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의 영국여행기 2 : 여왕 할머니!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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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사드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8-09 11:52 조회3,6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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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궁 들어가는 길
"여왕 할머니!"
그는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영국 여왕을 ‘여왕 할머니’로 지칭했다.
그는 왕실이나 궁전 등 여러 가지 관련 안내를 할 때마다 대부분 그렇게 호칭했다.
그는 바로 가이드 정갑식박사다. 길동무의 영국여행은 그 시작이 윈저(Windsor)궁이었다.
그러므로 그 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왕실 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일행이 여왕 할머니란 단어를 듣게 된 것은 런던 히드로(Hiathrow) 공항에 첫발을 디딘 후,
대기한 여행사 버스에 올라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아니 가서였다.
처음엔 정박사가 영국시민권자라 여왕을 그렇게 부르는가 싶었다.
어쨌든 늘 들어도 친근한 느낌을 주는 흥미로운 호칭이었다.
그래서 일행이 윈저궁으로 가는 길은 마치 방학을 맞아 외가에 가는 학생의 기분이 들기도 했다.
좌우지간에 이국의 공항에 내리자마자 대뜸 국가 최고 어른의 안식처부터 찾아갔으니,
길동무의 영국여행은 무척 예의 바르게 시작한 셈이다.
윈저궁 들어가는 입구에 걸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
왕궁, 국왕의 거처, 물론 우리에게도 500여년을 이은 자랑스러운 왕조가 있었다.
멋지고 근엄한 왕궁들이 지금도 고고하게 위엄을 지닌 모습으로 어엿이 남아있다.
우리 역사에는 학문이 뛰어나고 무예까지 겸비한 왕들이 있다. 역사가 기리는 성군들과 그들과 함께 한 현신들도 많았다.
현대의 세계 석학들이 놀라는 사상이 이미 오래 전에 동방의 우리 작은 땅에도 생생하게 존재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보다는 사람을 하늘로 여겨(人乃天) 인간을 크게 이롭게 하는 것(弘益人間)을 우선으로 했다.
문화를 변화시켜 종족을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었다. 이 흔적은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잭트로 인해 발굴되는
중국동북지방의 홍산문화에서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를 출렁거리게 하는 한류의 원조는
우리 역사와 선조들인 것이다. 여행기가 뜬금없이 옆길로 샜다. 안 될 일이다.
윈저궁 안 행사장
윈저 궁에서 여왕의 새 깃발을 점검하는 근위병들. (reuters_britain_guards_03May12)
윈저궁에서 건너다 보이는 이튼 스쿨
하여 왕제가 엄연하게 살아 전통을 잇는 왕궁을 간다는 것은 마음이 가다듬어 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여왕 할머니 부부가 비록 주말에만 안식처로서 거처를 한다지만, 역사가 생생히 살아 있고 또 이어가는 곳이 아닌가.
윈저궁에 여왕 할머니는 안 계셨다. 깃발로 그것을 일반에게 알리고 있었다.
주중인지라 또 다른 왕궁 버킹엄궁에서 집무중이라 했다. 1926년 생 88세의 여왕 할머니는 오늘도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지는 않으면서도 국가가 어려운 일에 닥칠 때마다 군주로서 위력을 발휘하는 여왕 할머니,
국가간의 어려운 문제를 순방으로 해결하고, 연방국 국민들의 어려움까지도 대변하는 참으로 대단한 여왕 할머니.
윈저궁의 뒷뜰
일행을 맞아준 것은 정문 앞에 걸린 여왕 할머니의 사진이었다.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
영국을 비롯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16개국과 기타 국외 영토와 보호령의
왕이라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20세의 처녀시절에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하여 전쟁에 참가하고,
왕위 계승자였음에도 다른 병사들과 똑 같이 탄약 관리나 운전 업무 등을 수행하였으며,
트럭의 바퀴를 갈고 보닛을 열고 트럭을 수리하였다는 사실은 더 믿기지를 않는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자기 아이들을 궁정에서 가르치기보다는 학교에 보내 공부시키는 게 낫다고 결심하게 되었다”는
현명한 엄마의 결정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13세 때 미래의 남편 해군 장교 필립공에게
첫눈에 반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는 미소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여왕 할머니가 안 계셔도 윈저 궁은 따뜻하면서도 엄격했다. 바라보면 놀라운 것들이었고,
들으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했다.
윈저궁 들어가는 길 옆 골목 상점들. 이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은 상점 광고맨들
헨리 8세가 만들고 묻혔으며 왕실의 예배, 세례식, 왕세자 찰스가 재혼을 하기도 했던 곳
즉, 성스러운 다용도실로서의 채플(chapel)은 그 시작이었다. 축소한 찰스의 할머니가 살았던 집의 정교한 모형도,
왕실의 그림과 사진, 빅토르 여왕과 알버트 공이 주고받았던 편지들,
왕의 대관식이나 왕실의 연회 때 사용했던 화려함과 격조를 뽐내는 그릇들, 빅토르 여왕의 동상,
드라팔가 해전의 승리자 넬슨의 몸에서 나왔다는 작은 총알, 헨리 8세, 워털루의 영웅 웰링턴 장군,
찰스 1세, 제임스 2세 요크의 공작 등의 사진과 초상화들, 왕실의 식당과 볼륨, 빅토리 여왕의 상아 의자나
에드워드 3세를 비롯한 역대 왕이 앉았던 의자들, 왕실의 잔치가 열리는 연회실, 왕의 친위 그룹 25명
가터들의 줄을 이은 상징물들. 그랬다. 많고 많았다.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몇 장의 사진으로 실을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보고 듣는 것으로 배를 불렸다. 속된 말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지만
그렇게 보고 듣는 것이 관광이요 공부임에랴.
윈저궁 둘레길 의자에 걸터 앉아 일광욕과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과 오가는 행인들
왕궁 이야기가 나왔으니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에 간 이야기도 해야 한다.
일행은 여행이 막바지에 이른 8월 3일 일요일에 버킹엄 궁에 갔었다. 그리고 보았다.
그러나 솔직히 밝히자면 왕궁보다 진짜 본 것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영국의 명물이자 중요한 관광 이벤트인
근위병 교대식이었다. 몰려든 인파가 인산인해였다. 일행 중 누구는 근위병의 흉내를 내며 한참을 따라 걸었다.
근위병의 행렬을 배경삼아 사진 찍기에도 바빴다. 나이 따위는 잊는 희희 하하 즐거운 놀이 시간이었다.
모름지기 관광이란 이런 것이려니. 그 사이에도 정박사께서는 버킹엄 궁과 그 주인들의 이야기,
부속 건물과 주변 명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여념을 잊는다.
버킹엄궁 근위병 교대식. 이 이벤트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근위병의 위풍과 기세 좋은 근위병의 말
힘차게 행진하는 근위병들
스위트 룸 19개, 손님용 침실 52개, 스태프용 침실 188개가 버킹엄 궁전의 방 숫자란다.
사무실 92개, 근무하는 사람의 수 약 450명, 연간 초대객 약 4만 명, 2만m²의 호수를 포함해
약 17만m²에 이르는 대 정원과, 무도회장, 음악당, 미술관, 접견실과 도서관 등을 갖추고 있단다.
국회의사당(Houses of Parliament)으로 사용하는 건물도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이란다.
정부 청사들도 그렇고 어찌어찌한 건물들도 돌아보면 다 궁전 같다. 놀랍다.
궁전 이야기가 어찌 이 뿐이랴만, 아! 시간은 흐르고 배가 고프다.
여행의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한다. 또 다른 무엇이 거기에 있어 여행자의 발걸음을 더디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