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를 수놓은 태극물결
최 우호(UI)
마치 태극문양을 연상케 하는 붉고 푸른 물결이 Plaza Senayan 일대를 수놓았다. 타향만리에서 열린 뜻 깊은 축제의 현장에서, 우리는 조국의 하 늘아래에 있을 때 보다 더 뜨거운 심장과 두 눈동 자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자카르타의 아침을 밝히기 시작했다. 사람 울타리에 갇혀 앞으로 걸 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음에도 불 구하고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념 티셔 츠, 모자, 땀수건, 생수, 그리고 태극기를 부족함 없이 나눠주는 한인회의 철저한 준비로 원활한 행 사 진행이 이루어졌다.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 시 간이 지날수록 더해가는 우리 동포들의 대단한 응 집력에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위기는 마치 한.일 축구경기를 앞둔 서울시청 앞 광장의 그것 과 같았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간직하고, 같은 기쁨을 만끽 한 나라인 만큼 수교한 1973년 9월 이례 양국이 한마음이 되어 가장 성대하게 치러진 행사라는데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 이다.
걷기행사 전 순서로 축사를 듣고 두 나라의 국민 체조를 하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하나 되 어 따라하는 모습이 나 빼고 모두 연습하고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체조 후 자리를 빛 내주신 귀빈의 소개 후 자카르타 자롯 부지사님 의 걷기행사 개최선언에 2500여명에 달하는 우 리 동포들과 3500명에 달하는 현지인들이 양손 에 태극기와 적백기를 들고 봇물 터지듯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늘에서 촬영용 드론이 날아다니 고 행사장 일대의 교통을 통제하여 현지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큰 행 사를 주최하고 실행에 옮긴 한인사회의 드높은 위 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타향만리 낯선 곳에서의 삶이 외롭고 고단하지만 이 행사를 통해 자랑스 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조국을 잊지 않고, 우 리 조국을 지킨 우리 조상들의 헌신을 기리며 나 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애국하겠노라 다짐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파속에서 많은 지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런 행사에 별 관심 없을 것 같은 이미지의 학교 친구도 만났다. 일본인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는 친구인데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 고 판단하면 안되는 것 같다. 친구 말이 축구를 봐 도 한일전만 보고 국기 게양은 광복절에만 하는데 이 행사에 꼭 참석하고 싶어서 한국에서의 휴가 일정도 줄이고 출국했다고 한다. 이 친구와 대화 하면서 많이 놀랐다. 사실 개인적인 소견으로 요 즘 우리 젊은이들은 70년 전 그 감동을 잊은지 오 래인 것 같다. 나 역시“광복절 = 빨간날 = 절친 의 생일”이란 공식이 세워져 있었다. 국기 게양 도 잊어버리고 늦잠을 자고 친구생일 잔치에 가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종종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으로 태극기 가 시상대의 꼭 대기에 오르면 나도 모르게 가슴 뭉클해짐을 느끼며 촉촉이 젖은 눈매로 애국가를 따라 불렀기에 내 애국심이 대단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나도 앞으로 광복절만이라도 국기 게 양을 하리라 다짐했다. 오늘 행사에 아빠, 엄마 손 을 잡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열 심히 걷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이 아이들이 자 라서 광복 80주년, 100주년이 됫을 때 지금의 어 른들처럼 이런 뜻 깊은 행사를 개최하고 또 참여 할 수 있는 가슴 뜨거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장 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걷기대회가 끝난 후 아쉽게도 개인일정 때문에 2.3부 행사는 참가하지 못 했지만 오늘 이렇게 대 한민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에게 역사적인 첫 행사 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또 더 나아가 이런 국제적인 우리들의 행사가 더 널리 알려져서 현재 우리 국 민들의 의식속에 녹아들어 바퀴벌레처럼 끈질기 게 살아남은 일본어 잔재와 매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위안부문제, 그리고 일본 지배계층의 야스 쿠니 신사참배 등 해결해야할 사회문제들이 우리 국민뿐 아니라 국제적인 지지 속에 하루빨리 해결 되길 바란다. 대한독립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