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 계간<문장(文章)> 가을호 문인협회 강인수 시인 2022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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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2-20 08:08 조회600회 댓글0건본문
『특집 인터뷰』
계간<문장(文章)> 가을호 문인협회 강인수시인 2022년 신인상 수상
“詩는 치유의 명약”
문학계의 권위 있는 계간지인 <문장>에서는 2022년 10월, 가을호를 통하여 시 부문 신인상에 인니문협 회원인 강인수 시인을 선정하였다. 강 시인은 학창 시절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시 쓰기에 대한 꿈을 키웠고,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보다 탄탄한 기본기를 쌓아갔다. 이후, 공백기를 지나 인니 문협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습작 활동을 이어왔다. 강 시인의 시는 사유가 깊고 중견 시인에 버금가는 표현력으로 심사위원들의 칭찬과 평가가 남다르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찰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시에 몰입하게 한다. 강인수 시인을 만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9년 6월, 자카르타에 첫 발을 내딛고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0년도 즈음 문인협회가 창단되려고 할 때에 잠시 문학모임에 참석한 기억이 나고 이후 자녀들을 낳고 키우느라 글쓰기를 잊고 지냈었습니다. 우연히 2016년 정호승 시인 초청강연을 갔다가 인도네시아에 아직 문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2019년 적도 문학상에 문을 두드려 인니상공회의소장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여러 문협 선배 문우님들과의 교류를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강인수시인과 김준규 문협 회장
작품 ‘부재’는 존재를 상기시키는 시입니다. 제가 고국을 떠나온 90년대 후반의 ‘나’는 현상적으로 시대의 불안정함에 절망하면서도 존재 그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아무도 시인이라 불러주지 않는 ‘나’와 완벽히 이별을 하고 보냈습니다. 밀레니엄시대부터 지금까지 이국땅에 살면서 내가 누비던 삶의 골목을 그리워하고 또는 환멸 했던 기억은 텅 빈 중심이 되어 거기 그곳 또는 누군가에게 없어진 ‘나’를 상기시키려 했는지 모릅니다. 끊임없는 연기의 오름은 몸에 스며들어 버릴 만큼 흡착력이 강한 그리움입니다. 발이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퍼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부재’를 통해 지금 존재하는 나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김준규 시인에게서 당선작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강인수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그녀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랑과 가족이라는 엄숙한 울타리 안에서도 체증처럼 목에 걸린 울분을 읽을 수 있다. “추운 몸을 따끈한 국 한 그릇”으로 위로하며 질척해진 일상의 아픔 속에서도 바라진 꿈을 찾고자 한다. “모락모락 오르는 김”은 그녀가 갈구하는 문학에 대한 자유적 욕구를 표방하고 있다. 호수 속에 깊이 묻어둔 그리움이 그녀의 꿈이다.
소녀시절의 남모르게 숨겨두었던 문학의 신기루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숨결처럼 새근거리며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춤을 추듯 달려오다 문득 돌아 본 길은 아득히 "부재"(不在)의 시간이었다. 새롭게 만나는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며 그녀는 이제 인생의 중반에서 시인이 된 자신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시인으로의 등단은 어찌 보면 고행의 길이 될 수도 있다. 기쁨의 박수는 한 순간이지만 창작에 대한 고통은 백배 천배의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유를 체험하고 짓누르는 감성의 유혹을 참지 못한다. 경험과 훈련을 통하여 절제된 언어의 연금술사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 매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너를 보낸다
완벽한 이별을 하고
궂은 봄비가 내렸다
마음이 젖으면 몸이 춥다는 걸
왜 이재야 알아서
슬픈 몸살을 견디고 있나
앞에 놓인 따뜻한 국 한 그릇
모락모락 오르는 김은
체온과 뒤엉켜 자유하고 있다
당선작「부재」 중에서
▶ 시를 쓰게 된, 나아가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요?
고등학교 시절 1984년 시인으로 등단하신 오태환 선생님이 이끄는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국어 선생님의 모습과 글쓰기 수업이 제게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제 청춘이 머물던 90년대는 감수성의 시대였고 서태지가 영원할 것 같았으며 텔레비전 크기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문화의 대폭발을 경험했던 시대입니다. 뭐라도 쓰지 않고는 못 버틸 그 감수성의 시간들이 저를 글쓰기 공부에 빠지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네시아로 이주 후에는 별다른 의식이 없이 암중 모색기를 지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문협 활동 후 늦게나마 다시 나의 세계관을 꾸려보는 중입니다.
▶ 외국에서 문예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애로사항은 어떤 점이 있을까요? 또 이를 어떻게 해소하셨는지요?
외국이라고 해서 문예활동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도네시아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제게는 좀 소재라던가 시대적 사명감이라던가, 정서적 공감대를 느끼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갇힌 생활의 답답함, 나의 발로 걸어 다니지 못하는 불편함, 그에 따른 정서의 결핍, 국내의 시대적 흐름을 못 읽는 수줍음, 도전하지 못하는 두려움, 이런 것이 어렵다고 봅니다. 상상을 해보자면 좀 더 자유로운 세계로 가서 살면 더 많은 글을 써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조심스럽게 가져봅니다.
애로사항의 해소는 고국 방문 시 도서관, 대형서점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갖습니다. 읽고 싶은 책. 그림 등을 혼자 관람하며 모퉁이에 앉아 오래도록 머물며 그동안 담지 못했던 느낌. 감정을 마음에 담아옵니다.
▶ 선생님처럼 문학의 꿈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쓰기가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훨훨 날아가는 자유로운 새의 영혼으로 관념이나 사상을 깨고 실험성 있는 문학에 투자해서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 식의 세상을 타파하고 창조적인 문학을 하는 우리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작가론, 문체론, 작품론 등의 경직된 이론의 틀에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진취성을 발휘하는 좋은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너무 대중적이며 느끼하거나 나른한 작품을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의 전위 역할을 하는 품격 있고 가슴을 울리는 언어를 다루는 우리가 되기를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 이제 문인으로서 활동하시게 되는데, 문인으로 이루고 싶은 특별한 꿈이 있는지요?
특별한 꿈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훌륭한 스승을 계속 만나서 틈틈이 글을 쓰고 배우고 사는 꿈은 늘 꾸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탐구자의 길을 한번쯤 가보는 것도 그래서 새로운 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래서 아직 저에게는 도약할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긴 시간 동안 강인수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그 마음을 마음껏 펼쳐주기를 바란다. 그녀의 수상 소감 한 구절이 우기의 짙은 구름이 되어 자카르타 하늘에 깔려있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마음을 시로 엮어 종이비행기에 실어 날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에게 다시 치유의 명약이 되어 날아왔습니다.”
취재 및 정리: 전현진(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