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 톱랭커 배출 토스를 올려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4-29 10:28 조회2,396회 댓글0건본문
최근 테니스 4대 그랜드슬램 대회의 하나인 프랑스오픈 우승트로피의 한국 투어 ‘랑데부 롱랑가로스’가 진행돼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한국-프랑스 양국 테니스협회의 협약에 따라 5월 프랑스오픈 주니어부 본선 와일드카드 획득을 위한 선발대회를 한국에 열면서 롤랑가로스컵을 전시한 것이다.
프랑스협회 측은 “세계 5번째 국가로 한국을 찾은 롤랑가로스컵을 보면서 한국 주니어들이 꿈과 희망을 키우고 도전을 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한국 테니스에서 주니어들의 그랜드슬램 도전과 그 성과에 대한 관심은 크다. 마치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 제대로 못나가던 시절,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오른 준결승을 ‘4강 신화’로 부르던 것처럼 말이다.
1994년 전미라(윔블던), 1995년 이종민, 2005년 김선용(이상 호주오픈), 2013년 정현(윔블던), 2015년 홍성찬(호주오픈)이 그랜드슬램 주니어부에서 모두 준우승을 거뒀다.
이 같이 최고성적을 거둔 유망주들에게 처음엔 작은 자긍심으로 기대를 갖게 되지만 이들이 시니어로 넘어가면 어김없이 ‘희망고문’이 되고 말았다.
이런 ‘주니어 징크스’는 한국 테니스의 미래를 지속적으로 키우는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비관론의 다른 이름이 되곤 했다.
‘포스트 이형택’의 계보를 이을 기대주로 주목받으며 이제 시니어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한 19세 정현도, 18세 홍성찬도 더 이상 높게 뻗어나지 못하게 될까.
아니 다르게 질문을 던져보자. 남자프로테니스(ATP) 랭킹 4위까지 올랐던 일본의 니시코리 케이 같은 월드스타는 정녕코 한국에선 나올 수 없는 것인가.
그 답은 눈높이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역량을 결집하느냐에 달려 있다.
2007년 한국 테니스 역대 ATP랭킹 최고 36위까지 올랐던 레전드 이형택만을 넘어서려는 목표로는 안 된다. 지금 시니어에 뛰어든 기대주들은 톱10, 주니어에서 꿈을 키우는 유망주들은 톱3을 목표로 이원화된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할 듯싶다.
정현 같은 블루칩은 현실과 부딪혀서 최대한 빠르게 랭킹을 올리는 단기 전략이 절실하며, 유망주들에 대해서는 투자육성 시스템의 혁신을 통해 장기적인 비전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니시코리의 성공에 담긴 경쟁력부터 주목해보자.
일본테니스협회는 1995년 윔블던 8강까지 올랐던 스타 마쓰오카 슈조가 1998년 은퇴하자 테니스 열풍을 잇기 위해 그의 최고랭킹 46위를 뛰어넘는 스타를 키운다는 취지로 ‘프로젝트 45’를 가동했다. 매년 ‘슈조 챌린저’라는 테니스캠프를 열면서.
또한 당시 테니스협회장이었던 모리타 마사아키는 친형인 소니 창립자 모리타 아키오 회장과 함께 톱20 랭커 배출을 목표로 1999년 ‘모리타 테니스펀드’를 조성해 매년 14세 이하 유망주들을 미국 유명 테니스아카데미에 보내 체계적인 교육을 받도록 지원했다.
니시코리는 12세에 ‘슈조 챌린저’에서 꿈을 키웠고, 14세이던 2004년부터 모리타 펀드의 지원으로 미국 IMG 닉 볼릭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유학하며 그곳을 폭풍성장의 터전으로 닦았다.
피트 샘프라스, 안드레 애거 등 월드스타들이 거쳐 간 명가에서 명코치들로부터 집중 교육을 받으면서 2007년 프로에 데뷔한 니시코리는 이듬해 첫 ATP투어 타이틀을 거머쥐며 ATP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 US오픈 단식 준결승에서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를 꺾고 아시아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단식 결승 진출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3월에는 역대 아시아 남자선수 최고 4위까지 랭킹을 끌어올렸다.
현재는 6위인 니시코리는 178cm로 키는 작은 편이지만 코트를 폭넓게 쓰면서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이 강점이다. 서브 스피드가 시속 180~190㎞ 정도로 뛰어나지 못한 게 약점이지만 빠른 발과 스윙 스피드로 상쇄하는 것이다.
특히 튀어 오르는 볼을 감각적으로 빠르게 쳐냄으로써 상대에게 대비할 시간을 제대로 주지 않는 템포 샷은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공격적인 베이스라인 플레이와 포핸드도 강서브가 대세인 세계 톱랭커들과 당당히 싸울 수 있는 경쟁력이다.
한국 테니스 간판 정현(84위)의 약점으로 꼽히는 서브는 최근 시속 200km까지 근접했다. 정현에게는 ‘패해도 잃을 게 없다’는 도전의식을 더욱 심어줘야 한다. 사진왼쪽은 세계 6위 니시코리 케이. |
2009년 이형택 은퇴 후 쇠락의 길을 걷던 한국 테니스에 희망봉으로 떠오른 정현의 경쟁력은 어떤가.
그랜드슬램은 물론 ATP투어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조차 없고, 투어대회보다 아래 등급인 챌린저나 퓨처스에서 우승하는 것조차 드물던 때, 정현은 이 단계를 빠르게 밟아나가며 작은 성공들을 거둬왔다.
18세에 ATP랭킹에서 국내 1인자 보위에 오른 정현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이형택처럼 병역을 해결해 투어생활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프로 전향 1년 만인 지난해 4월 88위로 한국 테니스 최연소 세계 100위를 돌파한 뒤 반년 만에 개인 최고랭킹인 51위까지 올라서면서 ATP 기량발전상까지 수상했다.
정현이 50위 천장을 뚫고 상위 랭커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는 서브를 보강하면서도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어가는 게 급선무다.
스스로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약점 보완, 즉 185cm의 키에 걸맞는 서브 스피드를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이제는 시속 200km 가까이 접근했다.
정현은 지난 1월 호주오픈 1회전에서 자신의 롤 모델인 조코비치와 만나 강점인 스트로크 싸움에서는 크게 밀리지 않았지만 구석구석 찌르는 서브의 다양성 부족으로 자신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당하면서 완패했다.
이제는 서브의 구질과 각도도 다양하게 다듬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또 자신의 장기인 백핸드 스트로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강호들과 맞설 때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플레이로 승부를 걸어야 강자의 길을 갈 수 있다.
강서브 같은 필살기가 없는 정현으로서는 ‘패해도 잃을 게 없다’는 도전의식으로 과감성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니시코리는 미국 타임지가 지난해 1월 ‘케이가 나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도전을 다룬 아시아판 커버스토리에서 “문화적으로 아시아인들은 미국인만큼 자신감이 높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일본인이지만 미국에서 보낸 오랜 생활이 내 사고방식을 미국인처럼 바꿔 놓은 것 같다“며 자신감을 깨우는 과감한 의식변화를 강조했다.
톱랭커와 대결에서는 ‘배우는 자세’가 아니라 ‘이기는 도전’에 끊임없이 포커스를 맞춰야 빠르게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니시코리는 단체 종목으로 말하면 ‘해외파’다. 유럽축구 명문클럽의 유소년팀에 들어가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에이스로 성장한 스타처럼 말이다.
정현도 2009년 한 해 IMG 닉 볼릭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홍성찬도 오렌지볼 12세부에서 우승한 뒤 옥타곤에 발탁돼 2년간 미국 플로리다의 에버트 테니스아카데미에서 유학했다.
이들은 해외 유소년팀에 장기연수 다녀온 국내파일 뿐이다. 1,2년의 짧은 유학으로는 정착형 스타 니시코리와 기술과 비전을 비교하는데 한계가 있다.
확고한 쥬니어 육성시스템을 만들고 이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도전기회를 주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맛보는 것이 유럽, 미국에선 이미 익숙한 유망주 육성철학이다. 사진 왼쪽위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이형택과 홍성찬, 이덕희, 나달(세계 5위), 조코비치(세계1위).
최근 들어 정현 홍성찬 외에 이덕희 정윤성 등 기대주들이 모처럼 줄줄이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유망주 육성 시스템은 중심을 잃고 있다. 2012년 외국인 육성전문가인 덕 매커디를 영입해 정현 홍성찬 등으로 주니어 육성팀을 2년간 운영했지만 테니스협회 집행부가 바뀐 뒤로는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삼성증권은 성적이 안 나는 팀을 해체하면서 소속 선수였던 정현만을 선택해 3년간 후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협회는 삼성증권의 별도 지원금을 기반으로 홍성찬 등을 지원하는 유망주 육성펀드 조성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구체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기업의 후원이 줄어드는 가운데 엘리트-생활체육 통합시대를 맞아 국내 생활체육 인구 2위를 자랑하는 테니스에서 등록비 일부를 재원으로 주니어 육성펀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인 검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떤 지원이든 세계 조류에 발맞춘 경쟁력 있는 코치에 투자해 교육을 개선하는데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테니스의 고질인 ‘주니어 징크스’를 타파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다. 주로 학원체육을 통해 성장하는 가운데 과정보다는 성적이, 과감한 공격이나 도전보다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안정 플레이가 강조되다보니 서브가 강해질리 만무하다. ‘테니스 사춘기’란 말이 있다. 불안하고 방황하는 시기에 다양한 기술을 습득해 도전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맛보는 것이 유럽, 미국에선 이미 익숙한 유망주 육성철학이다. 그런 실패를 자양분 삼아야 성인이 돼서 상대의 실책에 편승하는 요행이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는 강한 테니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랭킹이 시나브로 떨어져 4월을 84위로 마감한 정현은 이제 5월 프로 전향 3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챌린저급에서 한 단계 높은 투어대회로 연착륙했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생존경쟁이다. 투어대회에서 도약하지 못하면 챌린저대회에서 벌어놓은 랭킹 포인트가 올 상반기처럼 계속 깎여 50~100위의 그저 그런 챌린저급 선수로 남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직 본선무대를 밟지 못한 5월 프랑스오픈부터 상위 랭커들과 맞서 강렬한 도전의식을 보여줘야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변곡점이다. 그렇게 절실히 도전하고 드라이브를 걸어 상위권으로 상승한다면 기업들이 큰 관심을 기울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한국 여자선수들 못지 않는 개인 후원을 할 수 있다. ‘정현 워너비’의 어린 선수들에게도 공격테니스와 도전정신을 깨우치게 하고 또 훈련법과 육성시스템도 바꾸게 할 수 있다. 모두 정현이 잘 해내야만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효과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