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삼십대 중반에 모국을 떠나 신흥 국가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해 산 지 45년이 되었다. 그간 단 하루도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걸 잊고 산 적이 없다. 물론 대한민국에 있을 때도 남다른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다. 학창 시절 교장선생님이 한 말씀 중 "사람은 언젠가 죽는데 병들어 죽지 말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죽어라"는 가르침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부족하나마 그 가르침에 부응하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캠페인에 동참했던 일, 한미와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촉구와 경제 활성화 세미나를 열고 비준촉구서에 서명했던 일, 미국과 영국 의회에 전달했던 일은 모두 모국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자카르타에서는 현지 진출 기업들의 자발적인 기금 모금으로 한국 국제학교가 매우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한 명 두 명 더해져 가능했던 일이다. 덧붙이자면 동포 2세들에게 무역스쿨을 통해서 차세대 기업인들을 배출한 것도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그뿐인가. 한상 경제인들이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해 투자했던 일, 남북 간 긴장 완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북측의 일방적 폐쇄 통보로 개성공단이 멈춰버린 걸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2002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남북한을 동시 방문했다.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이었다. 한·인도네시아 관계가 깊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필자는 그때 군 특보로 대통령 방문에 관여한 타롭 중장과 자카르타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했다. 그 후 메가와티 대통령의 남편 타우피크 키에마스가 국회 상원의장이 되어 필자를 개인 고문으로 위촉했다. 민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양국 사이에 작은 가교 하나를 놓았다고 자부한다.
필자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에 750만 동포가 흩어져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오대양 육대주 어디를 가나 한국 음식과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한국 팝을 접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 유수의 선진국 중 하나가 됐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누가 상상했던가. 750만 코리안 디아스포라여. 위대한 조국 대한민국을 빛내는 애국자들이여. 우리는 모국을 잊은 적이 없다. 우리 후손들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대한민국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