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암바라와(Ambarawa),초록빛 파도에 묻힌 무궁화의 연대기<자바문학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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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커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9-22 09:08 조회994회 댓글0건본문
- 자바문학기행문-
암바라와(Ambarawa),초록빛 파도에 묻힌 무궁화의 연대기
김 주 명 (롬복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회원)
자바문학기행을 목적으로 한국문인협회 인니지부 회원들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스마랑에 도착했다. 알록달록 스카프가 서로 웃음을 나누는 인식표가 되고 간식거리로 정을 나누는 동안 우리가 탄 버스는 스마랑 시내를 벗어나 암바라와로 향하고 있다. 쭉쭉 내달리는 고속도로지만 중부자바의 2천 미터가 넘는 고원을 넘기에는 모두가 목이 마른 듯, 땅도 풀도 바싹 말라있어 마치 편치 볼을 연상케 한다. 이 고원을 지나면 동쪽으로는 수라바야, 남쪽으로는 솔로, 족자카르타로 연결된다고 하니 약육강식의 식민시대에 암바라와를 놓고 벌어진 쟁탈전이 가히 짐작이 될 법 하다. 이윽고 평원으로 들어선 버스는, 아! 어느새 파도를 타듯이 초록의 평야를 달리고 있다.
건기가 서너 달째인 지금도 모내기가 한창이라니! 저 멀리 지평선이 있을 법한 자리에는 머라삐의 산맥이 초록으로 검게 울타리를 치고 있다. 연 초록의 평원이 시야 내내 펼쳐진다. 초록의 향연으로 눈이 맑아진다. 만나는 자바사람들도 모두 초록빛으로 맑게 웃는다. 하지만 웃지 않는, 아니 웃음을 잃어버린 거대한 군막의 요새만이 시간의 장막에 덮여 아직도 경계병의 자세로 꿈쩍도 없다.
육각의 성냥갑 모양으로 평원에다 벽돌로 지은 저 거대한 인공의 요새인 암바라와(Ambarawa)는 네덜란드인들이 식민통치시절, 암바라와를 통해 인도네시아 중부자바를 지배하기위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점령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일본군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남아 있던 유럽인들을 이곳 암바라와로 집결시키고, 그들이 지은 거대한 요새를 포로수용소로 개조하여 그곳에 가두었다. 수용인원이 3만 명을 넘었다 하니, 자신들이 건설한 요새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그 비통함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여기까지는 2차 세계대전 전후 식민지 시대의 여느 나라에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저 남의 나라 전쟁 사 정도로 묻힐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우리 민족인 조선소녀들의 피우지 못한 무궁화가 거기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을 지배하던 일본은 유럽인들을 수용하고 이를 지키고 감시할 초병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조선에서 강제로 또는 그럴싸한 꾐으로 군사모집을 하였으며, 3천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 출신 일본군을 동남아시아 전역에 배치하였다. 이곳 암바라와 수용소에도 우리의 조선인이 7백에서 천여 명 가량 배치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일본인 군속을 따라 전개된 조선인 위안부의 거처가 요새와 2∼3미터 거리를 두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이럴 수도 있었던가? 우리 조선인도 전쟁에서 철저한 피해자였건만,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피해자인 그들이 오히려 일본인 가해자의 입장에서 유럽인 포로들을 감시하는 노릇을 했다고 하니, 이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도 모자라 전쟁이 가져다 주는 또 하나의 잔혹사라 하겠다.
1945년, 일본은 패전으로 전격 철수하자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어느 누구도 조선인 일본군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합군측에서는 조선인 일본군도 일본군으로 간주 해 전범으로 심판하고 처형하였으니, 그 억울하고 애통함을 어디에도 표명할 수조차 없었다. 일본군의 철수는 신속하게 이루어 졌다. 하지만, 남겨진 유럽인 포로와 이를 감당 할 수 없는 무국적자 조선인 군인들, 그리고 돌아갈 길 없는 조선인 위안부 여인들, 그들은 저 초록의 바다에 갇혀 서로를 깊게 응시하였을 것이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연합군의 한 축이었던 네덜란드 군의 상륙을 거부하고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때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독립영웅, 양칠성 부대원의 이야기도 여기서 시작된다.
그들은 이곳 암바라와에 있던 일본군 무기고를 개방하고 인도네시아 군인들에게 무기를 전달하였으며, 네덜란드 군인들과 적극적인 전투를 벌였다고 전한다. 이윽고 연합군은 완전 철수하였으며 인도네시아는 오랜 식민통치를 마감하고 마침내 독립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돌아갈 바다를 건너지 못한 이방인 조선인들은 이곳 자바 섬에서 슬프고도 긴 생을 마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 다 피지 못하고 스러져간 무궁화, 그들의 엷은 자취는 이곳 자바 곳곳에 바람처럼 떠돌고 있다. 다행히 인도네시아 전역을 구석구석 골목길 다니 듯 돌며 조선인 역사를 채록하신 문인협회 한상재고문님의 떨리는 육성으로 현지인들과 한인들에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인도네시아 자바 땅, 초록의 암바라와 평원에 서 있다. 누가 나를 이곳에 세웠는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더 이상의 일본군도, 조선인 군인도, 위안부도 없다. 포로가 된 유럽인들도 없다. 남겨진 것이 있다면 어두운 적막으로 초록의 긴 그늘이 그날의 요새를 덮고 있을 뿐이다. 암바라와의 넓은 분지에는 끝없이 맑은 물이 솟아난다. 저 물이 암바라와 들녘을 살찌우고 있다. 이 생명의 땅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방인들에게는 솟구쳐 오르는 저 물은 마치 마르지 않는 그들의 눈물처럼 여기지는 않았을까? 슬픔도 깊어지면 밥이 된다고, 지금 저 풍요의 들판에서 나락을 터는 자바의 아낙네에게 귀띔이라도 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