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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의 강연을 듣고...

김 미 숙 (인도네시아교육대학 한국어과 교수, 인니문협회원)

Indoweb2016.10.25



  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에서 주최하고 자카르타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문정희 시인 초청강연인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라는 주제의 문학 강연을 듣게 되었다. 최근 자카르타의 반복되어지는 일상의 삶에 지쳐 있던 내게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일상어의 반란’. 문정희시인의 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한때 문학을 꿈꾸었던 문학도들에게, 혹은 20대의 열정을 토해내고 싶었던 전후 세대인 시인지망생들에게 시어 하나하나를 절차 탁마하는 소월이나 미당처럼, 아니면 우리 시대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암송해야 할 사조 속의 시인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와 함께 살아온 내 연배의 사람들에게는 문정희 시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그녀의 일상적 시어는 젋었던 과거의 내게는 일상어라는 그 이유 때문에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이유 때문에 사소한 일상어가 이루어 내는 번뜩이는 반전에 탄복하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일상의 사소함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감사인지를 알게 되었음일까?

  인도네시아는 내가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을 하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다. 이번 문정희 시인과의 만남의 시간도 그렇고 이렇게 소감을 쓰는 기회를 갖게 된 것도 그렇다. 시인은 일만 마디 말을 낱말 하나에 담아내는 예술가이다. 시인과의 만남이 늘 설레고 기대되는 것은 그 함축의 폭만큼 그릇이 크기를 갈망하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여느 시인과의 만남에서 늘 부족함을 느낀 것은 바로 우리의 기대감이 항상 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문정희 시인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충분히 우리의 가슴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열정이 있었다. 젊지 않은 연륜의 힘이 젊음의 펄떡거림을 뛰어 넘어 너울처럼 치고 오는 힘이 느껴진다.

 

  그녀의 시어가 탁마되지 않은 듯 일상을 담고 있어 문학과 상관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만의 장점이다. 오히려 이 때문에 시인과의 만남은 의외의 강렬함에 놀라게 되고 그 풍성한 일상의 경험이 만들어 낸 시 세계의 경이를 보게 됨으로써 시인의 저력을 느끼게 된다. 겸손은 노예근성에서 온 것이라는 어느 현자의 말을 인용하며 그러므로 본인은 잘났다고 자랑하는 듯 시작하는 시인의 강연은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성찰하게 하는 숙연함으로 끝을 맺었다.

 

  문학이란 인생을 주제로 하는 것이므로 용량이 풍부한 인생을 살아야 새로운 세계를 담고 있는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게 되고 그 새로움이 기존을 깨는 창조가 되어 문학의 힘이 됨을 역설하는 시인은 이미 새로움을 찾아 세상을 유랑하는 음유시인이었다. 고국을 떠나 멀리 인도네시아에 자리한 우리 한인들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상기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는 동시에 모국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적음으로 인해 일상어의 어휘 수가 줄고 일상어에 함몰해 버릴 가능성 또한 높음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잡아 놓고 묵히고 삭이면서 한 편의 시로 완성시켜 가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할 땐 강의실에서 시작 법을 강의하는 선생님이었다. 강연 후 사석에서 던진 필자의 작가로서의 책임과 부끄러움에 대한 질문에선 작가가 오롯이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과 그 산고의 고통에 대해 넋두리할 줄 아는 이웃집 아낙이기도 했다.

 

  멘토가 되기에 충분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 작가의 말대로 같은 여인이면서 본이 될 만한 사람이 드문 해외 생활에서 강연시간 내내 열정적이고 힘이 있는 어조로 끝까지 한마디라도 더 얘기해 주려고 했던 문시인은 우리시대의 행동하는 멘토였다. 대체적으로 행사가 끝나면 파티가 끝났을 때 오는 허전함 같은 게 몰려오던 자리에 전사와 같은 노시인의 열정이 쏟아낸 뜨거운 충만함이 채워졌다. 이번 행사를 주최하여 해갈의 시간을 고대하던 한인들에게 단비와 같은 시간을 선사한 문인협회 서미숙회장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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