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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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05 16:44 조회2,613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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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사회에 지지마라
현대 사회는 사람들을 너무 윽박지른다. 지면 안 되는 경쟁에 찌들게 한다. 지는 것이 미덕이란 말은 현대인들에게 허용 불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가치를 잘 헤아려 즐길 여유가 없다. 제법 높은 가치를 산출하여 증거를 제시해도 결론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돌아온다. 급변하는 사회의 사람 밀어붙이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츠리게 하고 몸을 숨기고 싶게 한다.
저자는 사람만이 지닌 가치를 늘 확인한다. 서예 지도 과정에서다. 어린이의 순수함, 젊은이의 활력, 장년(壯年)의 다듬어진 힘, 중년의 유연함, 장년(長年)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와 통찰 등 사람들이 지닌 양질의 바탕을 자주 확인한다. 시기적절하게 삶에서 꼭 필요한 자산을 갖추고 있는 것에 감탄한다. 그 바탕이 있어 누구라도 붓을 잡으면 그 나름의 작품을 창작한다. 자기 능력만큼 이해하며, 그 나름으로 창작세계를 아우른다. 선 하나에도 감정을 실어내야 한다고 역설하면, 그만큼의 능력으로 접근하고 적절하게 표현해낸다. 자기가 지닌 그 바탕을 활용하여 제법 어울리는 창작을 해낸다.
상대성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기죽었던 사람도, 서예로 내면을 형상화해내는 데는 특유의 멋을 창작해낸다. 긴 인생에서 성공적인 자취를 남기지 못했다고 자탄하는 중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도 비교적 짧은 수련 기간에 성공적인 운필을 했다. 결과를 멋지게 창출해냈다. 사람의 생각과 공부 그리고 경험은 쌓이는 것이 맞다. 바로 그것이 서예창작에 집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풀려나오는 것을 저자는 서예창작을 지도하면서 늘 확인한다.
비우는 것인가? 비워지는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사 모든 것이 한순간 마음먹기에 달렸다. 체험해본 사람은 이 말을 크게 실감할 것이다. 일체유심조의 고사가 의미하는 것이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저절로 비워지는 상황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임을 그 고사가 가르쳐준다.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저절로 비워지기를 바랄 것이다. 저절로 비워지려면 어떤 상황이 필요할까? 하루를 산과 더불어 무던해지면 저절로 비워질까? 도도히 흐르는 물길 따라 하염없이 하루를 걸어보면 마음이 씻겨질까? 새털처럼 가볍게 허공을 떠도는 구름, 하루를 우러러 가슴 안으로 흐르게 하면 마음 저절로 비워질까? 그래, 순백의 화선지에서 삶의 길을 찾고 다듬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색마저 포용해버린 먹색의 깊이를 가늠해보는 것도 절로 비워지는 상황을 만나는 멋진 방법이리라.
저자는 인도네시아 보고르의 한 산마을에 살면서 절로 비워지는 상황과 자주 만난다. 뭐니 뭐니 해도 자연이 제공하는 환경 덕이다. 년 중 큰 변화가 없는 기온, 맑은 햇살과 바람, 청아한 공기, 둘러친 산 능선과 늘 푸른 숲, 어둠이 내리면 살아나는 아스라한 산마을의 전등 불빛, 초롱초롱한 별빛과 산마을을 아늑하게 감싸는 달빛, 때가 되면 피는 꽃들, 열리는 열매, 이 모든 것이 다 저자의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게 하는 스승들이다.
아주 작은 실제가 큰 작용을 하기도 한다. 텃밭에 심은 카사바와 고구마다. 알맞은 기온 때문이리라. 카사바와 고구마는 사철 자라고 뿌리를 맺는다. 언제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땅에 저장되어 있다. 그 카사바와 고구마를 볼 때마다 저자는 마음이 넉넉해진다. 변변찮은 소득자가 소득에 대한 걱정을 잊는 것처럼 큰 소득이 어디 있으랴. 텃밭의 몇 작물이 돈이나 권력으로 쉽게 얻지 못할 마음의 안정을 거뜬히 제공하는 것이다. 결코, 작고 하찮은 것들이 아니다.
저자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더 분명한 것이 있다. 바로 이웃해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으로 놀라운 경지가 있다. 같은 인도네시아 인들이지만 도심에서는 느껴보지 못하던 정서다. 이들은 자기들의 가난을 부자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좀처럼 화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느긋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들을 날마다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면서 어울려 사는 것이야말로 절로 비워지는 상황과 만남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지구 위 어느 화려한 도시인들, 부와 권력, 명예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보다 높은 행복도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비교를 통해 얻은 비움이고 평화일까? 상황이 바뀌면 곧 저자의 행복도 사라질까? 그럴 수 있다. 살다 보면 공들여 쌓은 깨우침이 한순간에 허물어지곤 하니 말이다. 심사하고 숙고하여 얻은 자신의 깨우침이 우연히 바라본 다른 사람의 단면 하나와 비교함으로 단숨에 허물어지지 않던가. 순간의 마음 먹기 하나로 그야말로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되지 않도록 마음을 가꾸고 다듬어야 할 일이다.
자신을 유배시켜라
비우고 싶은가? 자신을 유배시켜야 한다. 하루의 어느 순간만이라도 자신을 세상과 격리해야 한다. 혼자 있게 해야 한다. 일정 기간 세상과 격리가 얼마나 사람을 깊어지게 하는지는 동서고금의 사실들이 생생히 증명한다. 자의 건 타의 건 세상과 격리되었던 사람들은 바로 거기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세상을 찾았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제공한 훌륭한 발자취들을 남겼다.
서예, 그 간결하고 단조로움을 활용하라. 사람은 시간과 경험을 포용한 실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떤 형상, 어떤 색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백의 화선지 같은 포용 가능성을 지녔다. 검고 검어서 마침내 현묘한 경지에 이른 먹의 깊음을 가졌다. 가다듬어 창작하자.
비우고 싶은가. 밤을 지새워서라도 ‘비우기’를 써보자. ‘空’자 한자 써 보자. 한 점 멋진 작품으로 창작해보자. 지난밤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그 비움 안에 들어찰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문제점 단 한 글자 ‘無’로 새겨보자. 근심 걱정 한 글자 무자 안에 가둬버릴 수 있을 것이다. 자기에게 닥친 수많은 고뇌, 수 만자를 기도하듯 써서 하나이듯 아울러 내 보자. 희망이 깨알처럼 돋아날 것이다. 포기할 것과 나아갈 바도 서예창작 안에 다 있다. 버릴 것과 채울 것이 그 안에 다 있다. 바쁘게 달릴 것도 천천히 걸을 것도, 또 잠시 멈춰 쉴 것마저도 붓질에 맡겨 보자. 서예창작은 자기를 비우게 하고, 자기를 새롭게 채울 것이다.
이 글은 작가 인재 손인식이 2016년 초 출간 예정인 책,
<일필휘지 자기 창작> 부분입니다.
댓글목록
sozon님의 댓글
sozon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어려서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비교 경쟁속에 사람으로서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남들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죽는다는 절박함에 몰리는 현실, 또 이런 조직에 몸 담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아타까울 뿐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이런 각박함속에서도 나름대로 정신적 여유를 찾아 자기창작을 하다보면 마음의 평화를 갖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손형근님의 댓글
손형근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비움에 다시한번 되돌아 보고 갑니다...
강산애님의 댓글
강산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꼭 이루십시요~
이도님의 댓글
이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혼자 있는 시간의 힘. 감사합니다.
데사드림님의 댓글
데사드림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감사합니다^~^
풀하우스님의 댓글
풀하우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선생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