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이에서 테니스 스타된 앙리 코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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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6-13 11:41 조회1,6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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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코셰(프랑스)는 자크 브뤼뇽, 르네 라코스테, 장 보로트라와 함께 프랑스 테니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 중 한 명이다.
1901년에 태어난 코셰는 리옹 테니스 클럽 토지 관리자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볼보이로도 활동하며 '리옹의 볼보이'라 불리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 테니스를 무료로 배울 수 있었던 그는 여덟살 때부터 여동생과 함께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테니스 클럽의 사장인 조르쥬 코존은 코셰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봤고 발 벗고 나서 그를 지도했다.
코셰는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될성 부른 떡잎임을 증명했다. 1922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보로트라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는가 하면 같은 해 열린 세계 하드코트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1933년 프로에 데뷔한 코셰는 그랜드슬램에서도 유감 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개인 통산 7개의 단식 우승 타이틀과 5개의 복식 우승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오픈에서만 4차례 우승하며 클레이코트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1930년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는 당시 미국 테니스를 주도했던 빌 틸덴을 상대로 값진 우승을 거둬 더욱 주목 받았다.
코셰에게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프랑스 테니스 국가대표로 나섰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는 브뤼뇽, 라코스테, 보로트라와 함께 1927년 미국에서 열린 데이비스컵 월드그룹 결승에 출전했다. 그 당시 프랑스는 미국을 상대로 종합성적 3-2로 이기며 미국의 8연승을 저지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1925년과 1926년, 데이비스컵 월드그룹 결승에서 미국을 상대로 모두 패한 프랑스였기에 아주 값진 우승이었다. 그 당시 데이비스컵 결승전은 오늘 날의 그랜드슬램 결승과 같이 열기가 뜨거웠다.
이 우승으로 이들은 일명 '4총사'라 불리기 시작했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후 프랑스는 6년 연속 데이비스컵 정상에 오르는 등 독보적인 활약을 했다. 현재 롤랑가로스에는 코셰를 비롯한 4총사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또 코셰는 스포츠 분야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1년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1958년 코셰는 선수로서의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25년 동안의 길고 긴 선수 생활을 끝내고 파리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했으며 70대 초반에는 프랑스 주니어 팀 지도를 맡기도 했다.
프랑스 테니스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그는 1976년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1987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