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마지막 메이저 테니스대회인 US오픈은 코트의 지각변동이 거셌다. 12일 끝난 남자 단식 결승에서는 세계 3위 스탄 바브링카(스위스)가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3-1로 꺾는 이변을 연출한 끝에 처음 이 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세계 남자 테니스는 10년 넘게 조코비치를 비롯해 앤디 머리(영국), 로저 페데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의 ‘빅4’ 체제였다. 네 선수는 2005년 프랑스오픈부터 올해 윔블던까지 47번의 메이저 대회 가운데 42승을 합작했다. 하지만 빅4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달과 페데러가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시즌 초반 2개 메이저 대회 우승을 휩쓸며 ‘원 톱’으로 주목받던 조코비치는 윔블던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초반 탈락 등으로 상승세가 꺾였다. 빅4 제체를 무너뜨릴 선두주자로 나선 바브링카는 2014년 호주오픈과 지난해 프랑스오픈에 이어 올해 US오픈 정상에 올라 3년 연속 메이저 타이틀을 안는 꾸준한 페이스를 보였다. 내년 잔디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달성한다. 바브링카의 주무기는 강력한 한 손 백핸드 스트로크로 명품이라는 찬사까지 듣고 있다.
10년 넘게 세리나 윌리엄스(미국)가 지배하던 세계 여자 테니스에도 안젤리크 케르버(독일)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왼손잡이 케르버는 생애 처음으로 US오픈 정상에 오르며 세계 랭킹 1위 등극까지 자축했다.
1월 호주오픈 결승에서 윌리엄스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던 케르버는 올해 4대 메이저 타이틀 중 2개를 차지했다. 윌리엄스를 제외한 선수가 시즌 메이저 2승을 거둔 경우는 2007년 쥐스틴 에냉(벨기에) 이후 9년 만이다. 케르버는 올해 윔블던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2위를 기록하며 꾸준한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반면 30대 중반의 윌리엄스는 기복이 심한 모습이다. 케르버는 “내 어깨에 짊어질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며 세계 랭킹 1위 등극에 대한 담담한 소감을 밝혔다. 끈질긴 수비와 좀처럼 실책이 없는 안정된 스트로크가 돋보이는 케르버의 우상은 같은 독일 출신의 테니스 전설 슈테피 그라프다.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그라프 집에 초대돼 레슨을 받기도 했다. 독일 선수가 이 대회 여자단식 챔피언이 된 것은 1996년 그라프 이후 20년 만이다. 독일 여자 테니스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