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문화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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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학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81.92) 작성일12-05-09 20:52 조회3,023회 댓글0건본문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문화 탐구 2
얼마 전 한국의 모 신문에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탈북 망명자 이야기가 실
렸다. 전 북한군 대좌였던 김정률 씨가 <독재자에게 봉사하며>란 책을 오스
트리아에서 독일어판으로 발간한 데 따른 이야기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무려 16년간이나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인이 사는 곳에 당연히 한국어가 존재할 것으로 믿었던 필
자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대화를 나눌 상대자가 없는 곳에
서 사는 연유로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한국인도 없지 않다고 알고 있다.
한국인이 살고 있는 곳이라 해도 반드시 한국어가 살아 있는 것만은 아니라
는 사실이 이렇게 엄연하다. 사람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그래서 우리는 탈북 망명자가 한국기자
를 만나 그간 숨겨두었던 비밀들을 훌훌 털어버린 사실보다는, 우리말로 대
화를 나눈 것을 더 감격해한 그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인도네시아 오지의 현
지 시골학교에서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로 전학을 한 어느 학생이, 동족의
친구들과 우리말로 어울리고 난 다음 가슴이 탁 트였다고 한 말에, 절로 공감
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 때 우리민족 전체가 언어사용에 아픔을 겪은 적이 있
다. 우리의 언어가 창제되고 발전을 한 우리 땅을 무력으로 지배한 세력에 의
해 우리말 말살기도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곳 인도네시아도 외세의 지배를
받을 때마다 자국어는 늘 무시당하고 핍박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또한 이 땅
에 사는 중국인들은 한 때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말을 내놓고 사용할 수 없었
고, 동족끼리도 그들의 문화를 드러낼 수 없었다. 중국문자인 한자가 인쇄된
책조차 내부에서는 폐기 또는 감춰야 했고 외부에서는 반입이 금지되었었다.
언어는 이처럼 매우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다. 때로 냉엄한 현실에 의해 소중
한 가치를 잃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인과 함께 이곳에서 타국살이를 하는 한국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
떤 모습으로 그 가치를 이 타국 사회에 드러내고 있을까? 살펴보면 인도네시
아에서 한국어는 현재 세계 어느 곳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심어지고 가
꾸어지고 있을 알 수 있다. 그 사례들을 살피려들면 숨가쁘게 떠오르는 뉴스
가 하나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부톤섬에 자리한 바우바우시가, 지
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로 한글을 선택한 일대 사건이
다. 물론 찌아찌아족이 공용어를 한국어로 바꾼 것은 아니다. 다만 고어 표기
에 필요한 문자로서 한글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말은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찌아찌아족 고유의 문화를 점점 잃어가는 상황에서, 유수한 세계 언어 중 표
기방법이 단연 뛰어나며, 과학적인 문자로서 현대문명이 낳은 컴퓨터, 핸드
폰 등과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한글을 택했던 것뿐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한글의 우수성이 또 한 번 세계만방에 알려진 사실이다.
이보다 더 현실적인 것들도 바로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 먼저 인도네시아
제일의 국립대학 UI의 한국어과목 학사과정 공식 개설, 족자의 명문 국립가자
마다대학(UGM)과 자타르타의 명문나시오날(UNAS)대학의 한국어학과 개설
로 인한, 인도네시아 사학명문들의 활발한 한국어 교육이 그것이다. 아울러 살
펴보자면 자카르타의 기독교 대학 UKI, 국립수라바야 대학, 칼리만탄의 반자
르마신 대학, 반둥의 반둥대학, 국립중부자바대학, 대표적인 이슬람대학인 아
사시피아, 가톨릭계 아트마자야대학, 족자의 UII, 람뿡의 망쿠랏대학, 중부자
바의 디포네고로대학, 마카사르의 하사누딘대학 등에서, 한국어과 개설의 전초
전으로서 한국학연구소 개설을 하고, 대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카르타 소재 국립 제27고등학교처럼 제
2외국어 선택과목으로 한국어 시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곳도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례들도 더 있다. 우선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어 웅변대회에서 드러난 현상을 들 수 있다. 한국어 웅변대회는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또 그들의 능력이 어
느 정도에 도달했는지 잘 드러나는 현장이다. 웅변 원고의 소재 선택과, 글
구성을 비롯하여 표현력, 발음 등 여러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의 수준을 발휘
하는 것에 심사위원으로 참관했던 필자는 감동을 받았었다.
다음은 반둥지역과 족자지역, 또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주
축이 되어 결성된 한국을 사랑하는 모임인 <한사모>를 들 수 있다. 그들 또
한 몇몇 행사를 통해 우리들을 놀라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은 한
사모라는 이름으로 회원 서로가 활발하게 교류하며 한국에 대한 정보를 나누
고 또 한국어를 배운다. 한복을 맵시 있게 차려 입고 부채춤 실력을 뽐내는가
하면, 자체적으로 대규모 한국문화 행사를 열기도 한다.
또 있다. 유명 관광지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현지인 여행 가이
드들이다. 유적지 유물을 전문용어까지 구사해가며 설명을 하는가 하면, 심
지어는 김해김씨 족자파를 자칭하며 김OO라 이름을 밝히는 인도네시아인도
있다. 한국말로 인사말을 건네는 것은 물론 메뉴를 한국말로 주문 받는 음식
점 종업원은 이젠 놀랄 일도 아니다.
거리에서 눈에 들어오는 늘어나는 한국어 간판들도 한국어 문화의 현실을 생생
하게 대변한다. 자카르타는 물론 인근 위성도시들에도 한국어 간판들이 즐비해
한국인들에게는 정감으로 다가오고, 이국인들에게는 호기심과 새로움으로 다가
간다.
이 땅에서 한국어가 이처럼 활기찬 생명력으로 존재하는 이유야 독자들께
서도 주지하실 것이다. 그렇다. 한류가 가장 큰 배경이다. 종합대중예술로 평
가되는 연속극과 영화, 가요 등 한류의 진원지가 된 대중문화와 그 스타를 비
롯하여, 스포츠의 질적 향상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러나 이곳 인도네시아에는
그에 못지않은 힘도 있다. 바로 이 나라 곳곳에 산재한 한인기업들이 일군 힘
이다. 이 힘은 세계의 어느 곳보다 역동적인 것으로서 인니 한인사회의 자부
심이기도 하다. 또한 자카르타에는 우리의 2세들이 마음 놓고 모국어로 공부
하고 뛰어놀 수 있는 한국국제학교가 있다. 한국국제학교 JIKS는 존재만으
로도 한인사회 위상을 크게 재고하게 하는 바로 우리의 한 징표가 아닐 수 없
다. 아울러 한국어문화를 넓히고자 하는 기관과 단체들의 갖은 노력들이 있
다. 이 모두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숫자에 비해 다이나믹 한국
과 능력있는 한국인을 드러내는 절대 바탕이 되고 있다 하겠다.
글로벌 시대다. 그런데 한편에서 모국어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몇 개 국어 구사 능력이 필요한 시대라면 모국어는 너무도 당연한 생존의 기
본인 시대가 되고 있다. 타국에 살면서 외국인들과 비즈니스를 한다고 하더
라도, 모국어에 능숙해야 더욱 인정을 받는다. 하물며 일상의 정겹고 편안함
이야 어디에 비기겠는가. 추억을 이야기할 때도, 희망을 논할 때도 모국어를
통한 문화와 정서여야 만이 더욱 생명력이 커진다. 타국에서 태어나거나 혹
은 국적이 바뀌었다고 해도 물려받은 한국인의 피와 정서는 바뀌는 것이 아
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인터네셔날 스쿨 학생들 또한 대부분
진로를 한국의 대학으로 택한다. 다문화 가정에서도 할 수만 있다면 초, 중,
고, 대학과정 중에서 어느 한 과정쯤이라도 한국내의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기를 꿈꾼다. 선진국이나 타국은 이제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의 정체성을 내실 있게 구축하고 난 다음이라면 타국은 다만 꿈을 펼칠 수 있
는 무대가 될 뿐이다. 모든 동질 문화의 창출과 형성의 기반에는 언어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우리의 모국어처럼 넓은 표기의 폭, 표현의 다양성, 과학적
인 언어는 그에 걸맞은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어서 이국인에게 사랑받는 한류
의 생성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인이 살고 있어서 사용되는 한국어를 넘어
서서, 한국문화의 가치가 존중되는 나라 인도네시아, 한국어가 활기찬 땅 인
도네시아에서 한국인이 어찌 활력 넘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내용은 2010년 4월 24일 인도네시아 한인교민방송 K-TV에 <손인식의 영상문화칼럼>
으로 방송되었으며, 한인뉴스 2010년 6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