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여름이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몸은 칙칙하다. 교통지옥에 시달려 몸은 괴롭고 물씬물씬 땀냄새를 풍긴다. 초인종을 누르며 나를 반기러 나오는 아내와 자녀들을 그려보지만 문화혜택으로 안겨준 각자의 열쇠가 있기에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는 게 오늘따라 매우 속이 상한다.
힘든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돌아왔다.” 말소리는 마치 허공을 치는 것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아내는 오셨느냐는 등 간단한 눈맞춤으로 인사를 끝내고 나보다 하는 일이 더 중요한지 부엌으로 모습을 감춘다. “씻고 저녁 드세요.” 멀어져 가면서 외치는 외마디 아내의 소리. '누가 밥 먹으러 돌아왔나? 힘들어서 들어왔는데 날 좀 반겨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이들은 어디 갔나?” “방에서 공부할거에요.” 공부. 공부. 아버지가 와도 인사를 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런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든다. 섭섭한 마음을 다스리며 아이들 방을 들여다본다. “공부 열심히 하냐? 달리 할 말이 없다. “어. 아버지 오셨어요. 네. 다녀오셨어요?” 짧은 한마디를 하고 계면쩍은 듯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그 뒤통수를 바라보며 “그래 열심히 해라.” 고 말했다.
무슨 말을 더하랴. 언제부터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리 잡아 버린 이러한 생활의 패턴이 삶의 유일한 방법인 양 되어 버렸다. “인생이란 다 그런 거에요.” 회사에서 담배를 뻐금뻐금 피워 물고 한숨을 내쉬며 내뱉던 동료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것이 진정 인생의 전부인가? 갑자기 역겨운 마음이 몰아친다.
빈 의자로 둘러싸인 밥상. “아이들은 먹었어요.” 라고 하면서 저녁을 차려주고는 연속극을 본다고 텔레비전 앞에 몰두해버리는 아내. 내가 뭐 때문에 먹어야 하는가? 진정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 걷잡을 수 없는 수많은 생각이 내 마음에 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