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원 | 인터넷문학상 우수상 - 한인니문화연구원 이사장상 '파파야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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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인니문화연구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1-17 19:00 조회4,617회 댓글0건본문
우수상 한인니문화연구원 이사장상
파파야 나무처럼
이정희(가정주부)
7년 전 이곳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을 때의 낯설음은 어느새 익숙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들의 등 하교를 돕고, 올해는 우리 딸 반의 학부모 대표를 맡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음식이 익숙해지고, 문화가 익숙해지면서 내 모습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한국이 그리워서 혼자 몰래 울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언제나 꿋꿋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열대 과일의 아빠라고 불리는 파파야 나무처럼 내 모습도 단단해져 있다. 가늘고 길지만 쉽게 부러지지 않는 그 모습은 한국 고향 집에서 자라나는 해바라기를 닮아 있다. 강한 바람에도 거센 비에도 늘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강한 나무처럼. 우리 집 앞마당에 우연히 뿌려진 파파야 씨앗에서 싹이 돋아났고 길쭉한 나무로 자라더니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대 과일 중 하나인 파파야를 즐겨 먹지 않던 우리 가족은 우리 집 앞뜰에서 자랐다는 신기함에 파파야가 익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다 자라난 파파야를 따서 먹었고, 향긋한 향기와 달콤한 맛을 느끼게 되면서 파파야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 개의 열매 안에서 나오는 수많은 씨들을 다시 땅에 심었다. 그 파파야가 또 다시 싹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수확하면서 기뻐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 년 내내 덥다고 투정 부릴 때도 있지만, 그 따뜻함으로 인해 일 년 내내 파파야를 풍성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다.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어졌다.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면서 얼마 전에는 인도네시아 최대 규모의 음료 공장인 소스로(teh sosro) 공장에 다녀왔다. 발리, 따만미니, 반둥 등 여러 곳에 여행을 다녀 보았지만, 음료 공장 견학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견학 갈 곳을 학부모가 답사하는 프로그램 이었다. 학부모 모두 삼삼오오 줄을 지어 소풍 온 아이들처럼 들떠서 가이드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질문도 하였다. 학교 모임을 통해서 인도네시아 엄마들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모습의 발견이었다.
음료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듣고, 인도네시아 음식 뷔페도 먹을 수 있었다. 모든 말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사전을 찾아보면서 한 단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며 그 색다른 경험은 파파야처럼 향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가 초등학생이 된지 얼마 안 되어서 유난히 친했던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서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강의였다.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밥과 불고기를 준비했고 우리 아들, 딸의 한복도 옷걸이에 잘 걸어서 가지고 갔 다. 태극기와 아이들에게 들려 줄 곰 세 마리를 준비해서 한글도 읽어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김밥과 불고기도 먹어 보았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니 처음의 부담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아이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시간은 한복을 입어보고 세배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색동 무늬와 예쁜 장식이 있는 한복을 입고 빙글빙글 돌면서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전통 옷인 매력적인 바띡을 입었을 때의 느낌과 사뭇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바띡 옷을 제작하기 위해 장인은 뜨겁게 녹인 왁스를 작은 구리 용기에 채워 넣고 그 용기를 손에 쥐고 그림을 정교하게 그려나간다. 장인의 정교한 손길과 정성으로 아름다운 옷 한 벌이 완성된다. 최근에는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 사람들도 바띡을 즐겨 입고 있다. 2009년 유네스코에서는 바띡이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문화적인 특수성을 고려해서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얼마 후에 나는 학교에서 감사장을 받았고, 우리 아이들이 엄마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우리 나라의 문화와 인도네시아의 문화는 확연하게 다르지만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한복을 좋아해 주었던 것처럼 나도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 해야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서연아, 영광아 엄마도 인도네시아에서 너희들이 자라는 것처럼 성장해 가고 있단다. 때로는 아프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파파야 처럼 싱그럽게 자라는 너희를 보며 엄마는 힘을 얻는단다. 엄마 아빠에게 세상 전부인 우리 딸, 아들 사랑해." 나도 인도네시아에서 꿋꿋하게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파파야처럼 더 열심히 밝게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한 나라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언어 소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 타국 땅에 도착해서 낯설었던 것은 사람들의 생김새가 달라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모르고 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위축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아이들과 함께 같이 동네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책도 사서 읽으면서 한 단어씩 알아갔다. 그 덕분에 나는 빠르게 인도네시아 생활에 적응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인니어를 모국어 만큼이나 편하게 생각하고 학교에서도 큰 어려움없이 공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해가 질 무렵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이지만, 학교에서 공부하고, 놀고 그런 덕분에 아이들은 밝고 구김살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열심히 사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얼마 전에는 보육교사 공부도 시작했고, 한 학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우기 철이 다가왔고 매일 한 두 차례 큰 비가 쏟아지면 늘 고향에 계신 엄마가 생각난다. 자취하는 아들, 딸을 위해 김치 꾸러미를 들고 일이 없는 장마철에 자주 다니셨던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생각난다. 예전의 소박했지만, 행복했던 그 때를 추억하며 언제나 꿋꿋하게 하늘을 보며 그러나 유연하게 살아가리라. 파파야나무처럼
가느다란 가지를 벌려 하늘 향해 쭉 뻗어 있는 파파야 나무 고향 땅에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닮아 있다. 거센 비에 휘어져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파파야 나무 그 모습은 우리 엄마를 닮아 있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묵묵하게 땅을 내려다보고 있는 파파야 나무 우리 아빠를 닮아 있다. 가녀린 몸에서 어찌 그리 큰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을까 그 모습은 어린 시절 나를 닮아 있다. 옹기종기 피어난 꽃에서 열매 맺는 강한 의지 우리 아이를 닮아 있다. 투박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다가가면 향긋함을 내뿜는 파파야 나무 그 모습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닮아 있다.
파파야 나무야! 내 꿈을 돋우어 주고 내 희망의 불씨가 되어다오. 그리하여 파파야 나무에 기억된 비와 구름, 햇빛을 마음 푸르도록 가꾸어 보고 싶다.파파야 나무는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