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귀족 스포츠 테니스', 관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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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7-30 11:21 조회2,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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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은 테니스코리아 박준용 기자와 허진혁 기자가 테니스와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댓글에 독자 분들의 의견 또는 공감하는 기자의 이름을 남겨 주시면 추첨을 통해 소소한 상품을 드립니다. 첫 번째 주제는 '귀족 스포츠 테니스, 관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입니다.- 편집자 주
테니스 경기를 보는 관중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에티켓이 있다. 엔드 체인지를 제외하고 경기 중에 움직일 수 없다는 점, 포인트가 나기 전까지 어떠한 소음도 내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지만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국제 프리미어 테니스리그는 경기 중 관중들의 이동과 응원을 허용하고 치어리더 공연도 여는 등 기존의 테니스 대회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테니스팬들은 물론 선수들도 기존의 관람 예절이 지켜져야만 경기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경기에 재미를 더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테니스 경기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 축구나 야구 같은 다른 종목들의 경기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분위기가 있다.
테니스는 선수가 베이스라인에서 서브를 넣기 전에 공을 튕기는 소리 하나까지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조용한 경기장에서 모든 관중들의 시선이 공 끝으로 모인다. 공이 라켓에 제대로 맞았는지, 스핀이 들어갔는지, 네트에 스쳤는지 경기 자체에 집중해야만 알 수 있다. 선수들은 그 소리에 더 민감하다. 관중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치열한 랠리 끝에 멋진 위닝샷이 꽂혔을 때 터지는 박수와 함성 소리는 테니스 경기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따라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경기를 하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관중들에 대한 배려다. 무엇보다 경기 중간에 움직이면 본인 손해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경기를 즐기는 팬들은 대부분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는다. 90초 밖에 안되는 엔드 체인지에서 화장실이나 매점을 다녀올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다. 단적인 예로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면서 대다수의 관객들이 화장실 한 번 안 간다. 영화 중간에 팝콘 사러 나오는 사람도 없다. 한 편의 영화 같은 테니스 경기가 시작한 뒤 자리를 비워 일부 장면을 놓치면 고스란히 본인 탓이다.
앞서 언급한 축구나 야구 등의 다른 종목들은 응원 문화가 발달해있다. 응원 분위기가 재미있어서 경기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 ‘우리 팀’과 ‘적(상대 팀)’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물론 테니스에서도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선수는 있겠지만 코트 위의 선수들처럼 기본적으로 두 선수에 대한 존중이 밑바탕에 있다.
누구든 멋진 플레이를 펼쳤을 때 모아뒀던 감탄과 환호를 터뜨릴 수 있는 매력이 테니스 경기 그 자체의 즐거움이다.
호주오픈에 취재 갔을 때였다. 앤디 머레이(영국)가 포인트를 잃자 사진 기자석에 앉아 있던 기자에게 ‘카메라 셔터 좀 그만 눌러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몇 년 전 코리아오픈에서는 서브를 넣으려고 한 기미코 다테 크룸(일본)이 관중석에서 나는 재채기 때문에 토스한 공을 잡고 소음이 난 관중석을 한동안 노려봤다. 이밖에 경기 도중 이동하는 관중들을 체어 엄파이어가 제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화장실에 가려면 90초의 엔드 체인지를 이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테니스 대회에는 관중이 많지 않아 화장실 다녀온 후 재입장하는데 90초면 충분하지만 관중이 많은 대회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심지어 다음 엔드 체인지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관중에게는 비싼 입장료가 아까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와 함께 테니스를 관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박수도 포인트가 끝난 후에 쳐야 한다.
테니스에서 경기 도중 이동하거나 소음을 내는 것은 관람 에티켓에 어긋나는 행위다. 골프와 양궁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매너와 에티켓이 선수들뿐만 아니라 관중들에게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테니스에서 관중의 이동과 소음을 금지하는 것은 선수의 집중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스포츠에서든지 순간마다 선수의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선수의 몫을 관중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선수의 의무를 관중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스포츠를 관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다. 하지만 테니스를 관람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쌓이고 답답함을 느낀다.
야구가 왜 우리나라 대표 스포츠로 자리 잡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등 경기력 수준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야구장에 가면 경기뿐만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양한 먹을 거리, 신나는 음악, 치어리더의 멋진 율동 등이 관중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수영장과 놀이터가 설치된 야구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즉, 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중들이 모여들고 있다.
테니스도 야구보다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것 같지만 시도는 하고 있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이벤트 대회 프리미어 테니스리그에서는 기존과 다른 규정을 적용했다. 그중 하나가 랠리 중 관중의 이동과 소음을 내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어색해했지만 곧 적응했고 개의치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수 중심의 스포츠는 의미가 없다. 관중이 있어야 그 스포츠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상금도 올라간다. 즉, 관중이 많을수록 혜택은 선수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테니스는 귀족 스포츠가 아니므로 관중들에게까지 귀족다움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관중에서 멀어지는 스포츠는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테니스도 야구처럼 선수 위주보다 팬 또는 관중 중심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