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심리적인 압박감에 시달린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실력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누가 그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좀 더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느냐가 챔피언을 결정한다.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윔블던 때면 절을 찾는다. 윔블던 경기장인 올잉글랜드 클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부다파티파 사원이다. 영국 최초의 불교 사원으로 태국 정부가 지었다. 불교 신도가 아닌 조코비치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조코비치는 대회 첫날인 지난 29일(현지시간) 필리프 콜슈라이버(33위·독일)를 3-0(6-4 6-4 6-4)으로 꺾고 2회전에 오른 뒤 “윔블던 기간 동안 경기 사이에 틈을 내 자연속에서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13년에도 사원에서의 명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긴장에 시달릴 때면 몸의 스위치를 끄고 배터리를 재충전할 필요가 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게는 압박감을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했다. 몇 년째 사원을 찾고 있는 까닭에 이제는 단체 명상이 아니라 혼자서 마음을 정화할 정도가 됐다.
지난해 윔블던 챔피언에 올랐던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에서 개인 통산 3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어 심리적으로 큰 부담감을 안고 있다. 앞서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는 스탄 바브링카에 패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 충격이 컸다. 어느 때보다 더욱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는 최근 들어 대회를 앞두고 명상과 다이어트, 한약 등 코트 밖에서 하는 준비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클레이의 제왕’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윔블던을 준비하는 방법은 골프다. 나달은 잘 알려진 골프 마니아다. 핸디캡 2.7로 실력도 뛰어나다. 왼손잡이지만 골프를 할 때는 테니스에서 양손 백핸드를 칠 때처럼 오른손으로 클럽을 잡는다. 같은 스페인의 골프 스타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친구이기도 하다. 잦은 부상에서 시달리고 있는 그는 부상 때문에 더 이상 테니스를 못하게 되면 골프로 전향할 생각도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이번 윔블던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대회를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나달은 “골프를 쳤다”고 대답했다. 프랑스오픈 일정을 마친 뒤 마요르카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여가가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골프만 친 것은 아니다. 윔블던을 앞두고 잔디 코트 적응을 위해 메르세데스컵과 애건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메르세데스컵에서는 우승했다.
나달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제력과 수양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는 테니스를 통해 심리적인 압박감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했는데 골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아성이었던 프랑스오픈에서 개인 통산 10번째 우승에 실패했고 세계 랭킹도 10위까지 떨어지는 등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2008년과 2010년 챔피언에 올랐던 윔블던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윔블던을 앞두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전과 달라진 것은 골프다. 마음의 여유를 얻고 의욕을 살리기 위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또 하나의 스포츠를 선택했다. 일단 출발은 좋다. 30일 벌어진 1회전에서 토마스 벨루치(42위·브라질)를 3-0(6-4 6-2 6-4)으로 꺾고 64강에 올랐다.
조코비치는 시범경기나 이벤트에서 코믹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하지만 진짜 승부에 들어가면 냉철함을 잃는 법이 없다. 나달은 끊임없는 부상에도 강자의 모습을 지켜가는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강인한 정신력의 바탕에는 ‘릴랙스’가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