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 못받은 푸이그 대반란, 푸에르토리코에 68년만의 올림픽 첫 금메달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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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8-15 11:15 조회2,751회 댓글0건본문
카리브해의 미국령 섬인 푸에르토리코가 또 한 명의 걸출한 테니스 스타를 배출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혈통의 모니카 푸이그(23)는 14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여자 테니스 단식 결승전에서 안젤리크 케르버(28·독일)를 2-1로 제압했다. 단 한 번도 메이저 대회 우승 경력이 없는 선수가 세계랭킹 2위를 앞에 두고 원맨쇼를 펼치면서다. 제2의 ‘지지 페르난데스’ 탄생의 순간이다. 푸이그는 경기 후 “내 나라가 금메달을 정말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를 바치고 싶다”면서 “경기를 할수록 내가 더 강해지고 빨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내가 (우승)할 수 있다는 데 대한 믿음도 강해졌다”고 밝혔다.
무명에 불과했던 모니카 푸이그(23)가 조국 푸에르토리코에 68년 만의 올림픽 1호 금메달을 선사한 것이다.
푸이그는 14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 센터에서 벌어진 테니스 여자 단식 결승에서 안젤리크 케르버(독일)를 2-1(6-4, 4-6, 6-1)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겼다. 세계랭킹 34위가 2위를 상대로 빚어낸 대반란이다.
1948년 런던 대회를 통해 올림픽에 데뷔한 푸에르토리코가 사상 처음으로 획득한 금메달이다.
1984년 루이스 오티즈가 남자 복싱 은메달, 2012년 제이미 에스피날이 남자 레슬링 은메달을 딴 게 최고 성적이었다. 은 2, 동메달 6개에 첫 금을 보탠 것이다.
미국 NBC에 따르면 푸이그는 경기가 끝난 뒤 “믿을 수 없다. 이 금메달은 푸에르토리코를 위한 것”이라며 “푸에르토리코 국민들은 금메달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있고 내가 태어난 곳을 사랑한다”고 밝혔다. 그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미국 마이애미에 살고 있다.
올림픽 전 푸이그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드권 없이 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거침없이 상대들을 제압했다. 16강에서는 가르비녜 무구루자(스페인‧4위)을 꺾었고 4강에서 페트라 크비토바(슬로바키아‧14위)에 승리했다. 마지막 승부에서 올해 호주오픈 챔피언 케르버까지 꺾으면서 반전 드라나를 완성했다.
1988년 서울 대회에서 테니스가 다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뒤 시드권이 없는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건 경우는 처음이다.
푸이그는 2010년 프로로 전향해 2013년 윔블던 오픈 4회전까지 오른 것이 메이저대회 최고성적이다. 우승 경력은 2014년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스트라스부르 인터내셔널 한 차례가 전부다.
푸이그의 롤모델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지지 페르난데스다. 페르난데스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2연패에 이어 여자 테니스 복식 대회에서 17차례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여자 복식 부문 세계 1위의 기록도 갖고 있다. 다만 페르난데스는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했기에 조국인 푸에르토리코에 금메달을 선사하지 못했다. 페르난데스도 못했던 걸 푸이그가 해낸 셈이다. 푸이그는 “페르난데스는 영감을 주는 존재”라면서 “나도 모든 라틴아메리카 여성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푸이그는 어릴 적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해 푸에르토리코 국가를 불러본 적이 없다. 국가 가사를 외웠을리도 없다. 그런 그가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국가를 따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결승전을 앞두고 아버지가 이메일로 급히 가사를 보내주면서다. 그는 “시상대에서 너무 많이 울어 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면서 “가사를 외울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으나 관중이 부르는 것을 보니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멈췄다면 함께 불렀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