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시즌 첫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500만호주달러·약 440억원) 여자 단식 4강 진출자가 모두 가려졌다. 지난 10여 년 동안 여자 테니스계를 지배해온 윌리엄스 자매가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여기에 도전하는 '반란자'들도 만만치 않다.
첫 번째 반란자는 무려 18년 만에 메이저 4강으로 돌아온 미르야나 루치치바로니(크로아티아)다. 1997년 15세 나이로 US오픈 단식에서 3회전까지 진출하며 '천재' 소리를 들은 루치치는 이듬해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와의 호주오픈 복식에서 정상에 오르며 역사상 최연소 메이저 우승 기록을 세웠다. 테니스계가 돌풍을 넘어 새로운 여제 탄생을 기대할 만한 등장이었다.
그러나 루치치는 '여제' 대신 '은둔자'가 됐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메이저 대회에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인은 가정폭력이었다. 루치치는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크로아티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까지 가야 했다. 심리적 안정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좋은 성과가 나올 리 없었다.
루치치는 2011년 이탈리아계 남편과 결혼해 '루치치바로니'가 된 후에야 비로소 어린 시절의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세계 랭킹 79위인 루치치는 25일 8강전에서 세계 5위 카롤리나 플리스코바(체코)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루치치바로니는 "동굴에 숨는 길과 다시 꽃피우는 길 중 후자를 선택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루치치바로니가 '백전노장'이라면 4강의 다른 한 축인 코코 밴더웨이(35위·미국)는 '사고뭉치'에 가깝다. 미국 수영 국가대표였던 어머니,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인 할아버지와 삼촌에 심지어 미스 아메리카로 뽑혔던 할머니까지 있는 밴더웨이는 실력보다 가족력과 독특한 이름, 화끈한 성격으로 더욱 유명한 선수였다. 아직까지 메이저 우승 타이틀은 하나도 없다.
특히 밴더웨이는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애꿎은 라켓을 부숴 '라켓 브레이커'라는 별명까지 얻은 선수다. 호주오픈에서도 명성에 걸맞게 벌써 라켓 하나를 부쉈다. 하지만 특유의 공격적인 운영이 빛을 발하며 이번 대회에서 4강까지 진출했다. 그둥에서도 세계1위 안젤리크 케르버(독일)를 물리친 16강 경기가 백미였다.
이제 두 반란자는 26일 나란히 윌리엄스 자매를 상대로 결승 진출을 노린다. 루치치바로니는 이번 대회에서 역대 메이저 최다 우승(23승)에 도전하는 '흑진주' 세리나 윌리엄스를 상대하고, 밴더웨이는 노익장을 과시 중인 비너스 윌리엄스를 만난다. 만일 윌리엄스 자매가 준결승에서 나란히 반란을 진압하면 2009년 윔블던 이후 8년 만에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자매 대결이 펼쳐지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