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노장들의 전성기… 테니스 '장수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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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1-31 11:45 조회1,761회 댓글0건본문
테니스는 개인 종목 중 가장 격렬한 스포츠로 꼽힌다. 달리고, 점프하고, 온몸을 사용해 샷을 한다. 이 때문에 테니스 선수들 사이에선 "체력 떨어지는 30대 중반은 일반인의 환갑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정설이었다. 실제 1980~90년대 남자 테니스 세계 1위에 올랐던 보리스 베커, 이반 렌들, 피트 샘프러스 등은 모두 30대 초반(32~34세)에 은퇴했다.
하지만 29일 막을 내린 올해 첫 메이저 대회 호주오픈은 이 공식을 무효로 만들었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프로 선수들의 전성기도 점점 길어지는 양상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호주오픈만 보면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황금기는 황혼에 찾아온다."
'황혼의 반란'은 남녀 단식 준결승부터 뚜렷했다. 남녀 단식 준결승에 오른 선수 8명 가운데 20대는 남자 그리고르 디미트로프(26·불가리아), 여자 코코 밴더웨이(26·미국) 두 명뿐이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테니스 환갑'을 넘긴 나이인 36세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세리나 윌리엄스(미국)가 남녀 단식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페더러는 남자 단식 결승전(29일)에서 일생의 맞수 라파엘 나달(31·스페인)을 3대2로 꺾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페더러는 아이처럼 펄쩍펄쩍 뛴 뒤 눈물을 쏟았다. 2012년 윔블던 이후 4년 6개월 만의 메이저 대회 정상 복귀였다. 수년 전부터 "페더러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있었지만, 페더러는 보란 듯이 18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페더러는 1972년 37세 나이로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켄 로즈웰(호주) 이후 최고령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챔피언이 됐다.
페더러에 앞서서는 동갑내기 세리나가 대기록을 작성했다. 여자 단식 결승전(28일)에서 언니 비너스(37)를 2대0으로 꺾은 세리나는 통산 23번째 메이저 대회 단식 정상을 접수했다. 슈테피 그라프(22회 우승)를 따돌리고 1968년 오픈 시대(프로와 아마 통합) 이후 메이저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가 된 것이다. 세계 1위 자리도 4개월 만에 되찾았다.
테니스계에서는 '30대 전성시대'라는 흐름이 뚜렷해진 시점으로 2012년 윔블던을 꼽는다. 당시 남자 단식에 출전했던 선수 4분의 1이 30세 이상이었다. 범위를 넓혀보면 1990년 기준으로 남자 세계 100위 선수의 평균 나이는 24.6세, 여자는 22.8세였는데 현재 남자는 28.6세, 여자는 25.9세가 됐다.
테니스에서 30대 전성시대가 온 이유는 뭘까.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 근거 중 하나로 라켓의 진보를 꼽는다. 국제테니스연맹에 따르면 라켓 무게는 30년 전과 비교해 25~40%나 가벼워졌다. 테니스 라켓이 나무→강철→카본, 그라파이트 등 첨단 소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벼우면서도 강한 샷을 할 수 있는 라켓이 해마다 새롭게 개발되면서 파워는 떨어져도 경기 운영 능력과 기술이 좋은 베테랑 선수들의 활로도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테니스 엘보(elbow)'로 불릴 만큼 선수들에게 치명적이었던 팔꿈치 부상을 방지하는 진동 흡수 기능도 향상되면서 프로들의 수명을 늘려주고 있다.
과학적 훈련과 재활법도 빼놓을 수 없다. 전 영국 여자 테니스 1위 샘 스미스(46)는 "내가 선수 생활을 했던 10여년 전만 해도 경기를 앞두고 바나나를 먹고, 경기가 끝나면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스트레칭하는 게 전부였다"며 "요즘 선수들 관리 방식을 보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페더러, 세리나 같은 정상급의 선수들은 영양사, 피트니스,코치, 심리치료사를 대동하며 투어를 뛴다. 남자 세계 2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30)는 식단에 대한 책을 출간할 정도의 영양학 지식을 과시하고 있다. 조코비치는 "나는 내 식단이 최선인지 확인하기 위해 최소 6개월마다 한 번씩 혈액 검사를 한다"며 "2012년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뒤 라커룸에 앉아 2년 만에 처음으로 초콜릿 한 조각을 먹은 일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