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미국 최고의 테니스 선수' 빌 틸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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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4-29 10:29 조회2,6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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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테니스 스타’ 빌 틸든(미국)이 사후에 용서받을 수 있을까.
틸든은 1920~1936년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었다. 당시 야구에 베이스 루스가 있었다면 테니스에는 단연 틸든이었다. 그는 1920년 윔블던에서 우승한 최초의 미국인이며 US오픈 7차례 우승자였다.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도 10차례나 우승했다. 현대 테니스의 기술은 그에 의해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저술한 테니스 교본은 오랫동안 선수들의 교과서가 됐다. 1950년 AP는 20세기 전반기 가장 위대한 선수로 그를 지목할 정도였다.
틸든은 1920~1936년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었다. 당시 야구에 베이스 루스가 있었다면 테니스에는 단연 틸든이었다. 그는 1920년 윔블던에서 우승한 최초의 미국인이며 US오픈 7차례 우승자였다.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도 10차례나 우승했다. 현대 테니스의 기술은 그에 의해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저술한 테니스 교본은 오랫동안 선수들의 교과서가 됐다. 1950년 AP는 20세기 전반기 가장 위대한 선수로 그를 지목할 정도였다.
하지만 동성애자인 그는 10대소년 성추행 혐의로 두 차례나 투옥되면서 ‘잊혀진 스타’가 됐다. 1893년 필라델피아 모직상이자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세 때부터 당시 부유층의 놀이였던 테니스를 배웠다. 동성애자에게 극히 적대적이던 필라델피아에서 그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테니스에 빠져들었다. 22세이던 1915년 그의 아버지와 형이 잇달아 죽자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테니스에 매진했고 세계 최고 선수로 성장했다. 미국대표로 데이비스컵에 나가 1920년대에만 7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다. 전성기 때 그는 찰리 채플린 같은 헐리웃 배우들의 친구였고, 워렌 하딩 당시 미국대통령의 손님으로 백악관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가 10대소년 성추행혐의로 입건된 것은 50대인 1943년이었다. 비정상 주행을 하는 그의 차를 경찰이 세워보니 지퍼를 내린 소년이 차에서 발견됐다. 7개월형을 선고받은 그는 3년 뒤 또 다른 소년을 더듬은 혐의로 10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행위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5년에 쓴 소설 ‘롤리타’의 소재가 됐다.
그의 비행이 알려지면서 그가 회원으로 있던 ‘필라델피아 저먼타운 크리켓 클럽’은 클럽에서 초상화를 비롯해 그의 흔적을 아예 지워버렸다. 그는 60세이던 1953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필라델피아 아이비힐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윌리엄 T. 틸든 2세. 1893-1953’이 전부다.
세월이 흘러 클럽은 틸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초상화가 다시 내걸렸다. 클럽 식당에는 그의 이름을 딴 ‘틸든 디너 뷔페 패키지’ 메뉴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가 10대소년 성추행혐의로 입건된 것은 50대인 1943년이었다. 비정상 주행을 하는 그의 차를 경찰이 세워보니 지퍼를 내린 소년이 차에서 발견됐다. 7개월형을 선고받은 그는 3년 뒤 또 다른 소년을 더듬은 혐의로 10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행위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5년에 쓴 소설 ‘롤리타’의 소재가 됐다.
그의 비행이 알려지면서 그가 회원으로 있던 ‘필라델피아 저먼타운 크리켓 클럽’은 클럽에서 초상화를 비롯해 그의 흔적을 아예 지워버렸다. 그는 60세이던 1953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필라델피아 아이비힐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윌리엄 T. 틸든 2세. 1893-1953’이 전부다.
세월이 흘러 클럽은 틸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초상화가 다시 내걸렸다. 클럽 식당에는 그의 이름을 딴 ‘틸든 디너 뷔페 패키지’ 메뉴가 등장할 정도였다.
지난 1년간 클럽 회원들은 ‘필라델피아 저먼타운 크리켓 클럽’을 필라델피아 역사유적지로 신청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모았다. 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베이에서 구입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월 역사유적지 선정을 위한 주 심사위원들은 1-4로 클럽의 유적지 선정을 기각시켰다. 그의 비행이 결정적인 장애물이 됐음은 물론이다.
1953년 윔블던 우승자이자 생존한 최고령 그랜드슬램 우승자인 빅 세익사스(92)는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였다”며 기각을 아쉬워했다. 틸든 지지자들은 다시 자료를 보완해 올 하반기에 클럽의 역사유적지 선정을 재신청할 예정이다.
1953년 윔블던 우승자이자 생존한 최고령 그랜드슬램 우승자인 빅 세익사스(92)는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였다”며 기각을 아쉬워했다. 틸든 지지자들은 다시 자료를 보완해 올 하반기에 클럽의 역사유적지 선정을 재신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