승리를 따내면서 실력의 우위를 입증했다. 
결승전 출발은 좋지 않았다. 정현은 상대의 강력한 서비스에 눌려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1세트를 내주며 고전했다. 2세트에서도 자신의 첫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해 위기에 처했지만 끈질긴 승부근성이 살아나면서 승부를 타이 브레이크로 끌고 간 끝에 날카로운 백핸드 다운 더 라인을 앞세워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2세트 초반까지 리드를 잡았다가 정현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루블레프는 라켓을 코트 바닥에 내팽개치는 등 여러 차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스스로 무너졌다. 3세트에서 게임 스코어 2-1로 앞선 상황에서 브레이크 당했지만 다시 상대 서비스 게임을 잡아내며 세트 스코어 2-1로 역전에 성공했다. 4세트에서는 긴 랠리 끝에 첫 게임을 잡은 뒤 게임 스코어 3-2에서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키며 마지막 포인트를 따내 우승을 확정했다.

정현은 경기 후 코트 위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결승에 패해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루블레프에게도 “함께 결승전을 치러 영광이었고 앞으로도 자주 만나자”고 위로를 건넸다.
이번 대회는 21세 이하 상위 랭커 8명이 출전한 이벤트성 대회지만 미래의 주역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정현은 세계 테니스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올시즌 ATP투어 500시리즈 바르셀로나오픈 단식 8강에서 정현과 맞붙어 힘겹게 승리했던 세계 1위 라피엘 나달(스페인)도 “정현은 백핸드가 좋고 스피드도 빠르다. 앞으로 좋은 선수가 될 자질을 지녔다”고 극찬했다. 
바야흐로 세계 테니스계에 ‘정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