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단체/기관 > <좋은 수필>읽기, 조은아 "오늘도, 엄마는"

본문 바로가기
  • FAQ
  • 현재접속자 (1702)
  • 최신글

LOGIN

한국문인협회 | <좋은 수필>읽기, 조은아 "오늘도, 엄마는"

페이지 정보

작성자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7-08 10:50 조회272회 댓글0건
  • 검색
  • 목록
게시글 링크복사 : http://www.indoweb.org/502455

본문

<회원 수필>

 

오늘도, 엄마는

 

조은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전봇대처럼 서 있기만 해도 쪼르르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른다. 낮 기온 삼십이도. 체감온도 삼십구도. 도로에 뿌리 박고 있는 시멘트 기둥이 새삼 기특한 이곳은 일 년 내내 뜨거운 적도의 땅이다. 한국기업에서 받은 새해 달력에는 현지 공휴일과 한국 공휴일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설이 오 일 앞으로 다가왔다.

간단히 해 간단히.”

막내딸에게 이렇게 말하는 당신은 정작 일 년에 열두 번의 제사를 지내던 종갓집 큰며느리였다.

더운데 고생이네. 간단히 해 간단히.”

본인도 그리하지 않았으면서 전화기 속 엄마는 또 딸에게 권한다. 알기에 그리하신다. 명절을 위해, 제사를 치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고되고 정신없으며 숨이 찬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는 일을 하려는 딸에게 엄마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큰며느리라는 신분의 의미를 모르고 결혼했을까, 나는 가끔 궁금했다. 그 명함을 받은 대가가 어떤 건 줄 알았더라도 엄마는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아빠의 부인이, 세 남매의 엄마가 되었을까. 평생 해내야 할 음식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무한의 반복임을 알았더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까? 좁고 아슬아슬한 인생의 끝자락을 걷고 있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에게 음식은 노동이었다. 누가 뭐래도 목격자인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제공된 음식은 엄마가 치른 노동의 결과물이었고 짜디짠 엄마의 땀은 그것들의 밑간이었다. 아빠는 육 남매의 장손이셨고 우리 집은 종갓집이었다. 명절이면 엄마는 수십 명의 친지가 며칠간 먹고 남을 정도의 음식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시장을 돌아 재료를 사다 나르고 다듬는 데에만 열흘 남짓. 대파, 양파를 재채기와 함께 다듬어 두고 빻은 마늘이 적당한지를 가늠하고 생선 살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두고 매끈한 모양의 조기는 깨끗이 씻어 모셔두고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당근과 버섯, 양파와 파를 다져 넣고 달걀을 떨어뜨려 동그랑땡 반죽을 하고 국 끓일 고기는 핏물이 빠지게 물에 담가 두고 산적용 고기는 간장과 설탕, 마늘, 간 양파와 배를 섞은 양념에 노란 뚜껑의 참기름을 더해 재워두고 말린 고사리는 물에 불렸다, 삶고 숙주와 시금치는 다듬어 삶아 물기를 꼭 짜두고 밀가루 전을 위해 야들한 배춧잎을 골라 진눈깨비 소금을 뿌리고 쭉 뻗은 쪽파를 길이에 맞게 따로 남겨두면 겨우 반 정도가 끝났다.

설에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건 단연 만두 속이었다. 정성스레 봉해두었던 김장 김치를 시린 손 달래가며 보물 꺼내듯 도마로 옮겨 쓱쓱 썰고 다졌다. 뜨거운 걸 만질 때도 차가운 걸 집을 때도 똑같이 반응하는 엄마가 난 재밌었다. 찬 걸 쥐었는데 손이 델 때처럼 입을 모아 호호하는 걸 보며 일부러 웃기려 그러나 생각한 적도 있다. 일회용 장갑을 끼면 코딱지만큼이라도 덜 얼 텐데 엄마는 꼭 맨손으로 그 벌겋고 차가운 걸 만졌다. 미끈거리는 장갑 낀 손으로는 김치 맛이 나지 않는다나. 하긴, 엄마는 손으로도 맛을 보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김치를 다진 엄마의 손에서는 입냄새처럼 김치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 많은 식구 입에 넣을 것과 싸 들고 갈 것까지 하려면 통 하나는 다 비워야 했다. 엄마는 세월이 알려준 계산법으로 만두 속 김치의 포기 수와 만두피가 될 밀가루의 양을 가늠했다. 온갖 재료의 맛이 녹아내린 김칫국물이 아깝다며 엄마는 그 시큼한 김칫국물을 따로 담아 보관하셨다. 엄마에게는 김칫국물 한 방울도 산적, 갈비찜과 매한가지인, 똑같이 노동을 치른, 그 시간이 담긴 음식이었다.

차례상엔 오르지 않지만, 온 식구가 먹을 잡채며 갈비찜 재료 준비까지 마칠 즈음이면 어느새 코끼리 발목이 된 엄마의 낯빛은 방전을 경고하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대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육체는 신기하게도 차례를 지내고 동기간 손에 바리바리 음식을 들려 보낼 때까지 용케 버티었다.

그렇게 명절이 요구하는 모든 노동이 끝나면 엄마는 마치 시나리오의 정해진 다음 장면을 찍듯 꼬박 이틀, 심한 몸살을 앓느라 일어나지 못하셨다. 방전된 엄마가 기운을 회복하는 동안 우리 가족의 배를 채운 건 치열한 노동으로 빚어놓은 명절 음식이었다. 요리에 젬병인 아빠도, 아직 어렸던 언니 오빠도, 잡채와 전을 넣은 잡탕찌개를 맛있게 끓일 수 있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맛이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돌아보면 엄마의 음식인 노동은 정작 당신을 위해서인 적이 없었다. 남편과 자식들, 친지를 위한 노동이었고 시간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실컷 먹고 나눌 수 있었던 음식들은 그러니까 엄마의 시간이었고 그녀의 세월이었다. 우리는 한결같았던 큰며느리의 인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자란 거였다. 엄마는 지난 몇 년간 처음으로 명절 음식을 하지 않으셨다. 아빠의 긴 투병과 장례를 치르는 동안 평생을 습관처럼 해오던 것들에서 잠시 멀어지셨다.

 

한인 슈퍼에서 사 온 냉동 만두피를 꺼내 놓고 나는 손을 호호 불며 김치를 다진다. 당신이 했던 짓을 그대로 하는 딸을 보며 화면 속 엄마가 한마디 한다. 거긴 비닐장갑도 없냐고. 체감온도 삼십 구도는 거짓말이다. 적도에서 김치를 다지고 있자면 체감온도는 오십 도가 맞다. 김칫국물을 따로 보관하는 이유를 깨달을 만큼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었다. 핏물처럼 똑똑 떨어지는 김칫국물을 보며 품고 있던 질문 말고 느닷없이 피어오르는 걸 엄마에게 던진다. 왜 나이를 먹는다고 할까. 셈하지 않고 왜 먹지.

 

먹어야 사니깐. 살아야 나이도 들지. 나이 먹어 봐라- 이게 한번 살아봐라- 그 말이잖아. 나이를 먹는 건 산다는 거야. 그니까 살려고 먹는 음식이, 삶인 거야.”

 

어설픈 듯 묘하게 설득되는 개똥철학 논리에 따르면 이 뜨거운 적도에서 비지땀 흘려가며 만들어 먹는 이 만두도 곧 나의 삶이다. 무릎 연골이 닳아 일어나는 데만 한세월인 엄마는 샘나서 안 되겠다며 부엌으로 향하신다. 괜히 일 벌이지 말라는 잔소리를 나 몰라라 하더니 화면 속 엄마가 이내 까매진다.

못살아. 연민에 버무려진 일갈을 뱉으며 나는 마저 손을 놀린다. 안 봐도 빤한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십수 년간 보아온. 그래서 잘 아는.

 

 

오늘도, 엄마는 당신의 삶을 살고 계신다.

  • 검색
  • 목록
   
한인단체/기관 목록
  • Total 137건 1 페이지
한인단체/기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37 한국문인협회 제 6회 적도문학상 시상식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04 297
열람중 한국문인협회 <좋은 수필>읽기, 조은아 "오늘도, 엄마는"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8 273
135 한국문인협회 <종은 시>일기, 조자연의 빈집 첨부파일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8 261
134 한국문인협회 제 6회 적도문학상 시상식 첨부파일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8 250
133 한국문인협회 2024년 신년 詩 '그리운 안쫄 Ancol' - 재인니 문인협…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1-05 292
132 한국문인협회 이영미 동화작가 제5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시상식 참여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2-26 299
131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 문인협회 북 콘서트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1-28 334
130 한국문인협회 인니문인협회 북 콘서트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1-17 315
129 한국문인협회 야자, 야자우유?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20 722
128 한국문인협회 루작, 덜 익은 과일들의 오묘한 조합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16 848
127 한국문인협회 붉은 양파? 붉은 마늘?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07 782
126 한국문인협회 바나나, 나무 or 풀?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01 1208
125 한국문인협회 바나나 고르기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2-22 676
124 한국문인협회 마음을 비운 채소- 공심채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2-06 699
123 한국문인협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1-28 545
122 한국문인협회 뗌뻬(Tempeh), 콩 스테이크를 추천합니다!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1-18 804
121 한국문인협회 제 5회 적도문학상 공모 포스터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1-14 622
120 한국문인협회 안남미(安南米), 식은 밥과 찬밥 사이 인기글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1-02 669
119 한국문인협회 2023, 제 5회 적도문학상 공모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1-02 496
118 한국문인협회 안남미(安南米), 정말 불면 날아갈까? 인기글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27 673
117 한국문인협회 안남미(安南米), 배고픈 기억과 배부르지 않는 밥 인기글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22 580
116 한국문인협회 향신료의 나라 댓글2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20 834
115 한국문인협회 계간<문장(文章)> 가을호 문인협회 강인수 시인 2022년 신인…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20 601
114 한국문인협회 사탕수수, ‘화학’이란 이름의 멍에 인기글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11 603
113 한국문인협회 사탕수수, 단맛으로의 진화 인기글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08 640
112 한국문인협회 커피, 인스턴트의 나라 인기글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02 707
111 한국문인협회 커피, 카페인의 친구들 댓글2 인기글 롬복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1-25 837
110 한국문인협회 문협 정기모임: 아동문학가 이영미작가와의 만남 인기글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9-19 812
게시물 검색

인도웹은 광고매체이며 광고 당사자가 아닙니다. 인도웹은 공공성 훼손내용을 제외하고 광고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습니다.
Copyright ⓒ 2006.7.4 - 2024 Powered By IndoWeb.Org. All rights reserved. Email: ad@indowe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