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클레이코트 챔피언십 본선 진출한 정현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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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를 생각해보자. 노박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앤디 머리 등등 수많은 스타가 세계 테니스계를 달궜지만 흑인 테니스 스타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많지 않다. 여자 테니스에서는 비너스와 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미국) 정도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기억될 뿐이다. 그만큼 테니스는 과거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클럽이나 사교집단에서 발전해, 다양한 인종과 나라에게 전파되지 못했다. 클럽 위주의 테니스 문화가 흑인의 입장을 제한하는 등 인종차별이 심했던 영향도 있다. ‘신사’의 스포츠보다는 ‘귀족’ 스포츠에 가까웠던 테니스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해본다. ◆성직자와 귀족 사교의 ‘근원’ 테니스는 원래부터 귀족 스포츠로 출발했다. 테니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11세기 즈음 유럽의 성직자와 귀족들이 즐기던 운동경기 라폼므(la paum)가 16세기 이후 지금의 테니스와 비슷한 죄드폼(Jeu de paume)으로 발전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특히 테니스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죄드폼은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사건 중 하나인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 맺어진 곳도 베르사유 궁전 안의 실내 테니스장이었다. 당시 자신을 태양에 비유했던 루이 14세도 테니스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 테니스와 같은 맥을 이어간 경기가 등장한 것은 1873년이었다. 윌터 윙필드라는 사람이 영국에 전해졌던 죄드폼을 실외 잔디밭에서 할 수 있는 스파이리스타이크라는 경기로 재탄생 시키면서, 지금의 론테니스((lawn tennis), 즉 잔디코트에서 벌이는 테니스 경기가 시작됐다. ◆테니스의 성지 ‘윔블던’ 테니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를 줄줄 외우고 있다.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 오픈이 4대 대회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테니스의 성지이자 모든 테니스 선수들이 우승을 꿈꾸는 대회가 바로 ‘윔블던 대회’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1876년 영국 윔블던(Wimbledon)의 한 클럽에서 새로이 규칙을 만들고 정비해 이듬해 론테니스 대회를 개최한 것에서 시작됐다. 횟수로 치면 벌써 138년째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현대 테니스 대회의 ‘기원’이라는 말을 하는데에는 긴 역사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한 윔블던 대회를 통해 테니스는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게 됐다. ◆한국 테니스의 ‘현주소’ 최근 한국 남자테니스의 ‘희망’ 정현(19)이 ATP 월드투어 마스터즈 1000 시리즈에서 첫승을 올리면서 오랜만에 테니스 소식이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한국 선수가 ATP 월드투어 대회에서 승리한 것은 지난 2008년 9월 AIG 재팬오픈 챔피언십 단식 1회전에 승리한 이형택 선수 이후 7년 만이다. 하지만 테니스 대회에서 고작 1승으로 언론이 들썩였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테니스는 세계대회에서 약세를 면치 못해왔고, 귀족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골프가 세계 대회를 주름잡고 있는 것에 비교됐던 이유도 컸다. 아직 우리나라 프로테니스에서 기억되는 선수로는 이형택 정도에 불과하다. 앞으로 귀족 스포츠가 국민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슈퍼스타’가 필요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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