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커피, 인스턴트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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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2-02 18:23 조회713회 댓글0건본문
커피, 인스턴트의 나라
김주명
학창시절, 야외로 소풍가면 종종 보물찾기를 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보물을 찾은 기쁨이 잘 나지 않는걸 보면 보물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어 보인다. 그랬다. 보물은 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고, 그 순간의 기쁨은 정말 보물을 찾아낸 것과 비길 바가 없을 것이다. 맛의 세계도 이와 같아 늘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석 같은 맛을 발견하게 된다. 커피 맛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인도네시아는 커피 생산 대국답게 인스턴트 커피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물론 3억에 가까운 인구와 섬으로 구성된 지리적 특징은 다양한 맛의 기호를 낳았으리라. 한국에서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콩 추출물을 건조한 파우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파우더 형태는 물론이거니와 커피콩을 곱게 갈아서 바닥에 침전시키는 방식의 인스턴트 커피도 많다.
그리고 맛도 무척이나 달다. 커피라기보다는 커피를 섞은 음료라 해도 되겠다 싶은데, 그래도 단맛이 부족한지 설탕을 한 두 스푼 추가해서 마시는 걸 쉽게 본다. 이렇게 단맛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인스턴트커피 맛이 어떻게 느껴질까?
10여 년 전, 필자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고민이 생겼다. 매장을 가득 채운 온갖 종류의 커피를 앞에 두고, 무엇을 골라야 할지? 무슨 맛을 찾아 달라고 해야 하나? 당장은 가져온 짐 꾸러미에 한국서 가져온 커피가 있으니, 우선 이것저것 조금씩 마보기로 했다.
커피를 고르다 보면, 가끔 점원이 도와주겠다며 말을 건네는데, ‘네스 카페’라는 말은 또렷이 들렸다. 아니라며, ‘노, 생큐’라 하고서 살펴봐도 네스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네스카페를 이야기 할까? 그랬다. 인스턴트 커피가 나온 지도 벌써 100여년이 넘었고, 최초로 상품화에 성공한 기업의 이름이 이곳에선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가 되었으리라.
필자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커피를 좋아했다. 명절 선물도, 어버이날도, 당신 생신도 선물은 모두 커피로 받으셨으니, 그리고 하루, 두어 잔의 커피를 드셨다. 커피와 설탕, 커피 프림의 황금비율로……. 필자 또한 옆에서 한 두 모금 마시다 언제부터인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는데, 어느 날은 집에 설탕이 없는 것이다. 아! 어쩔 수 없이 커피 파우더에 물만 붓고 마시는데,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커피의 맛이란 게, 숭늉을 진하게 끓인 맛이구나.
오늘은 ‘까빨 아삐’라고 적힌 붉은 포장지의 커피를 골랐다. 이제 네스까페식 파우더와 침전식 정도는 구분하는데, 분명 인스턴트 커피인데도 향이 진했다. 침전식이라 그런가? 한 모금 넘기는데, 그 시절 어머니와 함께 마시던 딱 그 맛! 이럴 수도 있구나!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보물을 찾은 것 같이 기억의 고봉처럼 가라앉은 커피가루를 한참 바라보았다.
글로벌화 된 지구촌에서 도시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지금 창궐하고 있는 COVID-19도 도시화라는 삶의 패턴이 바이러스에게도 최적의 전파환경을 만들어 내고 말았으니, 빨리 진정되기만을 바란다. 가끔 운전대를 잡고서 길을 나서다 보면 곳곳에 대나무로 역은 포장마차 휴게소를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선 ‘와룽’이라고 하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 곧잘 와룽에다 차를 세운다, 오늘은 어떤 맛의 커피를 고를까?
누룽지나 숭늉을 잊고 산지가 얼마인데, 지금도 진한 숭늉을 끓이면 그 맛이 날까? 아직 가마솥 바닥에는 그런 구수함이 남아있을까 싶어, 바닥까지 골고루 커피를 볶는다. 오늘따라 장작불도 세고 연기도 오지게 맵다. 두 눈 찔끔 감는다.
from 롬복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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