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공이나 주워라?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테니스경기장에서 남녀평등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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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0-28 11:29 조회2,343회 댓글0건본문
1973년 미국에서 열린 한 테니스 대결은 마침내 시대를 바꾼다. 남녀평등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때였다. ‘세기의 성 대결’이라고 불린 테니스 여제 빌리 진 킹과 전 남자 윔블던 챔피언 바비 릭스의 시합이 열렸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이하 ‘빌리 진 킹’)은 1969년 루이 암스트롱의 달 착륙 이후 사상 최고의 시청률 및 북미 지역 테니스 경기 최다 관중(3만472명) 기록을 보유한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의 경기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일명 ‘성 대결’로 유명한 이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 성평등의 시작을 알렸다.
영화에서 빌리 진 킹은 ‘라라랜드’로 인기를 모은 엠마 스톤이 맡았다. 바비 릭스는 ‘브루스 올마이티’ ‘에반 올마이티’ 등 코믹 연기의 대가로 불리는 배우 스티븐 카렐이 맡았다. 두 배우는 실제 인물들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 헤어스타일부터 의상, 경기 당시 신었던 신발까지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 외모부터 연기력까지 갖춘 두 배우의 통통 튀는 연기 호흡은 관전 포인트다.
영화는 1973년 당시 대결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 1970년대에 사용했던 빈티지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해 몰입도를 높였다.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여성은 테니스공이나 줍는 존재"로 폄하하던 시대, 테니스 협회가 여자 선수들에게 남자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상금을 주기로 결정하자 빌리 진 킹은 여자들만의 대회를 만든다. 협회와 사회는 "남자 경기가 훨씬 흥미진진하니 상금 차별은 당연하다"고 몰아붙인다. 바비 릭스는 이 분위기에 올라타 "여자가 열등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라"며 도발하고, 미디어는 "돼지 같은 남성 우월주의자와 겨드랑이털 안 깎는 페미니스트의 대결"이라며 흥분했다. 9000만명이 생중계를 지켜본 이 경기까지, 여성 억압적 사회 분위기와 동성애자로 눈 떠가는 킹의 심리 변화를 맞물려가며 녹여낸 이야기 구조가 매력적이다.
선한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도 선한 의도와 결과가 부합하지 않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남녀 테니스 선수들의 성(性) 대결을 통해 양성평등을 일깨우려는 취지는 훌륭하나, 남녀평등이라는 대의(大義)와 동성애적 색채가 어우러지지 못한 채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쓴 듯 흐릿하게 분산되고 만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 영화일까, 성적 소수자를 위한 영화일까?
이 성 대결은 마치 오락쇼처럼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뭉클함을 선사한다. 한 여자 테니스 선수가 엄청난 중압감과 부담감을 이겨내고 마침내 여성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때문이다. 승패가 판가름나는 오락의 성격을 띤 스포츠 경기장이 사회적 이슈를 만든 장소가 된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테니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테니스를 잘 알지 못해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남녀평등과 1970년대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 성 대결을 통해 바뀌어가는 사람들의 인식을 담아냈다. 재미와 감동을 오가는 스토리라인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테니스 선수로서의 빌리 진 킹과 그 이면에 있는 삶도 다룬다. 결혼생활과 그의 성 정체성 등 말이다. 이 역시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