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정 장 임 고희기념 부부서화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86.45) 작성일14-10-19 08:04 조회3,982회 댓글0건본문
자서
고희기념 부부 전을 열며
시작하며
내 나이 어느덧 70에 이르렀다. 철없이 뛰놀던 유년 시절, 철모르고 으스대던 학생시절, 자신감 넘치던 청년시절, 우여곡절 많은 장년을 넘어 바야흐로 노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생이 덧없다는 말도,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도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돌아보니 인도네시아 생활도 20여년을 넘기고 있다. 1993년도에 시작한 동성화학 주재원 생활이 그 시작이었다. 대부분 그렇듯 타국의 문화적 충격에 힘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무난히 적응을 해온 셈이다. 청장년 시절을 바친 직장을 접고 작은 사업체를 꾸린 것이 1997년이다. 사노라면 겪는 여러 일들 속에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그 수를 더해갔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장성했다.
장남은 인연을 만나 혼인을 했고, 귀여운 손자도 안아보게 해주었다.
내 인생의 반전, 서예입문
나는 지금 내 과거와 현재를 조용히 반추해보고 있다. 내 스스로를 이렇게 은근하고 밀도 있게 돌아볼 일이 생겼다는 것이 참 새롭다. 이 새로움은 온전히 서예에 입문한 때문이다. 더 헤아려 보면 친구 운초 김영주 사장 때문이다. 친구 운초 김 사장과 한 잔 술을 나누던 수년 전 어느 날이었다. “친구, 서예공부 함께 하세나. 나이 더 먹어 할 수 있는 것 중에 제일인 것 같아.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니 너무 좋은 기회야.”했다. 그리고 그는 문방사보까지 손수 마련해주며 서실로 이끌어 주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망설여지기도 했다. 급한 성격에 스스로 악필임을 아는지라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인 것은 아내 세정(아내의 아호)이 먼저 서화공부에 심취해 있었음이다. 내가 조심스럽게 뜻을 밝히자 세정도 대 환영이었다. 그로부터 4년여, 나름 노력을 했지만 역시 쉽지가 않았다. 마음은 앞서가는데 손이 따라주지 못했다. 조바심 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어느 날 원하는 획과 구성이 나올 때면 그리 기쁠 수가 없었고,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펴 운필을 할 때면 세사를 잊고 집중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새로운 정신적 경험이었다. 특히 전시나 공모전 출품을 앞두고 실패작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어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때 마시는 한 잔의 술맛 또한 정말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맛이다.
새로운 시작, 고희기념 부부전
이번 고희전 준비는 내게 또 다른 소중한 체험이었다. 서예를 지도해주시는 인재선생으로부터 고희기념전을 제안 받았을 때, 처음에는 정말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마 운초와 함께 하는 두 부부전이 아니었다면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것은 역시 잘한 결정이었다. 작품을 목표로 운필을 하고 전시를 목적으로 작품을 하는 것은 그냥 연습을 할 때와 많이 달랐다. 때 마침 공장을 이전해야 하는 일과 겹쳐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거기에 몰두 할 수 있으므로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쓸까 하고 소재를 찾는 것도 좋은 공부였고,
작품을 하기 위해 문장의 의미를 자세히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나름 전시 작품도 마쳤고, 책을 만들기 위한 다른 자료들도 대부분 정리를 마쳤다. 작품에 있어서는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학창시절 미술시간 작품을 벽에 붙이는 심정으로 준비한 전시지만, 스스로도 만족을 못하는데 전시장에 걸어 많은 관람객들에게 어찌 내보일까 싶다. 이 생각은 아내 세정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세정은 예전 부산에서 살 때도 서예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나보다 서력이 오래되었는데도,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은가 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다. 이제 시작인 셈이지만 고희를 맞은 나이에 뭔가 내놓을 것이 있다는 점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어차피 배우는 과정이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누구와 비교하고, 좋은 작품 창작을 욕심낼 것인가. 지금 있는 능력 그대로만 겸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묵묵한 실천, 그리고 그 결과
서예는 내게 수용, 즉 용납에 대해 몇 번의 교훈을 주었다. 서예 학습을 시작한 것에서부터, 일 년여 만에 정기 회원 전에 참여했을 때도 그랬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들이었는데 수용하고 묵묵히 실행하다보니 결국은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몇 번의 공모전 입상도 그렇다. 객관적인 심사를 받고 통과를 하여 예술의전당에 작품을 건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주변에서 놀라고 아들 며느리가 즐거워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하나 서예를 학습하면서부터 아내 세정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내와 함께 먹을 갈아 글씨를 쓰며, 서로 격려와 칭찬을 해주는 등 한가한 정을 나누는 시간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 둘이서 마주보며 나누었던 웃음은 분명 예전의 어느 때보다 특별한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희를 핑계한 것이지만 부부전,
운초부부와 합동전을 열게 되었다. 아내의 말을 빌리면 이건 내게 있어 그야말로 개벽이다. 새로운 세계를 연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모두가 감사
나는 천성이 예술적 감각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다. 아직 사업 현장의 현역으로서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래서 일취월장보다는 달팽이가 나들이를 하듯 천천히 나아가려 한다. 가다보면 또 다른 보람과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돌아보면 이번 고희기념 부부전 또한 하릴없이 보내질 뻔한 시간들, 잃어버릴 뻔한 시간들이 모아진 것이 아닌가. 이렇게 모아낼 수 있었음에 무한 고맙다. 평소 필묵예술의 깊이를 깨우쳐주시고,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이끌어주신 인재 손인식선생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처음 서예 시작부터 이번 합동전, 앞으로도 함께 할 친구 운초에게도 감사한다. 아울러 20여 년 동안 백두회를 통해 한결같이 우정을 나누어온 선배 이진호회장, 최정남회장, 김우재회장, 함께 고희를 맞이한 박헌식회장, 그간 많은 순간들을 함께 해주신 자필묵연 회원들과
음으로 양으로 힘이 되어준 가족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4년 11월
묵정 장 임 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