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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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학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81.92) 작성일12-05-08 22:25 조회1,897회 댓글0건본문
김 선 영
소화불량에 두통이 끊이질 않는다. 만성이다. 편하게 말하면 성질 못된 탓
이고, 쫌 고상틱하게 말하면 신경과민이니 누굴 탓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탓 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 기도문 한 구절이라는“내 탓이요 내 탓
이요 내 탓이옵니다”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성인군자
가 아니니 이 풍진 세상을 살면서 어찌 탓 꺼리가 없겠는가 하는 것이다. 지
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더러 핑계 좀 대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둘러보면 별 것이 다 탓 꺼리가 되는 세상을 내가 지금 살
아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다 돌아보니 지난 십 수 년은 세상이 유난스레 내 신경을 건드린 것이
사실이다. 딱 꼬집기는 그렇지만 여기 인도네시아 입성 후의 세월이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니 매정하게 외면하지 못한 이유로 커피를 많
이 마신 세월이었다. 애꿎은 내 위만 혹사시킨 세월이었다. 아직도 미성년이
지만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그 변화무쌍한 성장기를 거친 세월과 겹쳐있다.
거기엔 아이들의 성장속도를 못 따라간 내 갈등도 포개져있다. 그리고 자연
과학의 발달로 인한 대중매체, IT 산업의 변화, 정보의 홍수로 그냥 떠밀려
흘러버린 세월과 덧붙여있다. 그러나 궂은 과거일랑 모두 일단 내 탓으로 돌
리리라. 그때그때 잘 대비를 하지 못하는 나, 도대체 약삭빠름과는 거리가 먼
얼빵한 사람이 나이니 말이다.
내 역할은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사랑과 행복이라는 울타리
둘러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이었다. 가장으로서 비바람을 맞으
며 거친 들판을 짓쳐나가는 남편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내가 맡은 역할
이었다. 앞으로도 이 역할은 피할 수 없다. 중단 없이 계속해야 한다.
초보 엄마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십여 년 전 나는 자식 교육 하나만은 자신
이 있었다. 초보 엄마들에게 넘쳐나는 자녀교육 정보들 속에서 조금은 우왕
좌왕 하면서도 나름 자신감이 충만했다. 들끓는 내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쏟
아 부어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어엿한 아이, 그리고
세상이 보기에도 아름답도록 잘 빚어낼 자신이 있었다. 지나간 일로서 과장
이라면 과장이겠지만 집안에서는 효자효녀요,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서 교
우관계가 좋으며,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런 아이로
번듯하게 키워내고 싶었다.
표정이 항상 밝아야 하거니와 걸음걸이도 반듯해야 했다. 거짓말 따위가
아이 입에서 나와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아이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한 거짓말이었지만
나는 묵과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스스로 무릎을 치며 탄복할 묘안을 짜냈다.
108배다. 부처님도 엄청 좋아하실 것 같았다. 나는 지체 없이 아이에게 108
배를 시켰다. 마치 아이가 108배를 하고 싶은 것으로 착각을 한 것처럼, 일주
일 동안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한번씩 108배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
로 코미디인 것은 나도 아이 옆에서 108배를 했다는 것이다. 그 가증함에 부
처님도 배꼽을 쥐셨을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