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누군가가 돋보이는가? 상대적이다. 누군가가 부족해 보이는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 모든 존재는 상대적이어서 모든 것은 무엇인가와 상대적으로 달라 보인다. 바로 그 다름 때문에 우리는 존재 가치를 발휘하며 바로 자기 자리에 서 있다. 오늘 자기가 선 자리는 누구와도 같지 않은 개성 있는 자리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유일한 자리다.
서예의 획도 상대적이다. 곧 버릴 획, 잘 못된 획은 애초부터 없다. 상대적으로 잘 활용되면 서로 상생을 한다. 혹 실수한 획이라 할지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곧 하나의 특징이 된다. 주축은 안 될지라도 주축이 되는 획을 받쳐주는 역할만으로 곧 멋이 된다. 멋지게 잘 구사된 획이라도 반복하면 멋을 잃는다. 좀 모자란 획도 주변 획으로 잘 보완하면 썩 쓸모 있는 획으로 변하는 것이다.
글자 구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강한 느낌이 나는 작품을 창작하려는 의도가 있어도 모든 글자를 강하게 하면 실패한 작품만 생산될 뿐이다. 어떤 느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의도한 느낌을 중심으로 하되 적절한 비율로 다른 느낌을 조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서예창작은 긍정을 배우는 일이다. 무엇이든 소중하고 쓰임이 있음을 체험하는 일이다. 모든 존재의 가치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자기 삶의 어느 순간도 모두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붓과 먹으로 화선지 위에 스스로 써내는 일이다.
선, 천천히 미학
천천히 미학, 이것을 서예처럼 강력하게 활용해야할 곳이 있을까? 만약 일관되게 천천히 쓰는 인내력을 가진 작가가 있다면 그는 좋은 작품을 창작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한 획을 시작할 때, 마무리를 지을 때, 붓에 먹물이 많을 때, 또는 먹물이 적을 때 모두 천천히 운필 할 수 있다면 서예에 관한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한 글자를 쓰기 시작해서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오로지 천천히 자신의 붓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면 그의 작품은 모름지기 한 시대를 풍미할 것이다.
천천히 미학은 세상에 너무도 많다. 밥도 천천히 먹는 것이 좋고, 말도 천천히 해야 설득력이 있다. 인사는 어떤가, 천천히 해야 공손하게 보인다. 속보가 운동효과가 좋다지만, 천천히 걸으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어 좋다.
운필을 천천히 하는 것, 이는 한 획에 하나의 스토리를 담는 것이다. 아무나 그을 수 있는 선을 긋고 있는가? 오늘 하루를 그냥 흘리지는 않는가? 의미 없이 흘리는 하루,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획은 그야말로 생명력을 잃은 하루요 획이다. 획 하나에서 서력을 가늠할 수 있다함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한 글자를 천천히 구성하라.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담을 수 있다. 천천히 씀으로서 앞의 획과 뒤에 오는 획을 살피고, 공간과 공간, 굵고 가늠, 빠르고 느림을 살펴 구성할 수 있다. 세련미나 어눌함, 거친 맛이나 소박한 느낌 모두가 천천히 살피고 장악하는데서 잘 드러낼 수 있는 묘미다. 그러므로 한 작품에서 한 편의 뮤지컬을 펼쳐야 한다. ‘천천히 쓰라’, 이것은 서예창작의 첫 번째에 두어야 할 금과옥조다.
천천히 하라. 오늘 창작자의 시간이 천천히 여유롭게 흐를 것이다. 창작자의 일상에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기운이 서릴 것이다.
선, 번짐과 갈필의 멋
번짐, 작품을 할 때 먹물의 번짐에 대해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초학자가 아니다. 좋은 작품을 할 여지를 지닌 서예가다. 초학자들을 지도하다보면 번졌다고 감추는 경우가 있다. 그에게 묻는다. ‘비를 좋아하는가?’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내리는 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날을 떠올린다. 물안개로 아득히 지워진 산을 더듬으며, 차 한 잔 놓고 앉은 숙녀의 분위기로 돌아간다. 마음 안을 휘감는 촉촉한 번짐이 얼마나 놀라운 에너지인가를 숨기지 않는다. 그로부터 먹의 번짐을 감추지 않는 숙녀가 된다. 삶에서 넉넉한 윤기를 발휘하는 숙녀가 될 것이다.
번짐은 서예의 특징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다. 먹을 갈 때 물을 쓰는 이유, 수분 흡수력이 좋은 화선지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번짐을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발묵(發墨), 즉 번짐이 좋은 화선지를 고른다. 번짐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번지기가 안 된 작품은 그만큼 서예미의 영역을 줄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번짐은 그렇지 않은 모든 선들을 돋보이게 한다. 특히 거친 맛의 갈필을 잘 살려주고 또 상호 조화한다. 예컨대 번짐을 한껏 활용한 작품이 있다면 그로 인해 작품의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작품에 50% 이상 번짐을 활용하면 윤기가 풍부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갈필, 갈필의 획에서는 안간힘이 드러난다. 강한 의지의 느낌이다. 고난을 해쳐낸 승자의 모습이다. 등이 두툼한 남성의 멋이 들어있다. 거친 마찰이 탄력으로 튕겨난다. 윤기의 번짐에 칼칼함으로 맞선다. 오랜 풍파를 겪은 듯, 묵은 세월이 쌓인 듯. 갈필은 감정의 폭이 넓다. 갈필의 정도에 따라 질감이 풍부하다. 서예창작의 지평이 넓어지도록 돕는다. 삶에 건강한 힘을 안겨줄 것이다.
멋진 번짐을 드러냈는가? 촉촉이 펼쳤는가? 작가의 정이 펼쳐진 것이다. 갈필이 드러났는가? 작가의 힘이 펼쳐진 것이다. 거기 정과 힘이 있으므로 아름다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감상자에게 정과 힘이 솟아나게 할 것이다. 살아 숨 쉬는 작품이 될 것이다.
선, 우연성의 묘미
규칙 없는 규칙, 무법의 법, 이것은 서예창작의 묘미다. 여기에 더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있다. 우연성이다. 우연성은 그야말로 창작의 묘미다. 우연히 드러난 특성이 작가를 감탄하게 하기도 하고, 작품의 감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더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이 우연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필연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서력을 쌓은 작가라 해도 선을 긋지 않은 상태에서는 얼마만큼 번질 것인지, 얼마만큼 갈필이 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기법, 반드시 드러내고 싶은 분위기를 위해 반복 시도하다보면 등장하는 것이 우연성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드러나는 우연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우연성, 그 묘미가 드러나는 때에 대한 감각이 생긴다. 그래서 어느 때 부턴가는 그 감각으로 우연마저 의도적으로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경험이다. 지도를 하다 보면 만나는 경우다. 창작에서 활용해야 하는 무법의 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학습자가 있다. 소위 말하는 ‘감’에 의존하는 것이 마뜩치 않은 것이다. 이럴 때는 이럴 수도 있고, 저 때는 저러는 것이 좋다고 하니,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뭐든 명확해야 좋은 성격 때문일 것이다. 서예의 문자성, 정해진 규칙의 문자의 올바름이 좋아서 서예에 입문을 했는데, 창작이라는 미명하에 뭉뚱그려지는 것 같아 싫은 것이다.
저자는 이런 철저함을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에게도 감을 잡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감을 터득하게 되는 날 정말 멋진 창작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과 필연의 만남, 이것이 예술의 중대 접점임을 감 잡는 날 그에게 또 다른 세상 하나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작가 인재 손인식이 2016년 초 출간 예정인 책,
<일필휘지 자기 창작>의 제4장 좋은 작품 창작방법 중 한꼭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