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단체/기관 > <좋은 수필>읽기, 조은아 "오늘도, 엄마는"

본문 바로가기
  • FAQ
  • 현재접속자 (1400)
  • 최신글

LOGIN

한국문인협회 | <좋은 수필>읽기, 조은아 "오늘도, 엄마는"

페이지 정보

작성자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7-08 10:50 조회277회 댓글0건
  • 목록
게시글 링크복사 : http://www.indoweb.org/502455

본문

<회원 수필>

 

오늘도, 엄마는

 

조은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전봇대처럼 서 있기만 해도 쪼르르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른다. 낮 기온 삼십이도. 체감온도 삼십구도. 도로에 뿌리 박고 있는 시멘트 기둥이 새삼 기특한 이곳은 일 년 내내 뜨거운 적도의 땅이다. 한국기업에서 받은 새해 달력에는 현지 공휴일과 한국 공휴일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설이 오 일 앞으로 다가왔다.

간단히 해 간단히.”

막내딸에게 이렇게 말하는 당신은 정작 일 년에 열두 번의 제사를 지내던 종갓집 큰며느리였다.

더운데 고생이네. 간단히 해 간단히.”

본인도 그리하지 않았으면서 전화기 속 엄마는 또 딸에게 권한다. 알기에 그리하신다. 명절을 위해, 제사를 치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고되고 정신없으며 숨이 찬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는 일을 하려는 딸에게 엄마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큰며느리라는 신분의 의미를 모르고 결혼했을까, 나는 가끔 궁금했다. 그 명함을 받은 대가가 어떤 건 줄 알았더라도 엄마는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아빠의 부인이, 세 남매의 엄마가 되었을까. 평생 해내야 할 음식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무한의 반복임을 알았더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까? 좁고 아슬아슬한 인생의 끝자락을 걷고 있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에게 음식은 노동이었다. 누가 뭐래도 목격자인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제공된 음식은 엄마가 치른 노동의 결과물이었고 짜디짠 엄마의 땀은 그것들의 밑간이었다. 아빠는 육 남매의 장손이셨고 우리 집은 종갓집이었다. 명절이면 엄마는 수십 명의 친지가 며칠간 먹고 남을 정도의 음식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시장을 돌아 재료를 사다 나르고 다듬는 데에만 열흘 남짓. 대파, 양파를 재채기와 함께 다듬어 두고 빻은 마늘이 적당한지를 가늠하고 생선 살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두고 매끈한 모양의 조기는 깨끗이 씻어 모셔두고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당근과 버섯, 양파와 파를 다져 넣고 달걀을 떨어뜨려 동그랑땡 반죽을 하고 국 끓일 고기는 핏물이 빠지게 물에 담가 두고 산적용 고기는 간장과 설탕, 마늘, 간 양파와 배를 섞은 양념에 노란 뚜껑의 참기름을 더해 재워두고 말린 고사리는 물에 불렸다, 삶고 숙주와 시금치는 다듬어 삶아 물기를 꼭 짜두고 밀가루 전을 위해 야들한 배춧잎을 골라 진눈깨비 소금을 뿌리고 쭉 뻗은 쪽파를 길이에 맞게 따로 남겨두면 겨우 반 정도가 끝났다.

설에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건 단연 만두 속이었다. 정성스레 봉해두었던 김장 김치를 시린 손 달래가며 보물 꺼내듯 도마로 옮겨 쓱쓱 썰고 다졌다. 뜨거운 걸 만질 때도 차가운 걸 집을 때도 똑같이 반응하는 엄마가 난 재밌었다. 찬 걸 쥐었는데 손이 델 때처럼 입을 모아 호호하는 걸 보며 일부러 웃기려 그러나 생각한 적도 있다. 일회용 장갑을 끼면 코딱지만큼이라도 덜 얼 텐데 엄마는 꼭 맨손으로 그 벌겋고 차가운 걸 만졌다. 미끈거리는 장갑 낀 손으로는 김치 맛이 나지 않는다나. 하긴, 엄마는 손으로도 맛을 보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김치를 다진 엄마의 손에서는 입냄새처럼 김치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 많은 식구 입에 넣을 것과 싸 들고 갈 것까지 하려면 통 하나는 다 비워야 했다. 엄마는 세월이 알려준 계산법으로 만두 속 김치의 포기 수와 만두피가 될 밀가루의 양을 가늠했다. 온갖 재료의 맛이 녹아내린 김칫국물이 아깝다며 엄마는 그 시큼한 김칫국물을 따로 담아 보관하셨다. 엄마에게는 김칫국물 한 방울도 산적, 갈비찜과 매한가지인, 똑같이 노동을 치른, 그 시간이 담긴 음식이었다.

차례상엔 오르지 않지만, 온 식구가 먹을 잡채며 갈비찜 재료 준비까지 마칠 즈음이면 어느새 코끼리 발목이 된 엄마의 낯빛은 방전을 경고하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대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육체는 신기하게도 차례를 지내고 동기간 손에 바리바리 음식을 들려 보낼 때까지 용케 버티었다.

그렇게 명절이 요구하는 모든 노동이 끝나면 엄마는 마치 시나리오의 정해진 다음 장면을 찍듯 꼬박 이틀, 심한 몸살을 앓느라 일어나지 못하셨다. 방전된 엄마가 기운을 회복하는 동안 우리 가족의 배를 채운 건 치열한 노동으로 빚어놓은 명절 음식이었다. 요리에 젬병인 아빠도, 아직 어렸던 언니 오빠도, 잡채와 전을 넣은 잡탕찌개를 맛있게 끓일 수 있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맛이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돌아보면 엄마의 음식인 노동은 정작 당신을 위해서인 적이 없었다. 남편과 자식들, 친지를 위한 노동이었고 시간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실컷 먹고 나눌 수 있었던 음식들은 그러니까 엄마의 시간이었고 그녀의 세월이었다. 우리는 한결같았던 큰며느리의 인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자란 거였다. 엄마는 지난 몇 년간 처음으로 명절 음식을 하지 않으셨다. 아빠의 긴 투병과 장례를 치르는 동안 평생을 습관처럼 해오던 것들에서 잠시 멀어지셨다.

 

한인 슈퍼에서 사 온 냉동 만두피를 꺼내 놓고 나는 손을 호호 불며 김치를 다진다. 당신이 했던 짓을 그대로 하는 딸을 보며 화면 속 엄마가 한마디 한다. 거긴 비닐장갑도 없냐고. 체감온도 삼십 구도는 거짓말이다. 적도에서 김치를 다지고 있자면 체감온도는 오십 도가 맞다. 김칫국물을 따로 보관하는 이유를 깨달을 만큼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었다. 핏물처럼 똑똑 떨어지는 김칫국물을 보며 품고 있던 질문 말고 느닷없이 피어오르는 걸 엄마에게 던진다. 왜 나이를 먹는다고 할까. 셈하지 않고 왜 먹지.

 

먹어야 사니깐. 살아야 나이도 들지. 나이 먹어 봐라- 이게 한번 살아봐라- 그 말이잖아. 나이를 먹는 건 산다는 거야. 그니까 살려고 먹는 음식이, 삶인 거야.”

 

어설픈 듯 묘하게 설득되는 개똥철학 논리에 따르면 이 뜨거운 적도에서 비지땀 흘려가며 만들어 먹는 이 만두도 곧 나의 삶이다. 무릎 연골이 닳아 일어나는 데만 한세월인 엄마는 샘나서 안 되겠다며 부엌으로 향하신다. 괜히 일 벌이지 말라는 잔소리를 나 몰라라 하더니 화면 속 엄마가 이내 까매진다.

못살아. 연민에 버무려진 일갈을 뱉으며 나는 마저 손을 놀린다. 안 봐도 빤한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십수 년간 보아온. 그래서 잘 아는.

 

 

오늘도, 엄마는 당신의 삶을 살고 계신다.

  • 목록
   
한인단체/기관 목록
  • Total 2,831건 3 페이지
한인단체/기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775 한국문화원 커피의 나라에서 K-커피의 문화와 예술을 맛보다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14 363
2774 한국문화원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 문화원 내부인테리어 설계 및 시공 입… 첨부파일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10 366
2773 한국문화원 케이팝 꿈나무의 산실, 2024 케이팝 아카데미 개강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10 333
열람중 한국문인협회 <좋은 수필>읽기, 조은아 "오늘도, 엄마는"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8 278
2771 한국문인협회 <종은 시>일기, 조자연의 빈집 첨부파일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8 265
2770 한국문인협회 제 6회 적도문학상 시상식 첨부파일 munhyup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8 256
2769 한국문화원 K-커피 문화와 예술(K-Coffee Culture & Arts…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6 391
2768 봉제협회 한국봉제산업을 선도하는 KOGA Vol.80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5 340
2767 건설협의회 건설협의회 | 창조 Vol.91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5 332
2766 대한체육회 2024년도 재인도네시아 교민배드민턴 대회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5 300
2765 한국문화원 박주영 피아노 독주회(Magic Faith & History)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3 391
2764 기타단체 [재공고/KOICA] 인도네시아 취약계층 청소년 사회복귀 지원사… 첨부파일 알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3 296
2763 대한체육회 제105회 김해 전국체전 볼링 선수선발전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2 1841
2762 한인회 한인뉴스 2024년 7월호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2 335
2761 한인회 암바라와로 떠나는 시간 여행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2 325
2760 신발협의회 재인니한국신발협의회 코파의 힘 Vol 118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6 338
2759 월드옥타 『2024 아세안 차세대 글로벌 무역스쿨』 모집 공고 - 자카르… OKT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1 378
2758 대한체육회 제105회 전국체전 참가 탁구 대표 선수 선발전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3 463
2757 기타단체 인도네시아 전국 국공립대학교 비파 정규 과정 가을 학기 수강 신… 인기글첨부파일 KoreanCenter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3 684
2756 대한체육회 제105회 전국체전 참가 스쿼시 선수 선발전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3 374
2755 JIKS 2025학년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학교급식 전부위탁(매점포함) … JIKSAD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1 404
2754 기타단체 제 69회 현충일 추념식 및 북한 인권 개선 촉구 회의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0 245
2753 기타단체 민주평통, 자카르타국제학교에서 제 8회 2024년 통일 골든벨 …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0 295
2752 한인회 수낫딴 행사 - 땅그랑 소재 한국기업 현지 직원 자녀의 신청을 …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7 373
2751 한인회 왜? 경영이 예술인가!/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성공 경영세계 경영… 바위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4 412
2750 건설협의회 건설협의회 | 창조 Vol.90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3 375
2749 한인회 한인뉴스 2024년 6월호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3 381
2748 기타단체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2024-2학기 1차 신·편입생 모집 … 첨부파일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3 262
게시물 검색

인도웹은 광고매체이며 광고 당사자가 아닙니다. 인도웹은 공공성 훼손내용을 제외하고 광고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습니다.
Copyright ⓒ 2006.7.4 - 2024 Powered By IndoWeb.Org. All rights reserved. Email: ad@indowe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