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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하다
건훈이가 영국으로 유학간 다음 남편에게는 하나의 다른 습관이 생겼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전에 아이방에 갔다 나오기에 아이 생각이 나서 그런가보다 하고 모르는 척 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보았더니 둘리 인형과 하트베어 인형을 침대에 눕혀주고 있었다. 그 인형들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던 인형들이었다. 매일 어린 아들 재우듯 그렇게 침대에 인형들을 뉘였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그 뒤로 나는 날마다 아이 방에 가서 남편이 침대에 눕혀놓은 인형들을 제 위치에 올려놓은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빠의 이런 마음을 아이는 알까? 남편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다. 가족을 많이 사랑하면서도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마음과는 달리 아이에게 엄한 꾸중과 잔소리로 원성을 많이 샀다. 아이가 머리모양을 바꾸거나 튀는 옷을 입으면 남편은 영락없이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공부하는 학생이 머리가 그게 뭐냐? "옷은 왜 그렇게 입었니? 얌전하게 입어라" 아빠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아이는 기분이 좋을리 없다. 당연히 입이 한자나 나오고 표정이 어두어진 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왜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할까 왜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할까 하고 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무뚝뚝하고 아이들에게 오해나 사고 말이다. 하지만 자식이 철들어 아버지 속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건훈이도 이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약간의 시간과 진통이 필요했다.
요즘 젊은 아빠들 중에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기도 하고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마음은 있어도 밖에서 돈 벌어 오느라 해야할 일이 워낙 많으니 가족들과 집에서 밥 한끼 먹는것도 쉽지가 않다. 자연히 아이들 교육은 집에서 엄마가 혼자 감당해야할 몫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아이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는 유소년기에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아들이건 딸이건 중,고등학생만 되어도 아빠와 대화의 끈이 이어지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 아빠는 엄마 못지 않게 중요하다. 시간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육아 기술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빠의 몫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남편에게 아이 아빠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건훈이가 어렸을 때 부터 날마다 잠자기 전에 머리맞에서 동화책을 읽어 준 것이다. 남편은 밤 늦게 퇴근해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에게 책 읽어 주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는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눈을 반짝이며 잘 들었다. 아이가 책이란 것이 무척 재미있구나 하고 알았던 것은 아마 이때가 처음일 것이다. 그러니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빠의 역할이 매우 컷다.
다음으로는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근무한 남편은 집에 와서도 공부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다. 회사 진급시험 준비하는 날도 많았고, 영어나 중국어 같은 외국어 공부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 와서 TV 켜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떤 집은 아빠들이 TV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아빠가 집에 오기만 하면 사람이 있건 없건 늘 TV를 켜 놓는다고 하는데, 남편은 그럴 틈이 없었다. 남편이 그렇게 공부를 해서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아빠가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해도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 되었다고 생각한다.