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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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nniba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11-27 21:30 조회3,459회 댓글5건본문
칠흙의 밤 천둥번개를 어렵사리 따돌리며 SSB트랜지스터를 한껏 증폭시켜 연결한 전화는 받는 사람이 없었다, 몇번을 시도 하였지만 마찬가지 여서 다윈 래디오 무선 중계국의 여직원이 안타까운듯 추라이 어게인을 되물어 왔다.
다시금 연결을 시도 하였다.
전화벨이 공허하게 울려가는 시간에 비례하여 조리장의 얼굴이 스콜이 들이치는 밤바다처럼 흙빛으로 변해 가더니 굳게 닫혀있던 그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집에 가야 되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내가 알아도 되겠습니까?
“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정확히 설명을 해봐요, 내가 알아야 그에 따른 어떤 조치를 취할거 아닙니까?
“아내가 이상 하답니다.”
이상 하다니 무슨 말이죠?
큰키에 오똑한 코, 긴 말총머리를 뒤로 모아 묶은 조리장은 진한 충청도 사투리만 아니라면 강남 한복판에 갖다놔도 통할만한 외모를 소유하고 이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작심하고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호텔 부 주방장을 하다가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꽃피워 백년가약을 맺고자 허락 받으려 부모님을 찿았지만 불호령과 함께 퇴짜를 맞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만난 여인은 어릴적 앓은 소아마비의 휴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 이었다.
고집을 피워 동거를 시작한 그는 얼마지 않아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되었지만 정상아가 아닌 장애아였고 이때부터 시작된 잦은 부부갈등은 두사람의 정신과 신체를 파괴해 버렸다, 그 피난처로 조리장의 선택폭은 그리 넓지 못하여 늘 술독에 파뭍혀 허부적거리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던 조리장은 현실 도피처로 결국 외항선에 승선하게 되었다.
남편이 외국으로 떠나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부인은 한푼이라도 벌겠다며 만화방을 시작 하였고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자 지방정부에서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에 힘을 보태 세단을 한대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장애가 있던 그녀에게 차량은 어찌보면 단순한 탈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그걸보고 달려드는 똥파리들이 문제였다.
만화방에 손님으로 자주 들리던 자상한 사람과 이상한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는 방치되기 마련 이었고 친인척의 귀에 들어가 결국 편지를 받게 이른 것이었다.
말총머리의 설명과 함께 어느정도 상황을 인식한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해주고 싶어 머리를 굴려봤으나 결혼생활이 전무했던 나의 머리에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는데 결심한듯 그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하선 하겠습니다, 가서 둘다 쳐죽이고 나도 세상 뜰랍니다, 미련 없습니다”
술에 취하고 정황상 이성을 잃기에 충분한 사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냥 흘려버리기엔 도가 지나친 듯한 느낌이 들어 사관의 본분을 살려 정신을 차리고 한마디 내 뱉었다.
본시 배는 타기보다 내리는게 더 어렵습니다, 아직 승선 경험이 부족하여 잘 모르시는것 같아 알려 드리는 겁니다. 지금 하선 하시면 부담 해야만 될 귀국경비와 전도금 액수가 만만칠 않아요.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이미 업질러 진 물 입니다, 지금 서둘러 귀국해본들 상황끝입니다.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앞날도 생각 하셔야죠, 자식도 정상이 아니라면서요...
입술을 마치 잘 익은 딸기 씹듯 깨물며 듣고 있던 그는 갑자기 바닥에 바람빠진 허수아비처럼 주저 앉으며 오열을 시작 하는데 그 옛날 깊은밤 부산 영도대교에서 보았던 한 사내의 통곡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꺼이꺼이 우는 한 가장의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는데 손가락 끝을 통하여 고스란히 그의 고통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콧물 눈물이 뒤범벅이된채 울며 그동안 가슴속 깊이 담아뒀을 한과 세월을 토해내는 한 남자의 등이 어찌나 처량한지 나역시 시야가 뿌옇게 변해갔다.
한번 허물어지기 시작한 그의 감정을 정리하는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였고 깊은 휴식을 필요로 하였으며 그 무엇보다 많은 양의 눈물을 아라푸라 해역에 흘려 보내야 했다.
누군가의 말대로 눈물은 영혼의 정화제 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여자나 남자나 때때로 눈물을 흘려 때묻고 오염된 영혼을 씻어줄 필요가 있는데 여자는 필요할 때마다 넘 눈치 볼것 없이 기꺼이 손수건을 흠뻑 적셔가며 상처받은 영혼을 다스려 줄 수 있지만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강한 세뇌교육을 받고 자라서인지 커다란 슬픔에 빠져도 맘놓고 울어볼 수 조차 없다, 울면 약한남자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건 아니다, 술 항아리에 푹 빠져서 곤드레 만드레 취하면 남자도 그 잘난 체면을 온데간데 없이 어디론가 집어 던지고 징징 짜곤 하는것을 여기저기서 봐 왔었다, 그저 술이 웬수다.
그날 이후 두어달을 별탈없이 잘 지내던 말총머리는 운반선을 만나 전재를 하고난 다음날 기어이 사고을 치고 말았다.
만취상태에서 주방보조 조리원에게 식칼을 들이대며 협박을 하니 보다못한 여타 인니선원들이 우루르 달려들어 제압하는 과정에서 복날 개맞듯 흠씬 두들겨 맞아 뻗어 버리고 만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 내려가 보았으나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사람의 목에 칼을 들이댄건 명백한 잘못 이었으므로 맞아도 할말이 없는 상황인 데다가 정작 문제는 인니선원들의 태도였다. 한두번도 아니고 툭하면 만취돼서 만행을 일삼아 대는 말총머리와 더이상 한배를 탈 수 없다는 것 이었다. 한국사회엔 관대한 술문화 라는게 존재 하지만 인니엔 그런문화가 없어서인지 인니선원들의 태도는 완고했고 결국 말총머리는 가방을 꾸려 터벅터벅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를 귀국 시키는게 영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던게 인니선원들의 집단행동 이었다. 수십명에 달하는 그들이 집단하선하게 되면 조업에 차질이 발생 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조업중인 선박에 절대 발생 해서는 아니되는 중차대한 사안 이었으므로 캡틴은 두눈질끈 감고 인니인 들의 손을 들어 주고 말았다.
얻어맞아 띵띵부어 터진 눈으로 운반선에 오르던 그의 뒷모습에서 두어달전 느꼈었던 연민의 감정이 오롯이 되살아 나 가슴 한쪽을 쓰리게 하였지만 나로선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난 계약만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젊은 청춘과 두둑한 주머니를 어찌 할 줄 몰라 고작 한다는 짖이 부산시내 여기저기를 헤짚고 다니며 술독에 들어가 허부적 거리는게 전부였다, 그러다 얼마후 기력이 쇠잔해져 휴식을 필요로 하여 시골에 내려가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말총머리 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귀국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제 또 출국 하세요?”
인자 왔으니 대한민국 술좀 없애고 가야죠, 그나저나 몸은 어때요?
“예, 염려 덕분에 괞찮아요, 언제 함 놀러 오이소”
놀러 오란 소릴 하는걸로 보아 감옥은 아닌가 보군요?
“한강에 배 지나 간다고 어디 표 납디까?”
말총머리는 귀국해 곧장 집으로 꽁지머리 휘날리며 달려갔다.
귀국선에서 내내 별의별 상상을 다하다 막상 한국에 도착하니 머리가 멍해진 그는 일단 자갈치에서 사시미칼 한자루를 구입하여 잘 갈아 날을 세운다음 신문지로 둘둘말아 허리춤에 숨겨차고 집 골모퉁이 한켠에 자리잡은 포장마차에서 소주병을 입에 물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매운 닭발을 씹어 돌리면서 마치 열흘 굶은 표범이 사냥감을 눈앞에 둔 것처럼 두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제법 늦은 시각, 갑자기 들이닥쳐 있는 힘을 다하여 방문을 열어 제쳐봤으나 기대했던 장면은 목격 할 수 없었고 아이의 말똥 거리는 두눈과 비명을 뒤로한채 말총머리는 왕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온 살림을 뒤집고 박살을 내 버렸다, 물론 밥솥을 깨버리는 주특기를 망각할 그가 아니었다.
그래도 분이 안풀려 방바닥에 칼을 꽂아놓고 술병을 물고 있은지 얼마지 안아 다리를 저는 그의 아내가 귀가했다.
별 놀란 기색없이 천천히 방에 들어온 아내는 장롱서랍에서 통장을 꺼내 말총머리 앞에 들이대며 설명을 곁들였다.
“그거 좀 이따 타면 33평짜리 아파트 들어 갈 수 있어요, 물론 정부에서 나오는 약간의 장애인 지원금에 기대긴 해야지만요, 당신도 들어서 알겠지만 흔들렸던게 사실 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의 고뇌와 인간적 배려 그리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한 세월마저 배반 할 수 없었어요, 당신이 왜 술을 많이 먹는지, 왜 만취 하는지, 왜 괴로워 하는지, 왜 살림을 쳐 부수는지 잘 알고 있어요. 당신도 첨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사람 이었으니까요, 그날 그 버스만 타지 안았어도 당신은 훨씬 좋은여자 만나 행복한 삶을 영위 할 수 있었을 거라는거 잘 알아요, 그래서 지금껏 인내하며 살았던 거고요, 당신이 힘들게 번돈 단 한푼도 헛되이 안 쓰고 지금껏 다 모아 왔어요, 다행히 장사도 잘 되고요, 한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당신이 저에게 한것에 몇배를 더하며 살께요.”
난 일주일 후 말총머리가 흥얼 거리며 따라주는 소주와 그의 아내가 구워주는 삼겹살을 곁들여 마시며 마음 한 구석에 존재하던 그 옛날의 찝찝한 감정을 말끔히 지워 버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말총머리의 이성이 감성을 꾹 눌러 냄비바닥에 주저 앉힌다음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리를 내세운 계산기를 두드려 결정을 내려준 덕분이었다.
해외 근무를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결론이 나기 마련인데 말총머리가 사람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의 부인 말솜씨가 좋아서 인지는 몰라도 다시 시작 하는 그들의 인생에 아낌없는 축배를 밤새 부지런히 들어 올려 주었다, 물론 그 다음날 뒤집어 지는 속과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고생깨나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2개월 후 난 말총머리와 함께 김포공항 국제선 대기실에 앉아 회파람을 불며 인도네시아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라푸라의 여명이 신기루처럼 눈앞에 어른 거렸다.
여명시간은 선박 당직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적도 아래 남위6도선의 바다 아라푸라의 일출도 장관이긴 하지만 물고기들의 특성으로 인하여 흩어져 있던 고기들이 군집하여 빙고방을 뜨기에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때의 기억 때문 이겠지만 은퇴한지 십수년이 흐른 지금 까지도 새벽 무렵이 되면 들뜬 마음에 저절로 눈이 떠지곤 하는데 물론 어제와 같은 태양이 떠오를뿐 별다른 환희가 눈앞에 짠하고 나타 나거나 한적은 없다, 그저 삭제 하긴엔 아까운 추억의 편린이 떡시루 바닥에 꿉꿉하게 늘러붙어 있는 찰떡처럼 무의식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것 이리라..
난 지금도 가끔씩 해뜰무렵 갑판에 잡혀 올라와 펄떡 거리며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던 황금빛 참조기들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그 순간 마시던 모닝커피는 참으로 향기롭고 감미로왔다.
댓글목록
hannibal님의 댓글
hanniba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당시엔 1년 고생하면 부산 아파트 좋은거 한채씩 장만 가능 했었는데...
물론 해운대 아파트 같은건 없던 시절 입니다.
hannibal님의 댓글
hanniba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요즘은 힘들죠..
뿌하하님의 댓글
뿌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요즘도 배타면 집살돈 모으나요???
louis님의 댓글
loui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연재 빨리빨리 올려줘요잉
바뉴님의 댓글
바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같이 수산업에 종사했는데, 연안어업과 원양어업은 꽤나 차이가 나네요...
하기야 저는 육지의 냉동공장에서 여타 제조업과 다를바 없는 일을 했어니까요.
1년 승선에 2개월 휴가...
휴가가 너무 길어서, 고생하며 번돈 다써버리겠는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